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정치인들의 제국을 건설한 UAE

리비아에서 예멘, 팔레스타인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 아랍에미리트(UAE)는 권력과 이윤을 위해 폭력을 지속시키는 민병대, 독재자, 과두재벌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2013년 2월 17일 아부다비(Abu Dhabi)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IDEX) 개막식에서 아랍에미리트(UAE) 군이 군사 시범을 펼치고 있다.

20251025, 수단 북다르푸르의 중심도시 엘파셰르(El Fasher)는 르완다 집단학살 이후 가장 끔찍한 대량 학살 사건 가운데 하나의 현장이 됐다. 집단학살을 자행한 민병대는 여러 구역을 봉쇄한 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처형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첫 3일 동안에만 최소 6천 명이 살해됐다고 기록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실종 상태이거나 집계되지 않았거나, 학살의 도시가 된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신속지원군(Rapid Support Forces, RSF)은 이미 수많은 잔혹 행위를 저질러왔다. 여기에는 2023년 엘제네이나(El Geneina)에서 1~15천 명을 학살한 사건도 포함된다. 2000년대 다르푸르를 구하자운동에 열광했던 세계는, 바로 그 학살자들이 20년 전 살아남은 공동체들을 다시 포위하는 동안 2년 넘게 사실상 방관했다.

다르푸르 집단학살의 가장 끔찍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왜 큰 항의는커녕 실질적인 행동도 거의 없이 뉴스 헤드라인을 스쳐 지나갈 수 있었을까? “다르푸르를 구하자운동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서방은 인도주의적 개입에 냉담해졌고, 유엔은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으며, 언론인들과 유명인들은 더 이상 아프리카 분쟁에 무작정 뛰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단학살 가해자들에게는 유난히 대담한 후원자가 있었다. 바로 아랍에미리트(UAE)였다.

많은 정부들이 수단의 참사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UAE는 그중에서도 한발 더 나아갔다. UAE는 비밀 공수망을 운영하며 RSF에 첨단 무기를 공급했고, 부상당한 RSF 전투원들을 UAE 병원으로 공수했으며, UAE 영토 안에서 이루어지는 RSF의 밀수 활동을 지원했다. UAE 관리들은 RSF의 잔혹 행위를 억제해달라는 공개적·비공개적 요청을 모두 외면했고, 우려를 표하는 정부들에게는 이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말했다. UAE는 다르푸르 무기 금수 조치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이었음에도, 그 금수 조치를 공공연히 위반했다.

UAE의 집단학살 지원 공수망은 복잡한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동원했고, UAE 지배 엘리트가 가진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무기처럼 활용했다. 이 과정은 UAE가 주변 국가들에 행사하는 하위 제국적 지배력을 드러냈다. 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서 UAE는 재앙적인 군사 개입, 잔혹한 전쟁 경제, 억압적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투입해왔다. UAE 통치자들은 오늘날 신제국주의적 무질서를 가장 열성적으로 관리하는 세력 가운데 하나다. UAE 지배 엘리트의 권력 장악 과정을 다룬 별도의 글과 함께, The UAE Is a Cornerstone of Coercive Capitalism 이 글은 그들이 어떻게 이 권력을 행사해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본다.

왕자들에게 권력을

20101217, 스물여섯 살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는 튀니지 관료사회의 사소한 폭정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그의 단독 행동은 후견주의 네트워크와 경찰국가라는 낡은 질서에 맞선 대중 봉기의 물결을 촉발했다. 중동의 통치자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궁전과 전용기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UAE 왕정은 민중에 맞선 싸움에 자신들이 가진 모든 무기를 쏟아부을 준비를 했다.

미국이 냉전 시기 사회주의에 맞서 벌인 방대한 십자군 원정, 그리고 이후 무한정 확대된 테러와의 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아부다비의 정치적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은 사실상 모든 대중운동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 뒤에 이어진 투쟁은 오늘날에도 세계를 황폐화하고 있는 첨단 억압 체제, 노골적인 과두정치, 신제국주의적 경쟁을 형성했다.

첫 번째 과제는 희망을 죽이는 것이었다. 바로 옆 나라의 시위대는 국내 반체제 인사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줄 수 있었고, 서로 연대할 수도 있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정권은 반동 세력이 대응할 틈도 없이 무너졌지만, 본거지와 가장 가까운 바레인의 상황은 아직 되돌릴 수 있었다. 20112월 중순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국왕의 경찰이 시위대 다섯 명을 살해하자, 사회경제적 항의는 급속히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됐다. 바레인은 같은 걸프 왕정 국가였고, 자본주의적 군사 체제의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였다. 바레인에는 미국 해군 제5함대 사령부도 주둔하고 있다. 따라서 바레인은 결코 무너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는 나라였다.

2011314, 하마드 국왕의 요청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방위군 1천 명과 UAE 군사경찰 500명이 바레인에 배치됐다. 걸프협력회의(GCC)의 공동군사조직인 반도 방패군은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바레인 사회에 대한 잔혹한 탄압에 명분을 제공했다. 시위대와 합의 직전까지 갔던 정권은 이제 야당 협상 대표들부터 부상당한 시위대를 치료한 의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하마드 국왕의 경찰국가는 고문, 법률을 이용한 탄압, 조작 재판을 통해 살아남았고, 그 대가로 미국과 영국의 무기 판매 지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에서도 시위가 벌어졌지만, 어떤 걸프 왕정 국가도 바레인이 2011년에 겪었던 수준의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실제 양보를 한 나라도 없었고, 정권 붕괴에 가까워진 나라도 없었다.

큰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

국내 전선을 안정시킨 뒤 다음 단계는 그 다음 날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연결 허브 국가UAE의 번영은 다른 나라들의 국내 정치 상황과 깊이 얽혀 있다. UAE 자본은 원자재, 투자처, 안정적인 공급망이 필요하다. 식량, , 전기, 노동력은 국내 역량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로 운영되는 UAE 경제를 떠받치는 필수 요소다. 따라서 아부다비는 민주적 감시라는 번거로운 제약을 받지 않는 독재자들과 거래하는 것을 선호한다. UAE는 이제 자국의 부와 전쟁 기계를 동원해 이러한 착취적 엘리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통치는 끝났지만, 이집트에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은 세속 독재체제에 대한 초국가적 정치·이념적 위협으로 남아 있었다. 형제단 소속 무함마드 무르시가 2012년 민주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후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옛 경찰국가를 다시 권력에 복귀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유출된 외교 전문, 음성 녹음 자료, 미국 정보기관 자료에 따르면 UAE는 무르시에 반대하는 타마로드 시위 단체에 비밀 자금을 제공했고, 동시에 외교적으로도 무르시 정부를 약화하기 위해 활동했다.

결국 201373일 압델 파타흐 엘시시 장군은 시위대의 이름을 내세워 무르시를 축출했다. 이후 그는 카이로의 라바 알아다위야 광장에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 1천 명 이상을 학살했고,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치범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는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UAE는 흔들리는 엘시시 경제의 최대 투자국이 됐다. 쿠데타 직후 30억 달러를 지원했고, 이후 수년 동안 2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했으며, 2024년에는 350억 달러 규모의 개발 사업까지 약속했다.

이집트를 발판으로 삼은 UAE는 이후 리비아에 또 다른 형태의 파괴적 개입을 가했다. 걸프 왕정 국가들은 이슬람 사회주의자무아마르 카다피에 맞선 대중 봉기를 반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원하는 강권 통치자를 세울 기회로서였다. UAE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리비아 개입에 자국 공군을 투입했다. 이는 유엔 승인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이었지만, 결국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 후 UAE, 이집트, 러시아, 프랑스는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산이었던 칼리파 하프타르를 지원했다. 하프타르는 석유가 풍부한 리비아 동부에 군사 독재 체제를 세우고, 이슬람주의 세력과 트리폴리의 국제공인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벵가지 동쪽의 알카딤 공군기지에서 UAE 군인들은 비밀리에 하프타르의 적들을 공습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민간인도 희생됐다. UAE는 또한 유엔 무기 금수 조치를 위반하며 하프타르에게 군수 물자를 공급했다. UAE는 지역 개발 사업 자금을 제공하고, UAE 기업들을 통해 대규모 부패를 조장했으며, 유엔 수석 협상가에게 에미리트 외교아카데미에서 연봉 60만 달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하프타르 체제를 공고히 했다.

2019년 하프타르가 트리폴리를 점령하려 시도하며 피비린내 나는 공세를 벌였을 때 UAE는 공습과 군수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심지어 수단과 러시아의 용병들까지 고용해 실패한 공세에 투입했다. 이처럼 비밀 개입과 막대한 투자를 결합한 정교한 방식은 리비아에서 완성됐고, 오늘날 UAE식 제국 건설의 전형이 됐다. 그 대가는 리비아의 체계적 약탈과 사실상의 분할 통치였다.

돈은 눈이 멀었다

아랍의 봄이 산산조각 난 뒤 마지막 단계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담해 보일지라도 UAE는 착취, 군사화, 정치적 종속을 보상하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또 다른 행위자일 뿐이다. UAE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벌여온 전형적인 제국주의 경쟁, 그리고 카타르, 튀르키예, 이란과의 격렬한 이념적 충돌은 중동 지역을 분열시켰다. 부상하는 각 강대국은 현지 동맹 세력을 지원하고 여러 나라를 분열시킨 뒤, 결국 불안정한 현상 유지 상태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제국적 정체성과 영향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미국, 유럽, 이스라엘, 러시아, 중국은 상황에 따라 이 과정에 동참하거나 비난하는 척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이들 과두 지배 세력은 함께 영구적인 불안정 지대를 만들어냈다. 그곳에서는 전쟁 이익을 챙기는 자들과 용병들만 번영한다.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과 마찬가지로 전략적 병목지점이다 — 을 지배하는 예멘은 걸프 왕정 국가들에게 가장 가까운 제국적 전선이다. 20153월 사우디아라비아는 걸프 국가들을 규합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주의 세력 후티를 격퇴하려는 무모한 전쟁을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의 지원 아래 이 연합군은 전면 봉쇄를 실시했고, 그 결과 예멘은 기근에 빠졌다. 수천 차례의 공습은 예멘 사회를 체계적으로 파괴했고, 거의 2만 명의 민간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이 참사의 이면에서 UAE는 주요 남부 항구와 에너지 기반 시설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017UAE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정부와의 대리전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분리주의 조직 남부과도위원회(Southern Transitional Council, STC)를 창설했다. 사우디 공군의 공습으로 STC2026년 초 사실상 붕괴됐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 UAE가 사실상 지배하던 지역은 억압적인 민병대, 전문 암살자들, UAE가 훈련시킨 용병들, 그리고 미군 심문관들까지 포함한 비밀 고문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됐다.

예멘 남부 해안에 대한 통제는 UAE의 아프리카 진출을 더욱 가속화했다. UAE는 냉전 시대의 전형적인 방식, 즉 분쟁을 부추기고 자원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아프리카에 개입해왔다. UAE는 수년에 걸쳐 예멘, 지부티, 에리트레아, 푼틀란드, 소말릴란드에 군사·물류 거점을 연결하는 사슬을 구축해 홍해의 핵심 해상 통로를 장악하려 했다. 이 시설들은 UAE 제국 전략의 기반 역할을 한다. UAE는 이를 토대로 소말리아에서 사헬 지역, 모잠비크에서 콩고에 이르기까지 분쟁에 휘말린 정부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켜왔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21년 티그라이 반군이 에티오피아 수도를 향해 진격했을 때다. UAE는 지부티를 통해 드론을 긴급 투입했고, 그 결과 정부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빚을 진 지배 엘리트들은 광범위한 군사·경제적 특혜를 제공하며, UAE가 더욱 깊숙이 개입하고 자원을 추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2023UAE와 에티오피아는 사실상 모든 UAE 국영 기업에 이익이 돌아가는 17건의 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UAE는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큰 투자 자본 공급국이며, 나이지리아, 앙골라, 남수단의 부패한 지배자들이 자금을 세탁하고 사법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가 됐다. 두바이라는 황금의 도시로 유출되는 광물 자원이나, 이 지역의 새로운 무기 중개상인 아부다비에서 구매되는 무기로부터 혜택을 보는 아프리카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약탈과 군사화라는 두 기둥은 UAE자본주의의 마지막 개척지에서 자애로운 투자자이자 안보 파트너라는 세련된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집단학살: 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

결국 제국의 꿈은 집단학살로 귀결됐다. 가자 집단학살의 궁극적 책임은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s, IDF)에 있고, 다르푸르 집단학살의 궁극적 책임은 수단의 신속지원군(RSF)에 있다. 그러나 UAE는 자본주의적 팽창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그 관리자들을 학살자 편에 서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20UAE와 바레인은 중동 정치를 뒤흔들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두 아랍 왕정 국가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언급조차 없이 이스라엘을 공식 인정하는 길을 열었다. 10년에 걸친 억압 통치는 왕정 국가들이 국내 여론의 반발을 걱정하지 않고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그들은 관계 정상화가 이스라엘의 서방 후원자들로부터 호의를 얻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시험하는 최첨단 폭력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곧이어 워싱턴은 UAEF-35A 전투기와 MQ-9B 리퍼 무인기를 판매하는 233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발표했다(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동시에 UAE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가운데 하나가 됐다. 양국은 공동 해군 훈련을 실시했고, 서로의 군수 산업에 투자했으며, 아부다비의 방공 체계와 대규모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크리스털 볼이라는 정보 공유 플랫폼도 만들었다.

이후 UAE는 가자 집단학살 기간 내내 이스라엘 편에 섰다. 2025UAE는 자국의 대표적 무기 전시회인 국제방위산업전시회에 이스라엘 기업 34개가 참가하도록 허용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엘비트 시스템즈와 정체가 공개되지 않은 최첨단 방위 체계 구매를 위한 23억 달러 규모의 비밀 계약도 체결했다. UAE는 수메드 송유관을 통해 이스라엘에 원유를 공급했고, 가자 재건 사업에서 물류 관리와 경찰 훈련을 맡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UAE는 트럼프에게 아랍연맹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가자 전후 계획을 거부하라고 압박했다. 대신 토니 블레어를 가자의 총독으로, 재러드 쿠슈너를 가자의 지주로 앉히려는 신식민주의적 평화위원회구상을 지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UAE가 반복적으로 가자에 계획 공동체를 건설하는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해 왔다는 점이다. 이 구상 아래에서 집단학살 생존자들은 생체정보 수집과 보안 심사를 받아들여야만 구호품과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개념은 — 그리고 거기서 파생될 막대한 민간 계약 사업 역시 — 조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가자 구호·재건 계획을 모두 관통하는 핵심 원리가 됐다. 이것은 국제법, 인도주의 원칙, 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다른 후원국들이 주저하는 동안에도 UAE 자금 지원 약속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기술 식민주의적 실험을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가자에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UAE가 수단에 깊이 투자해 온 결과는 다르푸르 집단학살에서 더욱 두드러진 역할로 이어졌다. 식량 자급이 취약한 걸프 국가들은 수단의 나일강 유역 곡창지대에 있는 방대한 농지를 매입해왔고, 수단의 전략적 홍해 해안선과 아라비아고무 시장 지배력, 그리고 수익성 높은 광물 밀수 경로를 통해 이익을 얻어왔다. 아랍의 봄 이후 UAE76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해 오마르 알바시르의 30년 독재 체제를 떠받쳤다. 그 대가로 알바시르는 UAE의 수단 내 이권을 보장했고, 수천 명의 용병을 리비아와 예멘 전쟁에 파견했다. 그러나 2019년 수단 시민사회가 봉기하자 UAE는 알바시르를 축출하는 쿠데타에서 악명 높은 정보기관 수장 살라 고시를 지원했다.

아부다비의 집단학살 도박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단 민주혁명에 대한 구체제의 폭력적 탄압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부분 국가들은 수단군(SAF)을 지지했지만, UAE는 신속지원군(RSF)의 지도자 모하메드 헤메드티함단 다갈로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종속 세력을 구축했다. 헤메드티는 2000년대 다르푸르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집단학살로 황폐해진 지역에서 금 채굴과 부패를 기반으로 거대한 권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234RSFSAF가 시민사회는 물론 서로를 상대로도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자, UAE는 수년 동안 공들여 구축한 제국적 네트워크를 즉각 가동했다.

3년 동안 RSFSAF는 활동가들을 추적했고 수백만 명을 굶주리게 하거나 난민으로 만들었다. 푼틀란드의 보사소 항,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공항, 차드의 암자라스 기지로 이어지는 항만과 활주로 네트워크를 통해 UAE의 무기, 자금, 인력이 학살을 뒷받침했다. 헤메드티는 구호 차량에 숨겨진 무기, 리비아에서 넘어온 콜롬비아 용병들, 에티오피아의 비밀 훈련소, UAE 전용기를 이용한 케냐·르완다·남아프리카공화국 순방, 그리고 UAE 내부에 마련된 부동산과 밀수 기반 시설의 혜택을 누렸다.

20236RSF가 자행한 제네이나 학살에서 202510월 엘파셰르 학살에 이르기까지, 아부다비는 사실상 집단학살과 약탈을 수행하는 기계에 자신의 지역 패권 전략을 의도적으로 걸어왔다. 이 왜곡된 계산은 UAE식 제국주의의 궁극적 파산을 보여준다. 막대한 자원과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음에도, 예멘의 남부과도위원회는 사실상 해체됐고, 하프타르는 트리폴리 점령에 실패했으며, RSF는 하르툼에서 축출됐다. 아부다비는 이란을 공격해 자국 경제까지 타격한 미국-이스라엘 동맹에 적극 협력했다. UAE는 단기적 약탈을 통해 장기적 동맹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 죽음의 악순환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아무런 미래도 제시하지 못한다.

[출처] How the UAE Built an Empire of Kleptocrats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스테판 바쿠멘코(Stefan Bakumenko)는 미국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독립 연구자다. 그는 이전에 난민 인터내셔널, 국제평화연구소, 민간인보호센터에서 활동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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