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

트럼프, 직접적인 방식으로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의제

트럼프, 직접적인 방식으로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의제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에서 결집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친자본주의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승리해 입법 및 행정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좌파, 사회주의, 그리고 포퓰리즘 정당들이 더 자주 승리해 집권할 수 있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우려했다.

그람시와 레닌의 ‘의회주의’ 초월과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그람시와 레닌의 ‘의회주의’ 초월과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그람시의 대의민주주의 거부는 레닌의 논거와 동일한 데 기초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a) 생산 영역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지배 조건 아래, 그리고 (그람시가 레닌에게서 빌려온 후에 상징적 용어가 된) (b) 부르주아지가 사회 조직과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헤게모니”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민주주의는, 특권층과 권력층의 경제적 지배를 정치 영역 속에 그대로 복제한다. 부자들은 이를 권위주의적 수단을 쓰지 않고도 대의민주주의, 즉 “민주주의”를 통해 달성한다.

뉴욕 식당에서 들은 미국 정치와 세계화 이야기

뉴욕 식당에서 들은 미국 정치와 세계화 이야기

오늘 밤 나는 꽤 늦은 시간(밤 9시쯤)에 뉴욕의 한 비싼 레스토랑에 갔다. 동쪽의 부자들이 모이는 초고급 레스토랑은 아니고,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곳으로, 주로 성공한 젊은 사람들(곧 드러나겠지만 꼭 젊지만은 않은 사람들도)이 모여 식사하고 대화하는 장소였다.

미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III: 자본

미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III: 자본

이번 글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 3부작의 세 번째(그리고 현재로서는 마지막)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생산자산과 금융자산의 소유에서 나오는 소득, 즉 간단히 ‘자본소득’이라 부를 소득을 다룬다. 신자본주의에서 자본소득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 가지다.

미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II: 구성적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

미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II: 구성적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사이의 모순이 부유층뿐 아니라 전체 소득 분포 전반에서 해소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이 자본과 노동에서 동일한 비율로 소득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구성적 평등이 주는 명확한 함의는, 인공지능 확산으로 자본소득 비중이 높아지더라도 전반적인 불평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소득의 중요성이 두 배로 커진다면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고, 소득 비율은 그대로 유지된다.

미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미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호모플루티아가 왜 중요한가? 겉보기에는 자본과 노동의 계급 구분을 지워주는, 환영할 만한 발전처럼 보일 수 있다. 이들은 한 개인 안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의 근원이었던 자본과 노동의 결정적 구분을 사라지게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발전을 환영하고 칭찬해야 하지 않는가?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다른 많은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호모플루티아는 노동과 자본 시장의 충격에 강하게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엘리트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대규모 자본의 수익률이 떨어지거나, 특정 고숙련 직업의 급여가 갑자기 낮아져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전쟁을 원하는 연금 수령자들

전쟁을 원하는 연금 수령자들

요즘 나는 뉴스를 읽으며 예전의 그 연금 수령자들과 닮은 작가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들은 뉴욕, 워싱턴, 보스턴 혹은 플로리다(후자는 주세를 피하기 위해서)에 살고 있으며, 심각하게 지루해하고 있다. 그들은 돈이 있고, 어디서든 오락거리로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한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란, 가자, 시리아, 대만, 어디든 상관없다. 그들은 가장 호전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아직 최소한 세 네 개 전쟁은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짜증을 낸다.

노몬한(Nomonhan), 1939년 : 들어본 적 없는 열강의 4개월 전쟁

노몬한(Nomonhan), 1939년 : 들어본 적 없는 열강의 4개월 전쟁

몇 해 전, 일본인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논리를 이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는 것이 더 쉽고, 어쩌면 더 이익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는 제임스 번햄(James Burnham)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1941년 말에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내 일본인 친구는 미국 해군 연구소에서 출판한 미국 군사사학자 스튜어트 D. 골드먼(Stuart D. Goldman)의 저서 ⟪노몬한, 1939: 제2차 세계대전을 형성한 붉은 군대의 승리⟫(Nomonhan, 1939: The Red Army Victory that Shaped World War II)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리카도를 지나치게? 아니면 충분하지 않게?

리카도를 지나치게? 아니면 충분하지 않게?

이 책은 리뷰하기 몹시 어려운 책이다. 그 이유는 주된 논지가 불분명해서도 아니고, 문장이 지나치게 복잡해서도 아니다. 내 판단으로, 이 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매우 합리적인 비판을 담고 있는 동시에 전혀 감당할 수 없거나 잘못된 주장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비판하는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농에 대한 어려움들

파농에 대한 어려움들

처음 파농을 읽으며 겪었던 어려움은 세 가지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폭력에 대한 그의 무비판적 찬양이었다. 그것은 1920년대 파시스트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났던 '정화로서의 폭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 뿌리는 전혀 다르다. 파시스트의 목적이 우월성의 강화를 통한 실체화라면, 파농은 평등의 긍정과 일상적 굴욕을 극복한 자아 실현을 지향했다. 그럼에도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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