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하의 미국과 유럽이 더 이상 동맹이 아니라는 것은, 고의로 무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트럼프는 자신이 그리는 인종차별적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완곡어법이나 암호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는 백인 권력을 원하며,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열어두는 한, 그는 이들을 자신의 적대자 명단에 올릴 것이다.

바다 건너편에는 적대적인 미국이, 국경 옆에는 공격적인 러시아가 있는 상황은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에 매우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결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며, 그들 역시 자체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정당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은 자국민에게 민주주의가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보다 더 유망한 선택지임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동맹을 찾는 데 있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유럽은 중국을 ‘빠른 연락처’ 목록에 올려야 한다.

중국이 민주주의의 등불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진핑 주석은 반대 의견을 엄격히 통제하는 권위주의 지도자다. 그러나 트럼프와는 달리 시 주석은 유럽인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자국을 통치해야 하는지 말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를 밀어붙일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유럽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맺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중국 경제는 이제 미국 경제보다 훨씬 크다. 또한 중국은 녹색 기술 분야에서 세계 선도국가다. 중국은 전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과 맞먹는 수준의 전기차를 보유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 설치 용량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배터리 기술에서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유럽은 이러한 기술과 제품을 더 적은 장벽으로 수입함으로써, 교통 및 에너지 비용을 대폭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는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은 수백만 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자국 제조업 부문을 보호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럽은 제한적인 시장 개방과 기술 이전에 대한 약속을 병행해야 한다. 1980년대 미국이 일본산 자동차에 대해 부과한 자발적 수출 자제 조치는 이런 접근 방식의 좋은 모델이다. 이 체제 아래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미국으로의 수출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제조사들은 차량을 더 적게 수출했지만, 그 대신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 내에 공장을 신속히 건설했는데, 미국 내에서 생산된 차량은 이러한 수출 자제 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구체적인 조건은 협상을 통해 정해야 한다. 중국은 당연히 더 많은 수출과 더 적은 기술 이전 요구를 선호하겠지만, 이미 태국 및 다른 국가들과 유사한 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므로, 유럽도 이와 비슷한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양측 모두 무역을 통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분명한 사례다.

또한 유럽과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통합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제 결제에 사용되는 SWIFT 결제 시스템이 그렇다. 트럼프 이전에도 미국은 이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이용해 자의적으로 국가나 개인에게 제재를 가하곤 했다.

트럼프는 이 권한을 새로운 극단으로 끌고 가고 있으며, 카리브해에서 민간 선박과 비무장 개인을 공격한 것과 관련해 자신이나 참모들이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는 조건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결제 시스템이 있다면, 이러한 위협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에서 트럼프가 관심도 없는 평화협정을 중재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동맹 관계이긴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광범위한 영토를 합병하고, 남은 우크라이나 영토까지 계속 위협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익이 없다.

러시아는 중국에 충분히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중국이 협상 조건을 제시한다면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평화 협정은 하루 아침에 체결될 수는 없겠지만, 트럼프, 쿠슈너, 그리고 그 측근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협정보다 중국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훨씬 더 유망한 경로일 것이다.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히틀러를 물리치기 위해 스탈린과 소련과 동맹을 맺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는 민주주의 유럽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다. 유럽은 가능한 모든 동맹이 필요하며, 중국은 그 가장 현실적인 후보다.

[출처] Europe Needs China: An Ally Against Trump and Russia – CEPR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