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시장'이라는 신화: 중도좌파 정치의 근본적 오류

<뉴욕타임스>의 뛰어난 노동 전문 기자인 노엄 샤이버(Noam Scheiber)는 최근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배경 기사를 실었다이 기사는 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광기에 그렇게 쉽게 굴복하고단결해서 맞서 싸우지 않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샤이버는 그 원인을기업 경영자들이 단순히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노동자들과 지역사회 전체를 고려하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서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집중하는 체제로의 전환에서 찾는다그러나 이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분석이며왜 그런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CEO들이 오직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그들이 실질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자기 보수 극대화이며기업 수익 극대화가 아니다연구 결과들은 CEO 보수가 주주 수익과 밀접하게 연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뤼시앵 베브척(Lucien Bebchuk)과 제시 프리드(Jesse Fried)는 20년 전 그들의 저서 『성과 없는 보수』(Pay Without Performance)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수많은 CEO들이 회사와 주주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뒤에도 수천만 달러를 들고 유유히 떠나갔다최근에는 보잉(Boeing)의 CEO가 회사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후무려 6천만 달러 이상을 받고 회사를 떠난 사례가 있었다과연 이것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한 결과라 할 수 있을까?

베브척과 프리드의 주장은궁극적으로 CEO 보수를 결정하는 이사회(board of directors) 구성원들이 대부분 고위 경영진 덕분에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에 있다. (나 역시 제시카 쉬더(Jessica Schieder)와 함께한 논문에서 이 분야에 소소한 기여를 했다우리는 2011년 미국의 건강보험개혁법(ACA)으로 인해 CEO 보수의 법인세 공제 혜택이 사라진 후건강보험 업계의 CEO 보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했다이 법은 분명히 CEO 보수의 기업 비용을 증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수익매출주가 등 모든 변수를 통제했을 때조차 보수가 줄어든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이사회 구성원은 서로의 지지를 유지하는 한 자리를 잃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재선에 추천된 이사회 구성원이 주주총회에서 낙선할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 “CEO의 연봉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질문을 이사회에서 꺼낸다면 다른 이사들의 눈 밖에 나기 쉽기 때문에이런 질문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결국 CEO 보수를 견제할 실질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게다가 이사회 일은 몇백 시간 일하고 수십만 달러를 받는 편한 자리이기 때문에이사들은 대체로 그 직책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전직 CEO이자 이사였던 스티븐 클리퍼드(Steven Clifford)는 그의 책 『CEO 보수 시스템(The CEO Pay Machine)』에서 내부자의 시각으로 이러한 구조를 설명했다.

이 차이는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첫째지난 40년간 벌어진 소득 상위층으로의 부의 재분배는 대부분 기업 이윤이 아니라 고소득자들의 임금 증가에서 발생했다사실 대부분의 부의 쏠림은 이미 2000년 이전에 발생했으며그 시점에서 기업 이익의 GDP 내 비중은 1960년대 수준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CEO 보수 자체는 이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 수 있다그러나 CEO가 연간 25백만~3천만 달러를 받는다면같은 경영진 층의 다른 구성원들도 1천만~15백만 달러를 받을 가능성이 높고그 아래 경영진들도 수백만 달러를 가져갈 것이다만약 CEO의 보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반세기 전 수준예컨대 3~4백만 달러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위에서 더 많이 가져가면아래로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CEO 보수의 폭증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적 변화와 규범은다른 분야의 고소득층 임금 증가도 함께 정당화했다특허와 저작권의 보호 기간이 길어지고 강해지면서많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분야 노동자들이 백만장자억만장자가 되었다사모펀드(private equity)들이 파산법을 악용한 방식도 다수의 부자들을 만들어냈다이들은 겉으로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번다고 말하지만사실상 이는 임금과 이윤이 혼합된 구조다그리고 과잉 팽창한 금융 부문 역시 고액 연봉자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것은 내가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이지만이번에는 샤이버가 제시한 설명과는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샤이버는 주주 가치 중심주의로의 전환에 다음과 같은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더 효율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했다소비자들이 종종 혜택을 받았고미국 기업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정책 담론 속에서는 보일지 몰라도현실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주류였던 시기와 주주 가치 극대화가 본격화한 이후 시기의 생산성 성장률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하다.

과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기의 평균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지금보다 1.3%P 높았다과거에는 감가상각이 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낮았다는 등의 기술적인 이유까지 고려하면이 격차는 실제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나는 1970년대의 침체기를 별도의 시기로 분류했는데이 시기를 어디에 포함해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이 시기는 미국 경제가 오늘날보다 석유에 훨씬 더 의존하고 있었던 시절에두 차례의 대규모 유가 상승이 경제를 심각하게 흔든 시기였다어쨌든 이 시기를 앞선 시기에 포함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그림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국제적 비교로 시선을 돌려 보면샤이버의 주장과 달리 지난 45년간 미국 경제가 뚜렷하게 우월했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할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80년 프랑스의 1인당 GDP는 미국의 1인당 GDP의 85.7% 수준이었다. 2024년에는 이 비율이 74.3%로 하락했다독일의 경우, 1980년에는 미국 대비 95.3%였지만 2024년에는 85.6%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을 미국 자본주의의 승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같은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는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17.4% 감소했고독일에서는 23.8%나 줄어들었다이에 비해 미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단 3.4%만 줄었다나머지 국가들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더 긴 휴가와 짧은 노동시간으로 받아들였다이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더 많은 시간을 일한 노동자들이 더 높은 연봉을 받은 결과일 뿐이다.

국제 비교 전체를 다루는 것은 더 복잡한 일이지만샤이버와 같은 인물들이 펼치는 열정적인 손짓과 주장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미국 경제가 특정 면에서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전체적인 그림은 훨씬 더 모호하다.

이러한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왜냐하면 막대한 소득이 위로 재분배된 체제의 정당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시장에 맡기고 싶다는 입장은 나름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하지만 부자들에게 모든 돈을 몰아주기 위해 판을 조작하고 있다고 말하는 입장에서는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우리는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이런 소득 재편의 수혜자들이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그 재분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그 현실을 함께 숨기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체제가 경제 성과를 향상했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논리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지난 45년간 미국 경제가 일부 지표에서는 동료 국가들보다 나은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이는 명확하게 입증된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오히려 기대수명 증가 같은 지표에서는 미국이 훨씬 더 나쁜 성과를 냈다는 통계도 쉽게 제시할 수 있다.

왜 CEO들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무릎을 꿇는가

만약 우리가 샤이버(Scheiber)의 설명즉 대규모의 트럼프 굴복 사태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 주주 가치 극대화로의 전환이라는 논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내 생각에이 사태의 핵심은 트럼프에게 맞설 수 있는 제도적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리고 그 구조가 무너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조직 노동의 약화에 있다.

1950~60년대에는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노조에 가입해 있었다오늘날 그 비율은 전체적으로 10%에 불과하고민간 부문만 보면 6%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당시 노조는 국가적 담론의 핵심 세력이었고노조 지도자들은 주요 정책 논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오늘날 노조는 민주당에조차 부차적 존재이며공화당에게는 대체로 적대 세력으로 취급된다일부 주에서는 여전히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지만정치적 힘은 반세기 전과 비교해 극적으로 약화했다이는 우연이 아니다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이 노조를 약화하기 위한 정책을 의도적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미디어도 과거에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권위주의적 헛소리를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장치였다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물론전후 수십 년간의 미디어를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당시 언론도 이란과테말라베트남 등에서 벌어진 미국의 개입을 감추는 데 일조했다하지만 결국 그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끝나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중요한 점은그 당시 언론은 현실에 기반해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던 제도적 목소리였다는 것이다지금은 그렇지 않다.

1960년대에는 매일 밤 CBS 뉴스에서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를 약 3천만 명의 시청자들이 시청했다당시 미국 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이었다오늘날모든 방송사 저녁 뉴스의 시청자를 합쳐도 1,8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그리고 그 시청자 대부분은 55세 이상 고령층이며, 55세 미만은 300만 명도 되지 않는다.

, TV 뉴스가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진실의 수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더 심각한 문제는이 제한적인 진실 전달 기능조차도 극우 성향의 억만장자들이 방송사를 장악하면서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트럼프의 헛소리에 동조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신문은 더 상황이 나쁘다인터넷그리고 페이스북과 구글의 지배로 인해 광고 수입이 거의 붕괴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은 저렴한 비용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한다그러나 진보 진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자유주의 및 좌파 진영 전체가 미디어를 무시해 왔고전통적인 주류 언론이 무너지는 동안 우파는 대놓고 폭스 뉴스 같은 대안을 육성했다여기에는 트위터(현 X)나 틱톡 같은 거대 플랫폼 장악페이스북까지 보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포함된다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조차 이제 그 팀에 합류했다.

이 말은 곧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의 망상적인 발언을 지지했다면 조롱당하고 사퇴했을 CEO들이이제는 버젓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40~50년 전 존재했던 견제 장치들은 사라졌다.

물론중도와 좌파가 선택할 수 있었고 지금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있었다나는 내 책 『조작된 시스템(Rigged)(무료다)에서 폭넓은 경제 문제를 다루었지만이들은 언론을 지원할 대체 수단—예를 들어 개인 바우처나 세액 공제—을 추진할 수도 있었다또한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의 독점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규제 체계를 만들 수도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이들 플랫폼에 섹션 230(Section 230)로 특별 보호를 부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은중도와 좌파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거의 무시했다는 것이다그들은 우리는 50년간 계속 지고 있었으니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전략을 사실상 택했다지금은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하지만 어쩌면어쩌면어쩌면누군가는 지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정책 논의에서 지혜처럼 반복되는 헛소리들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The Fatal Myth of the “Free Market” and Why CEOs Bow to Trump – CEPR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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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도좌파 대안 부재 자유 시장 CEO의 트럼프 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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