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숲의 바닷길: 이란 역사 속 호르무즈 해협

현대 세계 경제의 목줄이 되기 오래전부터, 이 해협은 페르시아 제국의 신성하고 전략적인 해상 관문이었다.

출처: Unsplash+, Getty Images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정신적 의미는 이란의 정체성 깊숙이 짜여 있다. 이 해협은 이란 역사에서 변함없이 이어져온 지리적 중심축을 상징한다. 이 좁은 수로는 수천 년 동안 페르시아의 정치·경제적 힘과 역사 의식, 문화의 핵심 동맥 역할을 해왔다.

사산 왕조 시기 조로아스터교 무역로를 보호할 때든, 사파비 왕조 시기 유럽 세력을 축출할 때든, 오늘날 에너지 수송로를 장악할 때든, 이란의 지정학적 정체성은 이 좁은 바다와 결합돼 있다. 이 해협은 주권의 물리적 구현물이며, “야자숲의 바닷길(Passage of the Palm Groves)”과 그 신성한 이름의 기원이 되는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가 세계사의 중심 가운데 하나로 남도록 만든다.

언어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호르무즈라는 이름의 어원을 중세 페르시아어 오르마즈드(Ohrmazd)”에서 찾는다. 이것은 조로아스터교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의 이름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고대 페르시아 군주들에게 이 바다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의 우주적·신성한 질서가 확장된 공간이었다.

이란 남부의 고대 방언에서 이 이름은 후르-모그(Hur-Mogh)”에서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호르모즈간(Hormozgan) 지역 언어에서 후르(Hur)는 수로를 뜻하고, 모그(Mogh)는 야자수를 뜻한다. 수천 년 동안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해협은 군사적 병목지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야자숲의 바닷길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깊은 역사적 역설을 보여준다. 이 해협의 이름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우주적 조화의 근원인 아후라 마즈다를 기린다. 그러나 오늘날 이 좁은 병목 해역은 — 그 근본 정신이 후마타, 후크타, 후바르슈타(humata, hukhta and huvarshta)”,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에 있음에도 — 심각한 국제 지정학적 충돌과 무역 불안정의 중심지가 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현대 세계 경제의 목줄이 되기 오래전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신성하고 전략적인 해상 관문이었다.

기원전 550년 키루스 대왕이 세운 아케메네스 제국은 이 해협을 반드시 장악해야 할 전략적 동맥으로 처음 인식한 제국이었다. 또한 이 해협의 이름은 사산 왕조(Sassanian Dynasty, 224~651)와 연결돼 있다. 사산 왕조는 이슬람 이전 마지막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이었으며,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확립한 국가였다.

사산 왕조 시기 조로아스터교 통치자들은 이란 고원에서 세력을 확장해 해협 북안과 남안을 모두 지배했다.

이 고대 왕들은 요새와 해안 기반 시설을 건설해 페르시아만 입구를 장악함으로써, 메소포타미아, 인도 아대륙, 그리고 더 넓은 세계를 연결하는 수익성 높은 해상 무역로를 통제했다.

페르시아만에서 외해로 나가는 유일한 해상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지배권은 오랫동안 서아시아 제국 권력의 핵심 축이었다. 이 해협의 통제권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 지배자들에서 아바스 칼리프국, 다시 강력한 호르무즈 왕국을 거쳐, 결국 팽창하는 유럽 식민 세력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파비 제국(Safavid Empire, 1501~1736)17세기 포르투갈 세력으로부터 이 지역을 탈환했을 때, 이 해협은 다시 이란의 지정학적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이 수로의 중요성이 세계적 규모로 확대됐다.

호르무즈 해협의 영향력은 단지 석유, 액화천연가스, 세계 무역의 물리적 이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 좁은 바닷길은 문명들을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교차로 역할을 했고, 페르시아·아랍·인도 문화권의 예술, 철학, 신앙 체계를 확산시키고 뒤섞었다. 또한 이 병목 해역을 통과하는 무역에 세금을 부과해 얻은 번영은 옛 호르무즈 같은 항구 도시들이 웅장한 모스크와 복합적인 건축물을 세울 수 있게 만들었다.

현대에 들어와, 특히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정치지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독특한 지형적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해협의 주요 항로는 극도로 좁기 때문에 상선과 군함들은 사실상 이란과 오만의 영해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한때 개방된 국제 항로였던 이 해협은 이제 20262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 이후 분쟁의 중심지가 됐다. 테헤란에게 이 자연적 병목 해역의 통제는 외국 군사력에 맞서는 비대칭 전략 역할을 한다. 이란은 해안 미사일, 고속 공격정, 전략 섬들을 활용하며 자국의 지리적 근접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해협 통제력을 과시해 왔다.

오늘날 전 세계 하루 에너지 물동량의 거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이란 정치지리의 궁극적 비장의 카드다. 이 해협은 이란에 부정할 수 없는 경제적·전략적 지렛대를 제공한다.

조로아스터교 고대 세계의 신성한 상징에서 현대 에너지 외교 시대에 이르기까지,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이란 정치지리의 결정적 요소로 남아 있다. 이 해협은 지금도 이란의 지정학적 야망, 경제적 생명선, 역사적 유산이 세계와 교차하는 좁은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The Passage of the Palm Groves’: The Strait of Hormuz in Iranian History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M. 레자 베남(M. Reza Behnam)은 서아시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비교정치학 전문 정치학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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