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쇠퇴하고 있는가. 2025년은 분명 험난한 한 해였다. 유럽은 분열돼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과 무역 정책(메르코수르, 남미 공동시장을 뜻하는 지역 경제 통합체)을 둘러싸고 공동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역 정책과 에너지 문제에서 EU는 트럼프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러시아의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럽의 방위 역량이 취약하다는 점은, 유럽으로 하여금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거의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경제, 특히 인공지능을 포함한 성장 서사는 2025년을 거치며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유럽에 대한 비관적 인식, 이른바 ‘유럽 병(Euromalaise)’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경제는 다중적 침체(polygloom)에 갇혀 있고, 프랑스의 공공 재정 위기 가능성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2024년 여름 드라기 보고서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무게를 더한다. 이 보고서는 유럽의 불안을 집약하고 증폭시키며, 동시에 이를 정당화하는 계기가 됐다.

‘쇠퇴’(decline)라는 밈은 사실상 드라기 보고서가 제시한 장기적 관점에서 비롯됐다. 이 보고서는 연구개발(R&D) 투자 부족으로 인해 유럽 경제가 핵심 산업 부문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자본의 전략적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드라기는 ‘완화된 형태의 국가자본주의’에 해당하는 유럽식 모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치, 지정학, 경제를 함께 놓고 보면 깊은 침체 국면이 형성될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그 정도로 이 침체감 자체가 하나의 분석 대상이 될 만큼 강력하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가브리엘 주크만(Gabriel Zucman)으로, 그는 <르 몽드> 기고에서 “경직된 유럽이 미국의 엘도라도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은 사실에 근거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토마 피케티 역시 이에 힘을 보태며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야 한다(Il faut sortir de l’auto-dénigrement)”고 주장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유럽은 수십 년 동안 미국과 같거나 그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 왔다. 이는 교육, 보건, 인프라에 대한 투자 덕분이다. 자기비하에서 벗어나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림 23. 국가별 시간당 노동생산성(1800~2025), 해설 :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은 1960년대 이후 대체로 비슷하거나 더 높은 생산성을 보여 왔다. 이는 인적자본, 포용적 제도,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 증가를 반영한다. 1800~1900년에는 그렇지 않았으며, 당시에는 생산성 격차가 국가 간에 더 컸다. 1900~1970년에는 미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큰 교육·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앞서 나갔지만, 이후 그 격차는 축소되었다.
주크만과 피케티는 유럽의 침체감이 너무 깊어 유럽이 더 이상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실제로 미국보다 유럽이 더 높다.
이는 눈길을 끄는 주장인데, 내가 확인할 수 있는 한 어떤 자료원을 쓰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주크만의 글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그는 국제노동기구(ILO) 자료를 근거로 삼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통계에 따르면, 노동생산성의 표준 지표인 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이 81.80달러, 서유럽이 83달러, 유럽연합 전체가 71.10달러다. 그리고 유럽의 ‘경화’ 징후는 거의 없다. 지난 30년 동안 유럽의 생산성 증가는 북미와 거의 같은 속도로 진행됐다.
이 수치들은 실제로 서유럽의 가장 발전된 지역에서 시간당 산출량, 즉 노동생산성의 가장 적절한 지표가 미국보다 지속적으로 높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의 노동자 1인당 산출량과 전체 GDP가 더 높은 이유가 생산성 때문이 아니라 더 긴 노동시간과 취업 인구의 더 빠른 증가에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럽의 쇠퇴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지 노동과 삶의 균형, 노동력 운용에 관한 선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자료들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OECD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자료나 드라기와 유럽중앙은행이 사용하는 AMECO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미국과 유럽 간 생산성 격차는 대중적 서사가 말하듯 극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출처: OECD
ILO, OECD, AMECO 자료 간의 차이는 노동 투입량 산정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동 투입을 계산에 포함하면 시간당 산출량은 그만큼 더 낮게 나타난다.
논의를 위해, 유럽의 기술관료 엘리트가 자기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위기를 과장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가정해 보자. 또한 다수의 경제 연구에서 사용하는 OECD–AMECO 자료가 실제로 중요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상황은 프랑스 중앙은행이 묘사한 그림과 유사해진다. 시간당 생산성 측면에서 유럽은 미국과의 격차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더 긴 노동시간으로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서도 확인되는 이야기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노동시간당 GDP: 미국 대비 비율(미국=100)
하지만 설령 하방 분화가 존재한다고 해도, 드라기 보고서의 핵심 그래프를 설명하는 데 ‘쇠퇴’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지 묻지 않을 수 있다. 드라기 보고서로 돌아가 보면, ‘쇠퇴론’의 핵심 근거가 되는 이미지는 바로 아래에 제시된 그래프다. 이 그래프가 유럽 쇠퇴라는 관점을 떠받치는 핵심 시각 자료다.
EU 대 미국 노동생산성, 1890~2022년. 지수(미국=100)
여기서 우리가 보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쇠퇴’라는 단어가 과연 적절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쇠퇴란 지속적으로 하향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관찰하는 모습은 그런 양상이 아니다.
2000년대까지는 수렴의 시기가 있었다. 이후 미국이 다시 상당한 격차를 벌린 시기가 뒤따랐지만, 이는 쇠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짧았다. 더구나 2000년대 동안 유럽 경제는 실제로 빠르게 성장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격차가 평탄해졌고, 우리는 지난 15년 동안 큰 추가 악화 없이 이 상태를 유지해 왔다. 어쩌면 진짜 메시지는 우리가 절벽의 가장자리에 와 있으며, 이제 본격적인 쇠퇴가 시작되려 한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진단이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 외에, 또 하나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노동생산성 격차가 어느 정도까지 미국의 더 높은 투자 수준으로 설명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노동자 1인당 자본이 더 많다면 생산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는 공짜가 아니다. 투자를 늘리려면 소비재를 포기해 ‘투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 성과를 가늠하는 진정한 척도는 이른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다요소생산성)이다. 유럽이 노동도 많이 하지 않고 투자도 많이 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사회적 타협의 결과이며, 총요소생산성이 높게 유지되는 한 수용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 브래드 드롱(Brad de Long)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유토피아를 향한 느릿한 전진(slouching towards Utopia)’이라 부를 수도 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의 분해 (연평균 증가율) 출처: 안토니우 디아스 다 실바(António Dias da Silva), 파올라 디 카솔라(Paola Di Casola), 라몬 고메스 살바도르(Ramon Gomez-Salvador), 마티아스 모어(Matthias Mohr), 유럽중앙은행(ECB).
그러나 총요소생산성(TFP) 지표로 보더라도 유럽의 상황이 밝아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럽과 미국 사이에는 분명 상당한 격차가 형성돼 왔는데, 이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의 차이와 더 높은 투자 수준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다만 이 역시 최근의 급격한 변화라기보다는,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돼 온 격차다(코로나19 시기의 경험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즉, 실제로 무언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곧바로 ‘쇠퇴’라는 서사로 엮기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더 나아가 데이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국가 평균 간의 차이가 주로 ‘슈퍼스타 기업’들의 압도적인 성과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대해 폭넓은 합의가 존재한다. 특히 기술 부문에서 두드러진 이들 기업이 전체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대기업들, 무엇보다 기술 기업들은 혁신과 연구개발(R&D) 투자 측면에서 유럽 기업은 물론이고 다른 미국 기업들보다도 한참 앞서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성과가 미·유럽 간 생산성 격차의 핵심 동력이라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 선도 기업들의 생산성과 연구개발(R&D) 투자. 출처: 오윤 에르데네 아딜비시(Oyun Erdene Adilbish) 외, 국제통화기금(IMF)
유럽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미국 경제 전체가 아니라, 미국의 선도적 기술 기업들이다.
부문별 프랑스–미국 시간당 노동생산성 성장 격차의 분해, 2000~2019년 (퍼센트포인트) 출처: 프랑스 중앙은행
그러나 그 발견의 귀결은 우리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즉, 미국의 K자형 경제에서 특혜를 받는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상향 구간에 속하지 않는다면, 삶은 분명히 불편해진다. 그런 처지라면, 현재 많이 해지고 낡아버린 상태일지라도 유럽식 사회적 타협을 오히려 더 선호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최근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바로 코로나19 충격이다.
유로존과 미국의 노동생산성 (2019년 4분기 = 100)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미국과 유럽의 생산성 격차는 다시 상당히 뚜렷하게 벌어졌다. 처음에는 팬데믹 자체의 충격 속에서, 그리고 2022년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 속에서 그 격차가 확대됐다. 이는 분명 현재 유럽에 퍼져 있는 침체감, 이른바 ‘EU의 우울’에 기여했다. 최근 몇 해가 혹독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놀라운 일일까. 2020년 미국의 ‘노동시장 정책’은 실업이 급증하도록 방치한 뒤 현금 수표를 뿌리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은 급등했다. 반면 유럽은 사실상 공식적으로 저생산성을 떠받치는 셈인 단시간 뇨둉 유지 제도를 지원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이 제도를 기억하는가.

따라서 이 비교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유럽 대 미국이라는 선명한 이분법을 버리고, 한쪽에는 미국의 초대형 기술 기업들, 이를테면 ‘캘리포니아’를 놓고, 다른 한쪽에는 유럽과 미국 경제의 나머지 부분을 함께 두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큰 불편 없이 K자형으로 갈라진 OECD 경제 블록의 하강 국면에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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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