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노란봉투법, GM하청노동자들의 집단해고 사태

[편집자 주] 지난달 28일, 한국지엠(GM) 세종물류센터에서 부품물류업무를 담당해온 우진물류 소속 하청노동자 120명 전원이 해고를 통보 받았다. 노동시민사회에서는 이번 집단해고 사태가 올해 7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물으며 투쟁에 나선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보복성 탄압”이자 “노조파괴 행위”라 짚고 있다. 또한 이는 원청 한국지엠이 발표한 국내 직영 정비 서비스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등의 계획과도 맞물려 더 많은 원하청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대규모 구조조정의 일환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에 노동·인권·사회단체 및 정당들은 지난 12월 4일 ‘GM부품물류지회 투쟁승리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원청과 정부의 책임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참세상은 이번 집단해고 사태의 근본적 원인과 문제해결 방안에 대한 공대위 활동가들의 분석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GM부품물류지회 투쟁승리!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현장. 민주노총 충북본부 제공

 

11월 28일 아침, GM부품 물류를 책임지는 하청노동자 120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통지는 문자와 메일, 심지어 집으로까지 등기로 보내졌다. 세 번에 걸친 해고통지서에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까지 공포로 내몰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20년 근속 노동자들. 도대체 이 핵심 물류 거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비정규직도 노조할 수 있는 나라, 설렜다. 

한국GM에서 부품물류업무 하청을 맡은 우진물류의 노동조건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제로 잔업을 시키고, 연차 사용은 자유롭지 못하다. 더 심각한 것은 10년을 일해도 근속 인정을 받지 못해 1년 차와 같은 임금을 받는 저임금 구조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어도 산입범위 꼼수로 그 효과는 거의 없었다. 올해 기본급 158만 원에 잔업 수당을 합쳐야 겨우 250만 원 수준이었다. 그나마 주말에 쉴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노동자들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높은 벽 앞에 서는 느낌이었다.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어봤자 해고될 뿐", "노조를 만들면 투쟁만 하고 남는 게 없다"라는 현장의 이야기가 현실이었다. 실제 2024년을 기준으로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2% 남짓이다.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다. GM부품물류 하청노동자들은 현실의 높은 벽 앞에 노조 할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그런데 희망이 생겼다. 노조법이 개정된 것이다. 언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연일 기사를 냈다. 원청이 사용자 범위에 포함돼 원청과도 교섭할 길이 열렸다고 하니 현장은 꿈틀거렸다. 특히 창원에서 같은 일을 하는 부품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 판정을 받아 직접 고용됐다는 소식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설렜다.

시행도 되기 전에 찟겨진 '노란봉투법’

2025년 7월,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하청업체 사장의 반응은 "노조 만들지 마라. 노조 만들면 원청에서 주는 성과급 못 받는다"는 노골적인 회유만 되풀이했다. 회유를 뚫고 금속노조 GM부품물류지회를 설립했다. 노동자들은 정식으로 단체협약을 맺으며 현장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하청사인 우진물류와의 단체교섭은 어느 순간 진행이 멈췄다. 임금 및 노조활동 등 주요 요구안에 대해서 원청사인 한국GM이 반대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매년 진행되었던 업체계약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조정 절차를 통해 합법적인 노동쟁의권을 확보하고 진짜 사장이 나오라는 요구와 함께 파업 계획을 밝히자 "진짜 사용자 나오라고 해서 나왔다. 나랑 얘기하자"라는 말과 함께 한국GM 원청이 만남에 응했다. 그러나 이들이 들고 온 것은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였다. "물류센터는 외주화하겠다. 업체 계약 갱신 안 한다. 발탁 채용 검토하고 있다. 파업 하지 마라."

노동자들이 일방적인 구조조정 추진이 아닌, 노조와의 논의를 제안하자 한국GM이 내놓은 답은 11월 28일 자의 일방적인 해고 통지였다. 노조 결성 직후, 20년 동안 유지되어온 고용 승계 관행이 파기된 것이다. 이는 정당한 노조 활동과 원청의 책임을 묻는 요구에 대한 극단적인 보복 행위임이 명백하다. 원청사의 지배개입을 통한 부당노동행위이고 위장폐업이다.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노조법 2.3조 개정의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무력화하는 행위가 법 시행을 본격화하기 전에 자행된 것이다.

한국GM 구조조정과 사용자 책임회피 공작

세종물류센터는 한국GM의 국내외 부품 공급을 담당하는 유일한 핵심 거점이다. 한국GM은 수십 년간 이곳을 하청이라는 간접고용 방식을 통해 운영하며 막대한 노동 비용을 절감해 왔다.

현재 한국GM은 직영 정비 폐쇄 계획 등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수천억 원의 알짜 수익을 보장해 온 물류마저 외주화해 더 많은 이익을 미국 본사로 빼돌리려는 심산이다. 여기에 더해, 창원부품물류센터 판례를 통해 물류 업무의 불법 파견이 명백해진 상황에서 세종부품물류에 대한 원청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고 서두르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불법 파견 및 원청 사용자 책임 문제를 제기하자, 한국GM은 하청업체 폐업과 대량 해고라는 카드를 꺼내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것이다. 20년 동안 불법 파견을 통해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갈취해 온 것에 대한 사과나 책임은커녕, 아예 일터를 파괴하여 자본의 배만 불리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찢겨진 노란봉투법, 사회적 책임을 묻다

개정 노조법 2조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노동시장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고, 원청이 하청업체 뒤에 숨어 무책임하게 노동자를 통제하는 관행을 끊어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이다.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의 희생으로 얻어낸 이 법의 취지가 한국GM의 계약 해지라는 단 하나의 행위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만약 한국GM의 행태가 법적으로 면죄부를 받는다면, 향후 노조법 2조는 사실상 사문화될 위험에 직면한다. 앞으로 모든 대기업이 노조를 만든 하청업체에 대해 일방적인 계약 해지 및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원청 사용자 책임의 굴레를 벗어던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법의 실효성을 훼손하고, 노동자의 교섭권을 무력화하는 가장 교묘하고 악질적인 방법이다.

더욱이 한국GM은 2018년 국민 세금 8,100억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받아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경영 정상화와 고용 안정에 대한 책임을 요구할 위치에 있다. 국민의 혈세로 위기에서 벗어난 기업이, 핵심 사업장의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고 노조 탄압 의혹을 받는 것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무를 방기하는 행위이다. 이를 방기한다면 국회의 입법 행위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가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묻고 싶다.

‘노동의 존엄이 보장되는 나라’를 향한 사회 연대가 절실하다

한국GM 세종부품물류센터 집단해고 사태는 우리 사회의 불안정 고용 체제가 법과 제도의 변화마저 압도하려 하는 중대한 경고등이다. 지난 12월 4일 노동·인권·사회단체 및 정당이 모여 하청노동자의 집단해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불평등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합쳐져 만들어진 법이다. 찢겨진 이 법을 다시 사회적 연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승계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쟁취하기 위해 함께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선지현은 '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이짓'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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