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위해 짜인 글로벌 공급망은 폐기물과 독성 물질, 그리고 환경 파괴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출처: Unsplash+, Andy Quezada
이 광경은 평소 훨씬 음울한 풍경에 익숙한 지역 주민들에게는 보기 드문 선물이었다. 2001년 이후 아타카마에서 가장 눈에 띄게 늘어나온 것은 꽃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헌옷 더미였기 때문이다. 2022년 가장 거대한 더미 하나가 불태워졌을 때, 그 안에는 약 10만 톤의 버려진 섬유가 쌓여 있었는데, 이는 항공모함 한 척의 무게에 맞먹는 규모였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옷더미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이 패션의 묘지는 규모가 너무 커져 일부 매체에서는 이를 ‘거대한 패션 쓰레기 지대(great fashion garbage patch)’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장은 인근의 이키케 자유무역항 덕분이다. 이곳에서는 칠레가 관세나 세금 없이 온갖 국제 상품을 수입하는데, 여기에는 미국·유럽·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헌옷도 포함된다. 상태가 좋은 일부 물품은 국제 시장으로 재판매되지만, 값싼 패스트패션 제품은 물량이 너무 많아 대부분 걸러지지 못한다. 그 결과 이 옷들은 사막에 버려지는데, 이는 정부가 대체로 외면해 온 공공연한 비밀이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든 이어지는 소각은 인근 마을을 연기 가득한, 건강에 해로운 공기로 뒤덮는다.
활동가들은 수년간 이 사막 투기를 막기 위해 싸워왔다. 이들은 소각 장면을 기록하고,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칠레의 이 혼란에 대한 진짜 책임은 국경 너머에 있다. 이 옷들은 섬유로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될 때까지, 거대한 글로벌 오염 기계의 일부다. 이 기계는 세계 경제가 세계화되고 공장들이 지구 반대편의 소비자를 향해 더 싸고 더 빠른 스타일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했다.
이 새롭고 초대형·초고속 패스트패션 시스템은 파괴력이 극단적이다. 오늘날 의류 산업은 연간 약 1,700억 벌의 옷을 생산한다. 이 가운데 대략 절반은 그해 안에 버려지고, 거의 모든 제품이 토지와 대기, 바다를 오염시킨다. 이 과정에서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최대 10%를 차지해 에너지 산업 다음으로 큰 산업 오염원이 된다. 동시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물을 소비하고 오염시키는 산업이기도 하다. 이 모든 피해를 종합하면, 패션 산업은 에너지와 식량 산업에 이어 지구에서 세 번째로 오염을 많이 일으키는 산업이다.
항상 이 정도로 심각했던 것은 아니다. 패션은 오래전부터 환경 파괴의 흔적을 남겨왔다. 여성들의 모자를 장식하기 위해 수천 마리씩 희생된 흰왜가리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1974년에 체결된 다자섬유협정(Multi Fibre Arrangement)은 세계화가 가속되는 와중에도 패션 산업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이 협정은 각국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섬유·의류 수입량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해 국내 생산을 보호했다. 그러나 2005년 1월 1일 이 협정이 종료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는 사실상 패션 산업의 ‘나프타 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중국과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생산된 저가 상품이 미국과 유럽연합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와 동시에 중고 의류가 개발도상국 시장을 잠식하면서 해당 국가들의 국내 생산을 무너뜨렸다. 여기에 2016년, 800달러 이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이른바 ‘최소 면제’ 규정이 완화되면서, 악명 높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쉬인과 테무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부 패션 산업 관측자들은 이제 이 산업이 중대한 전환점에 다다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최소 면제 규정의 폐지와 트럼프의 ‘해방의 날’ 관세는 산업 전반에 충격파를 던졌고, 미국 소비자들을 동요시켰으며, 그 여파는 쉬인과 테무 같은 대형 브랜드에도 미쳤다. 이들 기업은 이미 미국 내 판매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유럽과 호주로 방향을 돌리고, 생산·운영 거점을 다른 나라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다른 기업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노력을 축소하고 있으며, 이는 바닥을 향한 경쟁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다.
일반적인 패스트패션 청바지는 버려지기 전까지 고작 일곱 번만 착용되며, 그 결과 착용 한 번당 탄소 발자국은 전통적인 데님 청바지보다 10배 이상 높다. 출처: Unsplash, Rodrigo Rodrigues
1단계: 더럽고 비대해진 이면
우리 옷이 어떻게 이렇게 유해해졌는지를 이해하려면, 출발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즉, 옷이 처음에 어떻게 옷이 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룰루레몬의 애슬레저 레깅스부터 2024년 여름 바이럴 아이템이 된 유니클로 베이비 티셔츠까지, 가장 화려한 드레스에서부터 아무 특징 없는 모조 청바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류의 출발은 같다. 대부분의 옷은 땅속 깊은 곳에서 생을 시작한다. 하나는 면화의 씨앗으로, 다른 하나는 매년 합성섬유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약 3억4,200만 배럴의 원유 속에서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이 두 가지 기원 가운데 하나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합성섬유는 전 세계 섬유 생산의 거의 70%를 차지한다. 폴리에스터는 패스트패션 대기업이든 고급 명품 브랜드든 가리지 않고, 스타일과 브랜드 전반에 걸쳐 특히 널리 쓰이게 되었다. 부드럽고 신축성 있는 특성 덕분에 전통적인 직물을 흉내 낼 수도 있고, 현대적 고성능 메시 소재로 설계할 수도 있다. 비용 역시 낮다. 경우에 따라 면 가격의 절반에 불과해, 소비자에게 더 싼 가격을 제시하면서 이윤을 확보하려는 브랜드와 공급업체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이 유연한 겉모습 아래에는 불쾌한 현실이 숨어 있다. 20세기 중반 화학 대기업 듀폰에 의해 상업화된 폴리에스터 생산 공정은 에틸렌글리콜(부동액에도 쓰이는 물질)과 테레프탈산(플라스틱 병에 흔히 사용되는 물질)이라는 두 석유 기반 화학물질을 초고온으로 가열한 뒤, 이를 미세한 구멍으로 압출해 실을 만드는 방식이다. 2015년 기준 이 공정에서 발생하는 연간 탄소 오염량은 석탄 화력발전소 180곳이 배출하는 양에 맞먹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폴리에스터 직물은 직조·세탁·가공·봉제되는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플라스틱 미세섬유를 떨어뜨린다.
한편 현재 전 세계 섬유 생산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리넨이나 면 같은 식물성 섬유도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면화는 다른 주요 작물에 비해 자원 집약적인 작물로 여겨진다. 세계자연기금(WWF)이나 환경정의재단 같은 환경단체들은 면화를 특히 ‘목마른’ 작물로 평가하는데, 이는 소비되는 물의 양 때문이다. 동시에 재배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 농약의 양 때문에 ‘더러운’ 작물로도 악명이 높다. 전통적인 청바지와 티셔츠 한 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면화 섬유를 재배하려면 관개용 물만 약 500갤런이 필요하고, 여기에 추가로 약 1,500갤런의 빗물이 소요된다. 면화는 전체 경작 가능 토지의 3%도 채 차지하지 않지만, 전 세계 농약 판매의 약 5%, 살충제 판매의 10%를 차지한다.
비스코스처럼 상대적으로 덜 흔한 다른 섬유들도 환경적 대가를 동반한다. 비스코스는 매년 1억 그루가 넘는 나무의 펄프를 원료로 만들어지는데,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중 거의 3분의 1이 원시림이나 멸종 위기 숲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합성섬유와 천연섬유를 섞은 혼방 소재는 점점 더 보편화되었고, 이는 재활용을 위한 공학적 난제를 키우는 동시에 플라스틱의 확산을 한층 더 넓히고 있다.
2단계: 독성 섬유
필요한 원료가 재배·수확되거나 듀폰의 원시적 화학 물질에서 추출된 뒤, 이들은 직물로 만들어지고 표백과 염색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극도로 독성이 강하며, 전 세계 수질 오염의 약 20%를 초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면화를 재배하는 데 사용되는 농약은 표백제와 함께 수로로 흘러들고, 염료에 포함된 카드뮴, 크롬, 납, 비소 같은 중금속도 함께 배출된다. 세계은행은 표준 산업용 염색 공정에 최소 72종의 독성 화학물질이 사용된다고 확인했다. 이 화학물질들이 대수층으로 스며들면 연쇄적인 피해는 치명적이다.
의류 공장에서 나온 짙은 슬러지가 인근의 호수와 하천을 채워 광합성에 필요한 빛을 차단하고, 수생 생태계를 파괴한다. 합성섬유를 헹구는 것만으로도 미세플라스틱이 배수구로 쏟아져 내려가며, 전문가들은 매년 약 50만 톤의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된다고 추정한다. 이는 에펠탑 50개의 무게에 해당한다. 이렇게 오염된 물 가운데 일부는 다시 지역 농작물 관개에 사용되면서, 주변 공동체의 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수확량을 줄이며 생물다양성을 해친다.
인도네시아 서자바의 치타룸강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독성의 증거다. 원래는 소규모 농촌 마을과 번화한 도시를 지나 흐르던 깨끗한 강이었지만, 1980년대 수백 개의 섬유 공장이 들어서면서 폐기물 투기장이 되었다. 공장들이 강변을 따라 계속 늘어나자, 이들은 폐수를 그대로 강과 지류에 흘려보냈고, 물은 파랑·빨강·노랑·검정으로 물들었으며 수은, 납, 크롬 등 각종 화학물질로 가득찼다. 수년 동안 강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피부 발진과 장 질환은 물론, 신부전과 종양 같은 더 심각한 질환을 겪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8년 이 강을 2025년까지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기한은 거의 지나갔다. 치타룸강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강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한 섬유 공장에서 색깔별로 분류된 헌옷 더미가 재활용을 기다리고 있다. 사용된 의류 가운데 새 옷을 만드는 데 재활용되는 비율은 고작 1%에 불과하다. 출처: Unsplash, Francois Le Nguyen
3단계: 얼마나 빨라야 지나치게 빠른가
옷이 생산되어 출하 준비를 마치면, 패션 산업은 대체로 몇 가지 범주로 나뉜다. 패스트, 더 빠른 패스트, 그리고 초고속 패스트다. 리바이스, 갭, 나이키 같은 비교적 전통적인 브랜드들은 시즌에 앞서 의류 컬렉션을 기획한 뒤, 해외 공장에 생산을 맡기며 긴 공급망을 따라 옷의 여정을 시작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디자인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기간은 짧게는 12주에 불과하다. 자라, H&M, 포에버21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이보다 더 빠른 ‘마이크로 시즌’을 운영하며, 1년에 수십 개의 컬렉션을 내놓는다. 쉬인, 테무, 시더 같은 초고속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며칠 만에 새 옷을 디자인하고 생산해 배송할 수 있다.
이러한 속도는 옷이 어느 범주에 속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폐기물을 낳는다. 전통 브랜드와 패스트패션 업체들은 각 옷을 얼마나 만들어야 할지 정확히 맞추기 위해 수요를 예측하려 한다. 그러나 블라우스 하나, 스커트 하나, 재킷 하나마다 별도의 맞춤형 생산라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장들은 소량보다 대량 주문을 유도한다. 대량 주문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개당 비용을 낮추고,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효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지만, 수익과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 결과 기본값은 언제나 ‘과잉 생산’이다.
어떤 브랜드가 과잉 재고의 주범인지 궁금하다면, 잦은 세일이나 큰 폭의 할인에 주목하면 된다. 2022년 의류 대기업 아소스는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한 뒤, 10억 달러가 넘는 미판매 재고를 떠안게 되었다. 아소스는 이를 대폭 할인해 재판매 업체에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갭, 올드 네이비, 바나나 리퍼블릭, 애슬레타 등을 보유한 갭 그룹도 창고에 쌓인 재고를 줄이기 위해 연달아 할인 행사를 벌였다. 제품의 희소성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초과 재고를 폐기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명품 브랜드들 역시,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가장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하는 주체로, 과거에는 최대 46%의 재고가 할인된 적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전 세계적 과잉 생산량은 연간 최소 80억 벌에서 많게는 600억 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여기에는 아예 옷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섬유는 포함되지도 않는다. 이 막대한 물량의 행방은 제각각이다. 일부는 할인 판매되거나 재활용되지만, 상당량은 매립지로 가거나 소각된다.
신발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1.4%를 차지하는데, 이는 항공 산업 배출량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출처: Unsplash, Christian Roßwag
역설적으로 쉬인 같은 브랜드가 채택한 새로운 초고속 패스트패션 모델은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고, 패션 공급망 관리와 전략을 연구했던 전직 교수 발레리 모아티(Valérie Moatti)는 말한다. 예컨대 쉬인은 각 의류를 100~200벌만 생산하고, 미판매 재고도 한 자릿수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이는 패션 분야의 ‘미세 유행’을 포착하기 위해 예측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데이터 중심 사업 모델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2023년 쉬인은 자라를 제치고 패스트패션 업계에서 가장 큰 오염원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쉬인의 전자상거래 모델은 속도는 빠르지만, 패션 브랜드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대량 해상 운송 대신 탄소 배출이 매우 많은 소형 항공 운송에 의존한다. 쉬인은 하루에 최대 1만 개의 신상품을 웹사이트에 올리며, 그 결과 하루 최대 90만 개에 달하는 소포가 미국 우편 시스템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러한 항공 운송은 쉬인 전체 배출량의 최대 38%를 차지하며, 쉬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2년에서 2023년 사이 거의 두 배로 늘어 1,600만 톤에 이르렀다. 반면 자라를 보유한 인디텍스는 주로 해상과 육상 운송을 사용하며, 같은 해 제품 운송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200만 톤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4단계: 옷장에서 매립지로
누군가의 최근 쇼핑 전리품이 옷장에 자리를 잡아도, 그곳에 오래 머무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24년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패스트패션 청바지는 고작 일곱 번만 착용된다. 그 결과 착용 한 번당 탄소 발자국은 전통적인 데님 바지보다 11배 높다. 일반적인 청바지 한 벌은 평균적으로 약 4년간 보관된 뒤 버려진다.
옷이 기부되더라도 상당수는 결국 소각되거나 매립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메탄 같은 온실가스를 뿜어낸다. 신축성 있는 ‘데님’, 시스루 메시, 운동복처럼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제품은 토양과 수로로 플라스틱 미세섬유를 배출한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이 의류와 섬유 제품에 사용되는 독성 ‘과불화화합물’ PFAS(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 분해가 거의 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이라 불림)를 금지했지만, 방수 아웃도어 의류에 수십 년간 사용된 탓에 버려진 레인 재킷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오염물질이 스며 나온다.
미국 순환 섬유 연합을 이끄는 레이철 키브(Rachel Kibbe)는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의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고, 그만큼 패션 폐기물의 최대 배출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연합이 미국에서 ‘지속 가능하고, 수익성이 있으며, 회복력 있는’ 패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시간과 노동, 에너지, 물, 화학물질을 들여 만들어 놓은 자원을 다시 회수하지 못하는 것은 놓쳐버린 기회다.”
키브의 단체는 ‘순환성’이라 불리는 새로운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는 의류를 지속적으로 재사용하는 폐쇄형 공급망을 뜻하는 개념이다. 국제 비영리단체와 대형 브랜드, 옹호자들 사이에서 이 용어는 의류 재활용을 촉진하는 사실상의 구호가 되었다. 키브에게 순환성이란, 소재의 수명을 가능한 한 길게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그의 연합은 제조업체가 자사 섬유 제품의 재활용과 재사용을 책임지도록 요구하는 캘리포니아 주 법안에 기술적 자문을 제공했다. 2024년 9월 통과된 이 법은 유럽연합에서 잇따라 도입된 패스트패션 폐기물 규제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낡은 헝겊을 새 옷으로 되돌리는 일은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롭다. 지퍼와 단추 같은 요소도 재활용을 어렵게 만들지만, 더 큰 문제는 합성섬유와 천연섬유를 복잡하게 섞은 혼방 소재에 대한 산업의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재는 다시 분리해 재사용하기가 어렵다.
섬유를 분리하는 기술 자체는 존재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대규모로 확대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2024년에는 H&M과 리바이스 같은 대형 브랜드와 협력하던 섬유 재활용 기업 리뉴셀이 파산했다.
순환성 운동은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패션 산업이 저질러온 수많은 환경적 문제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시위를 비롯해 중고 의류 시장의 성장, 유럽연합과 캘리포니아의 섬유 재활용 규제 등 산업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함께 확산됐다. 이미지에 민감한 업계 역시 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쉬인, H&M, 버버리처럼 오랫동안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돼 온 브랜드들조차 재활용 섬유 사용, 담수 사용 절감, 포장 최소화, 배출 감축 등을 포함한 자발적 지속가능성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대체로 더디고 불안정했으며, 실질적 변화라기보다는 그린워싱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설령 가장 엄격한 시도를 하더라도, 이들은 현대 패션 산업의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에 부딪힌다. 바로 속도다. 브랜드들이 지속가능성 노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생산 주기를 더욱 가속화 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옷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근본적인 모순이다. 방향을 바꾸려 애쓰면서도, 산업 전체는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의류 재활용 스타트업 트래시(Trashie)를 포함해 여러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를 설립한 크리스티 케일러(Kristy Caylo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훨씬 더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빠른 소비의 순환 속에 있다. 소비 속도가 여전히 빠르고 소재만 조금 나아졌을 뿐, 결국 다 버리고 있다면 과연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디자인과 비평 연구를 가르치는 디자이너 린다 그로스(Lynda Grose) 역시 지금은 새 옷을 너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윤리적 패션 브랜드조차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그는 “산업 전체가 패스트패션의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패스트패션만을 희생양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전체 산업이 정밀한 검증의 대상이 돼야 한다.”
중고 의류 매장의 옷걸이에 여러 벌의 헌옷이 걸려 있다. 매년 미국에서 나온 중고 의류 약 70만 톤이 가나, 케냐,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의 해외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출처: Unsplash, Bernd Dittrich
규제가 거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이 산업은 스스로를 감독하도록 믿고 맡길 수도 없다. 현대 패션의 초고속 질주를 늦추려면 개별 브랜드의 임시방편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세, 폐기물 할당제, 폐기물에 대한 세금은 모두 패션 산업의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쓰레기 문제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미 이를 시도하는 곳도 있다. 2024년 유럽연합은 대기업이 팔리지 않은 섬유 제품과 신발을 파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프랑스 역시 최근 패스트패션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광고 금지, 지속가능성 기준을 결합한 법안을 승인했다. 일부 브랜드는 반발할 수 있지만, 의류 수선과 재활용을 장려하는 등 이러한 조치 상당수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아일린 피셔 리뉴에서 오래된 아일린 피셔 의류를 회수해 재사용하는 콘텐츠·마케팅 책임자 릴라 호위츠(Lilah Horwitz)에게 지속가능성이란, 옷이 소비자의 손에 넘어간 이후까지 포함해 전 생애주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는 “상태가 어떻든 우리는 옷을 다시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인지 수년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처음부터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오래 입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옷을 만들고, 그다음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출처] What your cheap clothes cost the plane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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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그리스트>(Grist)와 <더 네이션>(The Nation)의 협업으로 쓰였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