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cissist’s slavery temple.
나르시시스트의 노예 신전. 내가 싫어하는 단어 3개로 만들어 본 런던 베이글 뮤지엄(런베뮤)의 다른 이름이다.
출처: 런던 베이글 뮤지엄 인스타그램
박물관(museum)은 어떠한 ‘가치’를 보존하며 그 가치에 누적된 시간을 전시한다. 런베뮤에 딱히 추구하는 가치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당연히 누적된 시간도 없다. 그날그날 하루에도 몇 번씩 구워지고 팔려나가는 베이글은 전시의 대상이 아니다. 런베뮤의 공간은 창업주 이효정(이하 Ryo)의 세련된 감각과 그 삶에 누적된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할 뿐이다. Ryo가 끊임없이 말하던 ‘나다움’,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나다움’은 그저 Ryo의 세련된 감각으로 잘 모사된 런던 카페 감성 아래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며 주께서 내어주는 성체인 베이글을 받아들이는(구매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이제 진짜 나다워질 수 있는 것인지, 나다움이 뭔지,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나긴 기다림(고행) 끝에 영접한 성체(베이글)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은 ‘영적 만족감’을 준다. 사실상 Ryo는 런던 감성의 베이글 박물관이 아닌 설명 불가능한 ‘나다움’을 떠받드는 일종의 신전(temple)을 세우고, 베이글이라는 재물을 밑천 삼아 ‘나다움’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지위에 올랐다.
수도승은 청빈함을 미덕으로 세속적인 욕심을 거부하며 신전을 향한 봉사 그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가혹한 노동력 착취는 신전 안에서 경건한 수행으로 둔갑한다. 힘겨운 고행을 이겨낸 수도승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주의 응답은 내밀하고 은밀하게 전해진다. 주의 대리인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97%에 달하는 비정규직, 기간제 런베뮤 노동자들은 낙오하지 않고 3%에 들어가기 위해(간택 받기 위해) 월 단위 쪼개기 계약과 가혹한 착취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주의 대리인, 3%만이 가지는 특권을 얻어내기 위해 침묵의 서약(omerta)까지 강요받았으니 그저 입 다물고 ‘나다움’의 메시아에게 바쳐질 재물(베이글)을 밤낮없이 구워내야만 했다.
표정, 말투, 걸음걸이 하나까지 모든 행위에 미치는 엄격한 교리와 규율 또한 수도승이 이겨내야 하는 자기 수행의 일부분이다. 묶지 않은 머리와 옷깃의 주름은 부도덕이고, 옆구리의 살은 불성실이다. 온갖 사소한 이유로 적어내야만 하는 시말서와 모두에게 공유되는 사과문 낭독 영상은 북한 인민재판의 자아비판에 비견될 만큼 야만적이지만, 신전 안에서는 그저 수도승이 행하는 고해성사와 다름없다. 자기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신전을 향한 신앙의 순결성을 입증하는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야만적인 고해성사를 통해 수도승의 주체성은 지워지고, 비워진 자리엔 메시아와 동기화된 텅 빈 ‘나다움’이 들어선다. 노동자 정 씨의 사망 후 런베뮤 임원이 유족 측에 보낸 문자의 부도덕과 양심을 논하는 대목을 통해 메시아 Ryo와 완벽하게 동기화된 훌륭한 성직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신에게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신은 그 자체로 선이며 도덕이다. 수도승의 자기 수행에는 근로기준법이 없고 따라서 착취도 없고 과로사도 있을 수 없다. 수도승과 성직자에게는 순교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런베뮤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노동자 정 씨의 죽음은 침묵의 서약(omerta)이라는 내부 규율로 인해 외부로 알려지는 데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런베뮤는 지난 11월 3일 뒤늦게 유족과 합의했다.
출처: 런던 베이글 뮤지엄 인스타그램
런베뮤의 수도승들에게 살인그룹 SPC의 2배에 달하는 산재들은 운 좋게 나를 피해 간 불운에 불과했다. 근로자 수가 런베뮤의 10배 이상인 SPC보다 산재가 2배 많다는 건, 사실상 근무자 수로 따지면 SPC의 20배에 달하는 것인데, 고행을 이어가는 수도승들은 이런 흔해 빠진 불운에 그저 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신전과 신에 맞서는 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낙오자가 많을수록 나의 고행은 더욱더 빛이 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힙스터’들이 찾아오는 ‘힙’한 공간에서의 ‘힙’한 경험이 수도승들에게 주는 ‘영적 만족감’은 성체(베이글)를 영접하고 즐거워하는 중생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노예 노동이 ‘힙’한 경험이 되고, 그 경험으로 하여금 ‘영적 만족감’을 느끼는 마법, 노예가 신의 대리인이 되었다고 믿게 되는 마법, 이것이 Ryo가 자신을 위해 세운 신전(temple) 안에서 그동안 행했던 기적이다.
수도승들의 이러한 헌신 속에 멈춤 없이 제단에 올려졌던 재물(베이글), 그리고 성체(베이글)를 받아들인 수많은 중생들의 찬양을 밑천 삼아 ‘나다움’의 메시아 Ryo는 2천억 원에 달하는 봉헌금을 손에 쥐며 쿨하게 엑시트(exit). Ryo는 비로소 신의 반열에 오르고, 열반의 경지에 오르고, 성불하고, 승천했다. 신의 존재는 언제나 멀리 저 너머에 있고, 신이 직접 강림하여 부름에 응답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Ryo가 가까운 시일 내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사과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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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현은 밴드 로큰롤라디오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가끔 글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