9월 15일부터 17일까지,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출처: 에스투단치스 우니베르시타리우 티모르-레스테(Estudantes Universitatio Timor-Leste)
연속 사흘 동안 딜리(Dili, 동티모르 수도)의 거리는 구호와 현수막, 그리고 굴하지 않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수천 명의 청년들이, 주로 동티모르의 Z세대가 주도한 이번 시위는, 국회의원들에게 평생 연금을 지급하는 법과 함께 의원들을 위한 고급 차량 구입 예산으로 400만 달러를 배정한 국회의 논란 많은 결정에 맞서고 있다.
이 시위의 중심에는 더 깊은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부패, 불평등, 그리고 해방의 약속이 평범한 동티모르 시민들에게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는 좌절감이다.
동티모르 학생 시위. 출처: 에스투단치스 우니베르시타리우 티모르-레스테
비밀 조직, 육체적 용기, 손으로 쓴 전단을 통해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저항 세대와 달리, 동티모르의 Z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다. 그들에게 행동주의는 디지털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특히 페이스북과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틱톡은 이들의 조직화 무대다. 경찰과의 충돌 장면, 부상당한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은 즉시 네트워크 전반에 공유되어 분노를 확산시켰고, 더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자신들의 투쟁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은 커다란 변화를 의미한다. 기성세대가 여전히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의존하는 반면, Z세대에게 소셜미디어는 하나의 가상 광장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토론하고, 조직하며,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디지털 콘텐츠의 빠른 확산은 동원 속도를 높이고, 목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며, 당국이 이를 무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1997년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동티모르의 Z세대는 인구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은 이전 어떤 세대보다 세계와 연결된,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술과 함께 자라온 세대(digital natives)다. 그러나 이런 연결성은 동시에 깊은 환멸감도 낳고 있다.
출처: 에스투단치스 우니베르시타리우 티모르-레스테
인터넷 보급률은 여전히 불균등하지만, 스마트폰은 청년층 사이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스마트폰은 교육, 사회적 교류, 행동주의로 향하는 주요 관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디지털 접근성은 온라인 폭력, 괴롭힘, 유해 콘텐츠 같은 위험에 젊은 세대를 노출시킨다. 그럼에도 이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은 부모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투명성을 요구하고, 부정을 폭로할 수 있게 만든다.
이들의 관심사는 호화 차량을 훨씬 넘어선다. 많은 이들이 열악한 교육 환경, 과밀 학급, 저임금 교사, 재정 부족한 학교에 좌절하고 있다. 공교육은 여전히 취약한 반면, 사립학교와 국제학교는 주로 엘리트층만을 위한 공간이다. 매년 1만 5천 명 이상의 중등학교 졸업생과 4천 명 이상의 대학 졸업생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만, 기회는 제한적이다. 청년 실업과 불완전 고용이 만연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가 과연 동티모르에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출처: 에스투단치스 우니베르시타리우 티모르-레스테
세계은행은 동티모르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난 10년 가까이 약 30.6%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다. 노동력의 상당수는 여전히 저생산성의 비공식 부문에 갇혀 있다. 이로 인해 이주는 탈출구로 점점 더 인식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동티모르인 절반 가까이가 이미 해외 취업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주된 목적지는 호주, 한국, 영국이다.
이러한 인재 유출은 단순히 경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현재 국가 발전 경로에 대한 세대적 불신을 반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딜리 시위가 젊은 세대의 마음을 깊이 울린 이유를 보여준다. 이 젊은이들은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 동티모르를 완전히 떠나기보다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디지털 행동주의’에도 함정이 있다. 소셜미디어는 힘을 실어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허위정보, 정치적 조작, 극단적 양극화의 온상이 될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문해력) 교육이 부족해 많은 이들이 거짓 서사에 쉽게 노출된다. 온라인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한 운동은 조직적 기반이 약할 경우 급격히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경찰의 강경 진압 이후 폭력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정당한 분노가 얼마나 빠르게 불안정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처: 에스투단치스 우니베르시타리우 티모르-레스테
그럼에도 동티모르의 Z세대는 나라의 행동주의 지형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들의 시위는 단지 의원 차량이나 연금 제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성, 평등, 존엄성을 위한 더 넓은 투쟁의 일부다.
동티모르는 이제 막 20여 년 된 신생국가로, 여전히 석유 의존 경제에서 다각화된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미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된 세대이지만 현지 현실에 뿌리내려 있으며, 부패를 참지 않으면서 깊은 애국심을 지니고 있다. 환멸을 느끼면서도 침묵을 거부한다.
그들의 행동주의는 디지털에 능숙하고, 국가적 자각이 분명하며,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새로운 시민 참여 시대의 서막을 알린다. 만약 그들의 투명성과 기회에 대한 요구가 충족된다면, Z세대는 단순히 행동주의를 재정의하는 세대를 넘어, 동티모르 자체를 다시 세우는 세대가 될 수 있다.
[출처] The digital generation rising: Gen Z and activism in Timor-Lest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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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 ‘레키나와’ 다 코스타(Ato “Lekinawa” da Costa)는 동티모르의 온라인 매체 <네온 메틴>(Neon Metin)의 편집자이다. 그는 과거 수하르토 독재에 맞선 학생운동가로, 동자바 말랑(Malang, East Java)에서 유학하던 시절 활동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