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 312명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이에 대한 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먼저 민주당 측면에서 이번 선거를 평가한 글을 싣는다.
사진: Unsplash library of congress
“같은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오늘 아침,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또 한 번 압승을 거둔 가운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트윈 픽스에나오는 이 무서운 말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납처럼 박혀 있다. 열광적인 선거 운동의 절정이자 미국 사회의 악의적이고 부식적인 많은 것들의 승리로서 트럼프의 재선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현대사의 한 사건으로 볼 때 놀랍다 볼 수만은 없다.
첫 번째이자 가장 원론적인 이유는 인플레이션이다. 식료품점에서 프로스티드 플레이크[가장 싼 시리얼]가 7.99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에 미국이 정말 독재자를 선출했을까? 그 문장을 다시 읽어보더라도 그렇게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2024년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은 생산보다는 소비에 의해 규정되는 글로벌 사회에서 유권자들이 가격 인상을 혐오하고 이를 관장하는 통치자를 처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투표에 참여한 현대 역사상 가장 큰 선거의 해에 영국의 토리당,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남아공의 아프리카민족회의, 인도 나렌드라 모디의 BJP, 지난 가을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주의 등 좌우와 중앙을 막론하고 현직 대통령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악화된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또 다른 현직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그 상황이 배로 심각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정치의 결정적인 패턴은 계급 이동, 즉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민주당에서 대거 이탈하고 전문직 유권자들이 공화당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었다. 이것이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킨 러스트 벨트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무너진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리고 2018년, 2020년, 2022년 등 민주당이 서버브[중산층 전문직이 밀집한 대도시 교외 지역]에서 더 많이 당선되어 손실을 만회한 몇 년 동안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조용히, 그러나 더 강한 경향성을 가지고 계속되었다.
카멀라 해리스의 선거운동은 이러한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는 신중하고 나름 성공적인 선거를 치른 것처럼 보인다. 이민자 문제에선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임신중지와 관련해 트럼프를 때리고, 적어도 선거 광고에서는 ‘빵과 버터’에 초점을 맞추며 노동계급 유권자들을 구애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피적이고 전술적인 결정은 민주당 전체의 변화된 성격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해리스는 초기 2016년 힐러리의 해악스런 ‘정체성 정치’를 피해보려 노력한 면도 있지만, 실제 선거과정과 전략은 지금 민주당의 조직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NGO, 미디어 조직, 재단의 지원을 받는 활동가들로 구성된 '그림자 정당(shadow party)'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해리스를 지지하는 백인 친구들(white dudes for harris)'이나 그와 유사한 모임/이벤트, 미디어를 통한 시도들이다. 이는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과 흑인 남성들의 지지를 얻겠다며 마리화나 합법화나 암호화폐 투자 보호를 약속하는 부끄러운 시도들이었다. ‘그림자 정당’은 불과 몇 달 만에 10억 달러가 넘는 역사적인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해리스를 '민주주의', 임신중지권, 개인 정체성에만 집중하고 경제적인 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교육받은 전문직 계층의 소유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선거 운동의 마지막 몇 주, 해리스도 ‘그림자 정당’과 같은 방향으로 돌아섰다. 집회와 인터뷰에서 해리스의 초점은 트럼프 개인을 미국 기존 제도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으로 규정하고 집중 공격하는 것이었다. 해리스는 공화당 리즈 체니[이라크 전쟁의 주범이자 할리버튼이란 에너지 기업 CEO 출신 부통령 딕 체니의 딸]와 함께 경합 주를 돌며 체니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을 대통령 '실격' 사유로 규정했다. 마지막 중서부 투어에서 해리스는 자신의 연설을 잠시 멈추고 트럼프 발언 동영상을 띄우고는, 마치 트럼프가 자신의 입으로 한 말 때문에 스스로 몰락할 거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출처: picryl.com
해리스의 선거 전략은 대학 학위를 가진 유권자들에게 2020년보다 더 큰 15% 차이로 이겼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었다. 연소득이 10만 달러[약 1억 4천만원] 이상인 유권자들도 기록적인 숫자로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8년 전 민주당 상원의원 척 슈머가 시작한, 서버브의 온건 공화당원들을 민주당 쪽으로 유입하는 일도 계속되었다. 이런 전략은 중간선거에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대선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다. 텍사스에서 뉴햄프셔에 이르기까지 농촌 유권자, 저소득층 유권자, 라틴계 유권자, 흑인 남성 유권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트럼프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계급의 쏠림이 있었고, 이로 인해 올해 ‘리즈 체니 민주당’은 왜소해졌다. 진보를 자처하는 전문가들은 [임신중지와 관련된 여성권을 연방 정부가 보장하도록 하는] 대법원의 돕스 결정 이후 한 세대 동안 여성 유권자들의 공화당 지지는 없을 거라 말했지만,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은 트럼프에게 6% 포인트 차이로 표를 던졌다.
무엇보다 해리스와 민주당은 공화당원만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에 달하는,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했다. 해리스의 경제 정책은 적당한 수준의 경제 이니셔티브에 반쯤은 포퓰리즘적인 수사가 결합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문제로 좌절한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 놀라운 일이었을까? 경제를 가장 큰 이슈로 꼽은 유권자 중 거의 80%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민주당의 ‘그림자 정당’은 1년 넘게 낮은 실업률, 임금 상승, 주식 시장 호황 등 경제의 건전성을 선전해왔지만, 이런 광고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이 해리스가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경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는 처음부터 매우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었다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이미 인기가 없는 민주당 대통령은 1년 넘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정당’은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고수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및 다른 지역에 대한 그의 정치적 능력은 물론 판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자들을 몰아세웠다.
바이든이 마침내 토론에서 오작동(malfunction)을 일으킨 후에도 민주당은 그를 후보에서 제외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이 막판 노력에서 “무자비한” 역할을 한 낸시 펠로시를 칭찬하는 모든 밈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바이든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게 했던 민주당 지도부의 무모함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해리스는 이미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처진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선본을 구성하며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 초선 상원의원으로 2020년 바이든 후보 캠프에 합류했지만, 경쟁이 치열한 주 전체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이긴 경험은 없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재와 천천히 진행되는 전통적인 정당-지지층 구도의 와해, 또한 바이든의 실패로 인해 2024년 공화당의 승리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았다. 트럼프는 언론에 출연하는 전문가들보다 이를 더 잘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일론 머스크와 같이 정부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억만장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수사뿐이었던 자신의 '포퓰리즘’마저 내다버린 오만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의 오만함은 또 다른 임기로 보상받았다. 대부분의 두 번째 임기와 마찬가지로, 그의 인기 없는 정책, 쇄도하는 스캔들, 골프장에서의 많은 시간으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은 또다시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주당이 노동계급 유권자의 상당수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트럼프의 후계자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출처] It’s Happening Again
[번역] 김선철(기후정의운동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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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카프(Matt Karp)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역사학과 조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