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이 올해 또는 내년에, 세계은행의 공식 분류에 따르면, 고소득 경제가 될 태세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험이 세계적으로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는 (소박한) 시도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의 고립 이후 세계은행에 저소득 국가로 가입한 지 46년 만에 이러한 단계에 도달했다. 따라서 중국은 반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소득 분류의 맨 아래에서 맨 위로 올라갔다. 더욱이 중국은 이 과정에서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함께 끌어올렸다(이 45년 여정 동안 중국의 평균 인구 규모였다).
그러나 나는 이 짧은 글에서 이러한 수치들을 살펴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숫자들은 수천 개의 출판물에서 이미 논의되었고, 내 책 ⟪위대한 세계적 전환⟫(Great Global Transformation)의 첫 장에서도 다루었다(2025년 11월 펭귄(Penguin)에서 출판되었고, 미국판은 시카고대학교 출판부(Chicago University Press)에서 2주 후에 출간될 예정이다). 나는 대신 매우 장기적인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시대에서 한 세기 또는 여러 세기 떨어진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보게 될지를 생각해 보려 한다.
출처: Unsplash+, Lan Lin
실제로 우리는 서유럽에 대한 서고트족의 침입,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아랍의 정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식민지화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 단지 정치적·경제적 측면만 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변혁적 사건들의 이데올로기적 중요성도 함께 본다. 서고트족의 정복은 라틴-게르만 혼합을 만들어 냈고 서방 세계에서 기독교를 통합했다. 아랍의 정복은 서방이 잊히고 파괴되었던 그리스 학문과 다시 접촉하도록 만들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는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 이탈리아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게 만들면서 르네상스의 전조이자 촉진 요인이 되었다. 유럽의 세계 정복은 서구 이데올로기, 그리고 내가 뒤에서 더 이야기할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사상을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가져왔다. 이러한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의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요약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세계의 “재편”이 분명한 정치적 효과 외에도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지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같은 관점에서 중국의 성공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중국의 성공이 낳은 가장 주목할 만한 이데올로기적 결과가 광대한 유라시아 공간에서 이데올로기적, 어쩌면 문화적 융합을 향한 움직임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렇게 생각한다. 중국의 경제적·문명적 성공은 분명히 유럽 이데올로기, 즉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자체로 유럽 계몽주의, 독일 철학, 영국 정치경제학의 산물이다. (레닌이 능숙하게 요약했던 삼위일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중국의 성공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오직 이러한 “수입된” 요소들만으로 중국의 성공을 설명하려는 사람은 틀릴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성공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것들은 필요했을 수는 있지만 성공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공산당이 없었다면 중국은 부유한 국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은 서구 이데올로기를 능숙하게 중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중국을 성공적으로 변혁하려면 이러한 본질적으로 외래적인 요소들을 국내의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해야 했다. 먼저 법가(法家) 사상에서 크게 유래한 요소들과, 이후에는 유교 사상과 결합했다. 중국은 본질적으로 유럽적인 이데올로기 전통과 중국의 이데올로기 전통을 결합해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 성장을 만들어 낸 하나의 사상 체계를 형성했다.
나는 현재 중국공산당(CPC)의 사고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전통 사상이 각각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절반씩인지?) 수치로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는 당의 주요 기관이 발표하는 문서들과 시진핑의 연설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두 요소가 모두 존재한다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어떤 발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체계에서 나온다. 예컨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호의존성, 변증법,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 같은 개념들이다. 반면 다른 발언들은 전혀 다른 전통에서 나온다. 내가 여기에서 검토한 시진핑의 연설과 짧은 일화들은 유교 전통에서 나온 것들로 가득하다. 덕 있는 행동, 도덕적 가치에 기초한 위계의 수용, 자기희생 같은 개념들이다.
이 두 전통은 때때로 서로 어색하게 공존한다. 나는 이 결합을 어렵게 느낀다.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개인의 도덕적 가치를 도입하는 것이 낯설게 들린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주로 역사적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다루며, 이러한 역사적 힘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더 나아가 더 우월한 경제·정치 체제의 달성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 행동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한 체제가 달성된 이후에야 개인의 도덕도 개선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문장(그가 20대였을 때 쓴 문장)이 말하듯이,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만들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조건 아래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전해진 조건 아래에서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문서에서는 종종 도덕적 덕목, 즉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이는 그러한 덕목이 더 우월한 체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나는 중국공산당 문서를 읽으면서 이러한 어색한 병치를 발견했다. 나는 또한 중국의 전통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더 정통한 사람들의 해석과 그것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래한 요소들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중국 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불분명하게 느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중국적 가치에 대한 언급을 더 잘 이해하고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용어들은 덜 중요하게 여겼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공식 이데올로기 입장인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Sinification of Marxism)”라는 구호는 양쪽 모두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는 서로 매우 다른 두 이데올로기를 결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나는 본질적으로 “거시적”(사회 전체를 다루는)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미시적”(개인을 다루는)이다. 장스궁(Jiang Shigong)은 중국의 이른바 “보수적 사회주의(conservative socialists)” 학파에 속하는 학자로서 이러한 대비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 대비를 단순히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두 요소가 서로 보완적이라고 본다.
중국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라는 문제에 지속적으로 직면해 왔다. 마르크스주의는 보편적 철학적 진리로서 단지 중국 역사라는 구체적 실천 속에 통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 문화와도 결합해야 한다.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Xi Jinping Thought on Socialism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for a New Era)…은 전통 중국 사상인 ‘심학(心学, Learning of the Heart)’을 활용해 공산주의 사상을 다시 활성화했다. 이러한 성과는…당과 인민 전체의 정신적 힘을 구축하고 공고히 했다.” (⟪오픈 타임스⟫(Open Times), 2018년 1월)
이를 덮어 두려는 시도에도 새로운 혼합적 이데올로기가 탄생할 때 지적 불편함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의 성공이 지닌 세계적 함의와 그것이 마르크스주의 및 “현실에 존재하는” 자본주의와 맺는 복잡한 관계에 특히 민감했던 사미르 아민(Samir Amin)도 다루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투쟁들이 도전하려 했던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라기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상시적인 제국주의적 성격이었다. 따라서 문제는 이러한 투쟁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게 만드는지 여부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궤적(Trajectory of historical capitalism), ⟪오직 사람만이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Only People Make Their Own History), 95쪽)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는 실천 속에서 그 가치를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이는 분명 마르크스를 기쁘게 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이데올로기 전통의 융합을 낳았다. 그것은 유럽 또는 서구의 이데올로기 공간과 중국의 이데올로기 공간을 서로 더 가깝게 만들었다. 유럽의 성공이 서구 이데올로기를 중국으로 가져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제적·기술적 성공을 토대로 형성된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는 서구와 세계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역방향 인과관계를 통해 그것은 서구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그 안에 중국 철학의 요소들이 통합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중서(中西) 혼합 사상은 다른 지역에서도 모방되어 세계 곳곳에서 더 흔해질 수 있다.
앞으로 중국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제적 성공은 정치 영역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국내 문화를 결합하고, 경제 영역에서는 개방적 자본주의를 결합한 체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국의 경제적·기술적 성공이 장기적으로 가져올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세계가 가장 바람직한 체제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더 서로 가까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반드시 완전한 합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출처] The ideological implications of China’s economic succes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