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세라는 개념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세기 자본』(Capital for the 21st Century)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대중화한 이후 10여 년 동안 큰 인기를 얻었다. 나는 늘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억만장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정치적으로 엄청난 장애물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부자들은 세금을 회피하고 탈루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현재 우리는 자산에 대한 공식 등록 시스템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자산을 숨기는 방법은 다양하고, 부자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상상도 못할 새로운 방법들을 계속해서 찾아낼 것이다. 부자들은 그냥 나라를 떠날 수도 있다. 부유세 지지자들은 출국세 같은 조치를 제안하지만, 비협조적인 나라로 이주하는 경우 이를 집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많은 유능한 헌법학자들이 부유세가 합헌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펴 왔다. 언젠가 그런 주장이 통할 법원을 우리가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런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도 헌법소송 서류를 읽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현재의 대법원은 부유세에 반대하고 있다.
내가 프랑스 정치에 대해 아는 바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현재 프랑스의 정치적 교착 상태가 부유세 도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리가 모두 배울 수 있는 유용한 사례가 될 것이고, 프랑스가 많은 세수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이 나라에서 부유세를 기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부유세의 대안: 애초에 억만장자가 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정치와 경제에 대해 게으른 사고방식이 하나 있다. 시장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정부가 나서서 그 불평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은 경제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터무니없다.
시장은 무한히 유연하게 바꿀 수 있고, 그 구조를 짜는 주체는 정부다. 정부는 시장을, 평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도 있고, 소수가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 미국은 이 두 가지 중 후자의 길을 택했고, 그 선택으로 이득을 본 이들이 그 방향을 주도해 왔다.
정치인들이 시장 결과를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시각을 고집한다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부자에게 이미 돈을 준 뒤에 다시 거둬들이는 것보다, 애초에 그들이 그 돈을 벌지 못하게 막는 게 훨씬 쉽다. 부자들이 소득과 자산을 세무 당국으로부터 숨기는 데 능숙하기도 하고, 자신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그 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여하는 특허와 저작권 독점은, 부자에게 흘러가는 돈을 급격하게 줄일 수 있는 정책 중 가장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영역이다. 내 계산에 따르면, 이 독점권은 매년 1조 달러 이상을 우리 모두로부터 그 수혜자들에게 이전하고 있다. 이는 가구당 연평균 8,000달러 이상에 해당하며, 세후 기업 이익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규모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엄청난 금액이다.
이전은 우리가 처방약, 의료기기, 스마트폰,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자유 시장에서는 저렴했을 품목들이 특허 독점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허 독점 덕분에 빌 게이츠 같은 인물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런 명백한 사실이 널리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물론 특허와 저작권 독점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혁신과 창작을 장려하는 인센티브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는 방식 등 다른 대안들도 충분히 존재한다. 특히 특허 남용이 극심한 의학 연구 분야에서는, 정부가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과 다른 정부 기관을 통해 매년 500억 달러 이상을 생의학 연구에 사용하고 있다.
이 금액을 세 배, 네 배로 늘리면 현재 특허를 통해 진행되는 연구를 대체할 수 있다. 추가 지출은 더 낮은 약값을 통해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연구 자금을 선불로 지급하고, 특허 독점 없이 자유 시장에서 약을 판매한다면, 거의 모든 약은 저렴하게 제공될 수 있다. 약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비용은 거의 항상 낮으며, 약값을 비싸게 만드는 것은 특허 독점이다. (참고로, 정부 자금으로 개발된 백신에 대한 통제권을 모더나(Moderna)에 넘겨준 결과, 우리는 최소 다섯 명의 모더나 억만장자를 만들었다.)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분야별로는 구조를 조금씩 달리 설계해야겠지만(이에 대해서는 『Rigged』 5장에서 다뤘다. 무료로 읽을 수 있다), 핵심은 경제 구조를 특허와 저작권 독점의 중요성을 크게 낮추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빌 게이츠나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같은 인물들이 수천억 달러를 모을 기회 자체를 줄일 수 있다.
금융 분야도 마찬가지다. 소규모 금융 거래세만 도입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고, 다른 효율성 개선 조치들과 함께 시행하면 더 효과적이다. 섹션 230(Section 230)을 손보는 것만으로도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재산 일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유세는 신이 아니다
나를 자주 읽는 독자에게는 반복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인데, 정책 논의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시장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통해 엄청난 양의 소득이 최상위층에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이 구조를 더 평등하게 소득과 부를 나눌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내 생각에 이런 구조 조정은 진보 진영이 정책을 고민할 때 중심에 놓아야 할 사안이다. 부유세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위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실제로 직면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출처] Why a Wealth Tax Won’t Work – CEPR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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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