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노조 파괴 매뉴얼, 물류로 이어진 공급망 단결로 퇴치한다

[편집자 주] 지난달 28일, 한국지엠(GM) 세종물류센터에서 부품물류업무를 담당해온 우진물류 소속 하청노동자 120명 전원이 해고를 통보 받았다. 노동시민사회에서는 이번 집단해고 사태가 올해 7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물으며 투쟁에 나선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보복성 탄압”이자 “노조파괴 행위”라 짚고 있다. 또한 이는 원청 한국지엠이 발표한 국내 직영 정비 서비스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등의 계획과도 맞물려 더 많은 원하청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대규모 구조조정의 일환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에 노동·인권·사회단체 및 정당들은 지난 12월 4일 ‘GM부품물류지회 투쟁승리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원청과 정부의 책임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참세상은 이번 집단해고 사태의 근본적 원인과 문제해결 방안에 대한 공대위 활동가들의 분석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전광석화처럼 펼쳐진 이 사건은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부품사가 폐업 또는 부도가 나서 공장이 폐쇄된 적은 있었지만, 완성차 공장 폐쇄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 한해에만 한국지엠 정규직 3천 명의 고용이 사라졌고, 공급망 중 부품사에서만 8천 명의 일자리가 증발해 버렸다.

그 해를 기점으로 GM 자본은 한국지엠의 역량을 하나둘씩 파괴하기 시작한다. 2018년 연말에 디자인센터·엔지니어링센터를 뚝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버렸고, 2019년부터는 정비와 부품물류 등 내수판매와 연관된 부서를 망가뜨린다.

2019~2021년 인천·창원 물류센터 폐쇄

첫 번째 타겟은 2019년 인천물류센터 폐쇄였다. 한국지엠 물류센터는 인천·창원·세종 3곳에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폐쇄하고 세종물류로 통합하겠다는 것이었다. 군산공장 폐쇄와 법인 분리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시작된 공세에 맞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물류센터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만들어냈다.

군산공장 폐쇄 때엔 그런 단결을 만들어낼 시간도, 여유도 갖지 못했다. 다행히 연구개발 법인 분리 과정에서 연구직·사무직 노동자들의 저항을 조직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법인분리를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려면 생산직과 사무직의 구분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단결의 힘이 비정규직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100명 안팎의 정규직(생산직+사무직) 노동자 규모에 비해 8명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이긴 했지만, 조직화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고 인천물류 폐쇄 시점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두 번째 타겟은 2020년 창원물류센터와 제주Depot 폐쇄였다. 이번에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단결은 마침내 생산직·사무직의 구분을 넘어 비정규직으로까지 단결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40명의 창원물류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폐쇄 계획을 접한 뒤 자포자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금속노조 깃발을 세웠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단결하자 그 영향력은 물류센터 밖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이곳에서 A/S 부품을 공급받는 수많은 협력정비센터에서도 “창원물류·제주Depot 폐쇄 반대” 목소리를 함께 내주기 시작했다. 직접 자기 이름을 밝히고 서명운동에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협력센터 사장님은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끊임없이 채워나가다

계획을 밝힌지 3~4개월 만에 폐쇄에 성공한 인천물류센터와 달리, 생산직·사무직·비정규직의 단결로 맞선 창원물류센터의 경우 폐쇄까지 무려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었을 뿐 결국에는 이겨내지 못했다. 이번엔 도대체 뭐가 부족했던 것일까?

창원물류가 폐쇄되면 그 업무를 맡게 될 세종물류센터까지로 단결을 확대해야 했다. 사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기존 3개 물류센터 중 한국지엠 사업의 핵심에 해당하는 수출 부품물류를 책임지는 핵심 센터가 세종물류였고, 이곳까지 단결을 확대한다면 GM 자본의 급소를 쥘 수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물류센터로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2020년부터 꾸준히 전개해왔고, 마찬가지로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의 단결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세종물류 노동자들의 눈에도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인천물류를 폐쇄했는데 창원물류까지 폐쇄? 말이 좋아 세종물류로 통합이지, 이렇게 가다간 세종물류도 폐쇄하고 외주화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세종물류센터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의 단결은 노동조합 지침이 떨어지기만 하면 언제든 일손을 멈출 수 있을 정도까지 치솟았다. GM 자본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정비·판매·물류 부문 전체를 관장하는 CCA(Customer Care & Aftersales) 사업부의 당시 수장이었던 마커스 스턴버그 본부장은 즉각 담화문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선다.

“세종PDC 운영을 외주화하는 것은 결코 계획에 포함된 적이 없었으며 PDC 활동을 세종으로 통합하는 지금 우리의 계획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창원과 제주 업무도 성공적으로 세종에 통합할 수 있다고 전적으로 믿습니다.” (2021년 4월 13일 CCA 본부장 담화문)

한국지엠 공급망연석회의 구성

하지만 2021년에 창원물류센터는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그러나 과거와 똑같지는 않았다. 인천물류센터 폐쇄 후 비정규직은 전원 해고를 당했지만, 창원물류에서는 금속노조로 단결했기에 폐쇄와 집단해고 이후에도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끝까지 싸웠던 비정규직 조합원 모두 생산공장의 정규직으로 고용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인천과 창원물류 폐쇄에 이어 파죽지세로 세종물류센터까지 외주화하려던 GM의 계획은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창원물류 폐쇄는 계획보다 무려 1년 넘게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과정에서 세종물류까지 투쟁의 불씨가 옮겨붙을 뻔했기 때문이다. 세종물류 외주화 계획을 포기할 순 없었지만 잠시동안은 보류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가 승리한 것은 아니다. 이 패배를 되갚아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채워야 할지 노동자들은 또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반도체 공급위기를 겪으면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물류 노동자 단결이 GM 자본을 저토록 놀라게 만들었는데, 완성차와 부품사를 아우르는 공급망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이뤄낸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고 2024년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 출범으로 결실을 맺는다. 물론 한국지엠 공급망에 조직된 모든 노동조합을 포괄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패배의 경험을 딛고 다시 출발하기에 매우 좋은 보금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완성차와 부품사,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테이블에서 조직화와 투쟁을 논의할 수 있다니!

물론 공급망 연석회의가 거대한 투쟁을 조직하거나 새로운 교섭의 전망을 열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세종물류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로 단결을 만들어낸 것이다. 패배를 거듭해온 노동자들이 드디어 승리를 향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이다.

2024년 5월,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 출범 기자회견 현장. 금속노조 제공

최후의 퍼즐 조각 세종물류센터

인천물류는 정규직 100명에 비정규직 8명이었고, 창원물류는 정규직 50명에 비정규직 40명이었다.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온 자본 입장에서 인천·창원물류는 실적 불량(?) 센터였던 반면, 세종물류는 비정규직 규모만 100명이 훨씬 넘는 모범(!) 센터였다. 그래서 이곳에 수출용 부품 물류를 모조리 배정했고 인천·창원물류의 물량도 모조리 몰아넣었다.

창원물류에서는 생산직·사무직·비정규직의 단결을 만들어 세종물류 생산직·사무직으로까지 불씨를 옮길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진물류 그러니까 세종물류 비정규직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노동자들은 절치부심하며 공급망 연석회의라는 ‘씨줄’을 확대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세종물류 비정규직이라는 ‘날줄’을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GM의 물류 파트는 수천억의 영업이익을 내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천문학적 영업이익이 나도록 설계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GM 본사 입장에서는 정규직 임금의 절반만 주고도 황금알을 만들어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노조 상태로 유지하는 게 필요했다. 그런데 그 저지선이 뚫렸다. 마지막 퍼즐조각이 활성화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GM 자본이 허둥지둥댄다. 파업 한 번 해보지 않은 노동자들을 만나러 원청의 상무가 버선발로 뛰어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내가 진짜 사장”이라는 말까지 노골적으로 언급하며 불을 끄려 했다. “파업을 하는 건 초치는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지만, 세종물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즉각 파업으로 응수했다.

파업을 초를 치는 게 아니라 GM 자본을 더 급하게 만들었다. 창원물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를 이겨내며 1년 넘게 투쟁했을 때 제시했던 ‘발탁채용’을 들고 온 것이다. 물론 업체 폐업과 집단해고 문서도 함께 들고 왔다. 이렇게 빠른 속도의 전개는 한국지엠 노동자 투쟁 역사에서 전무후무하다. GM 자본도 급소를 찔린 것이다.

적의 급소가 나의 급소

세종물류센터가 승리를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라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최근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GM 자본은 의표를 찔려 허둥지둥대다 이제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저들의 급소였던 것이다.

바둑의 격언 중에 ‘적의 급소가 나의 급소’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급소를 노릴 때 나의 약점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 역시 사력을 다해 방어에 나설 테고, 내가 공격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약점을 노려 반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야 할 약점은 무엇일까?

첫째, 2개의 전선이라는 부담이다. 세종물류센터 외주화는 최근 GM 자본의 직영정비소 폐쇄 공격과 맞닿아 있다. GM은 내수판매를 망가뜨리며 언제든 철수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가볍게 만들려 한다. 그래야만 정부와 노조로부터 특혜와 양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물류 투쟁과 직영정비 투쟁이라는 2개의 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맞붙는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다. 어느 한곳이 밀리거나 무너지면 다른 곳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개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전략은 결국 단결과 연대의 확장일 수밖에 없다.

둘째,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었지만, 이를 실질적 권리로 쟁취하기 위한 민주노조 투쟁동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GM 자본이 “내가 진짜 사장”이라며 그동안 몰래 했던 협박을 노골적으로 행하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지만, 역으로 노조운동 취약성이 드러난 지점이기도 하다.

원청이 사용자책임을 인정하고 양보하도록 강제할 것인가, 원청의 업체 폐업과 집단해고 등 직접 탄압의 물꼬를 터줄 것인가? 세종물류 투쟁은 이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기서 밀리면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노조법 2·3조 개정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밀린다. 원청 사용자책임을 내건 모든 간접고용 투쟁동력을 이곳에 집결시켜 제3의 전선을 쳐야 한다.

셋째, 가능성 못지않게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가 가진 한계가 있다. 우리가 가진 무기를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아직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공급망 연석회의에 속한 노동조합들의 응원과 지원이 세종물류 비정규직 노동자들 조직화 초기 단계에 적지 않은 힘을 불어넣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조 설립을 엄호하는 단계를 훨씬 뛰어넘어 전면전의 단계로 빠르게 진입하는 중이다. 응원과 지원을 넘어 함께 전선을 만들어갈 책임이 공급망 연석회의에 제기되고 있다. 내수판매와 A/S 및 부품물류가 무너질 때 영향을 받는 수많은 공급망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연구개발법인(GMTCK) 등에서 벌어지는 GM의 수상한 움직임을 폭로하면서 전선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제4, 제5의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완성차 생산직 노동자들의 결집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들의 규모는 가장 거대하고 파괴력 있지만, 꼭 그만큼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부품물류와 직영정비, 그리고 내수판매가 무너지는 것에 걱정과 우려, 그리고 GM 자본을 향한 분노가 쌓이지만 이들에겐 아직 ‘투쟁의 전망’이 설득력있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GM 자본의 행태가 부족한 설득력을 채워줄 것이다. 여러 개의 전선이 만들어지면 GM은 탄압을 위해서라도 행동할 수밖에 없고, 움직이는 과정에 수많은 실수들도 함께 제조해낼 것이다. 특히 2028년 산업은행과의 계약만료 시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GM의 수상한 움직임은 하나둘이 아니다.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개의 전선이 만들어낼 에너지와 결합한다면, 가장 늦게 하지만 가장 파괴력 있는 움직임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 결성한 지 불과 5개월, 그사이 큰 피해를 입었다. 고용안정과 미래전망이 아니라 해고장을 가족에게 안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픈 만큼, GM 자본도 급소를 찔려 헤매고 있다. 자본가들은 자신감에 넘치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저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루에도 수십가지 말을 수백가지 방법으로 퍼뜨린다.

그만큼 GM 자본은 다급한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만큼 밀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어디에 맞추고 에너지를 끌어모을지, 수십 가지 상상력을 동원하고 토론을 벌일 때다. 물류로 이어진 공급망을 따라, 그리고 노조법 2·3조가 이어준 간접고용 맥을 따라 수백 가지 길을 찾아 단결과 연대를 확장하자. 그 길의 끝에 답이 있다. 지금 찔린 곳이 누구의 급소인가를 가르쳐줄 테니.

덧붙이는 말

오민규는 노동문제연구소 해방(解放)의 연구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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