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윤석열은 12·12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부정선거 의혹을 내란의 이유로 삼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제 국민들은 받아들여야 한다. 윤석열은 본인이 0.73%P 차로 승리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선거를 의심했다는 말도 나온다.
윤석열이 어떻게 ‘부정선거’ 의혹에 심취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힌트는 있다. 유튜브. 윤석열이 극우 유튜브 채널을 많이 시청한다는 얘기는 정부 출범 때부터 나왔다. 실제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에는 이봉규 TV를 비롯한 여러 극우 성향의 유튜브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앞 혐오 시위를 지휘하던 극우 유튜버 안정권 씨의 누나가 대통령실에 취업한 사실도 드러난 시기였다. 그 후 펼쳐진 상황은 더욱 끔찍하다. 극우 유튜버들은 대통령실로부터 받은 기념 시계와 명절 선물을 자랑하는 콘텐츠를 앞다퉈 제작했다. 윤석열 부부와 누가 더 친하고 국정 방향에 누가 더 많은 영향을 주는지 경쟁하는 유튜버들을 지켜봐야 했다.
윤석열은 극우 유튜브 헤비유저였다
윤석열과 ‘부정선거’의 연결고리는 그가 대통령 후보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 예비 대선 후보였던 황교안 전 총리는 줄곧 부정선거를 주장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TV토론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타 후보에 질문을 던졌다. 당시 대다수의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부정선거 주장에 선 긋기에 바빴다. 윤석열은 달랐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에 4·15 총선 결과를 지켜보고 종로구에서 동별로 비율이 비슷하게 나온 거나, 관외 사전 투표 비율이 일정한 것 등 통계적으로 볼 때 의문을 가졌다. (대통령이 되면) 제가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부정선거’ 망령은 이렇게 계엄이라는 폭력으로 나타났다.
윤석열은 극우 유튜브 헤비유저였다. 이봉규 TV의 진행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자다가도 내 채널 본다”고 자랑했다. 오죽하면, 김웅 전 의원(국민의힘)은 한 시사 라디오에서 출연해 윤석열에 “제발 유튜브 좀 그만 보시라.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고 호소했었다. 보수 성향 정치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증언도 유사했다.
그런 극우 유튜브의 세계에서 통용되던 게 ‘4·15 부정선거’다.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의석수가 110석 미만으로 폭삭 주저앉은 충격 때문이었을까. 그들 세계에서 부정선거 의혹은 마치 사실인 양 이야기되곤 했다. 정치인들도 편승했다. 그해 10월,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본인의 총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미 백악관 앞까지 쫓아가 1인 시위를 열어 ‘나라 망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윤석열과 계엄 동조자들이 내란의 원인으로 ‘부정선거’를 꼽고 있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용현이 지속적으로 사령관들한테 부정선거와 관련된 극우 유튜브 방송을 보냈다”고 폭로했다. 16일 KBS <뉴스9>는 여인형 방첩 사령관이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지시에 “선거 시스템이 고도화된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부정선거와 관련한 120건 넘는 관련 소송이 진행됐지만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는 근거도 함께 전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합리적인 사고가 멈춘 상황에서 계엄은 정당화됐고, 그를 위해 부정선거는 ‘사실’이어야 했다. ‘선거 관리 시스템은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 에어갭(air gap) 방식으로 운영되기에 해킹이 불가능하다’, ‘실물 투표지로 개표가 진행되기에 전산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할 수 없다’, ‘각 당과 후보 측 참관인들이 참여해 수검표가 이뤄지는 체계다’ 하다못해 ‘국정원도 해킹 등 부정선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진실은 허공에 흩어졌다.
물론, ‘부정선거’가 극우 세력에서만 제기하는 건 아니다. 앞서 김어준 씨는 다큐멘터리 <더 플랜> 제작을 통해 18대 대선 결과에 대해 부정선거를 주장했고 많은 야당 정치인이 동조했었다. 곧바로 부정선거의 근거는 반박당했지만, 그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출처: 유튜브 전광훈TV Pastor Jun TV 페이지 화면 갈무리
극우 유튜버들은 ‘부정선거’를 믿었을까
극우 유튜버들은 부정선거를 진실로 믿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돈벌이용 수단으로 악용했을 가능성이다. 구독자에게 슈퍼챗을 유도할 장치였다는 얘기다. 만일, 윤석열이 부정선거를 진실로 믿었다면 극우 유튜버의 호구를 자처한 셈이다. 여기에 내란수괴로 사형 판결받았던 전두환에 “정치를 잘했다”는 그릇된 역사의식까지 갖고 있었으니, 윤석열이라는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위험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위험해졌다. 윤석열의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주도한 세력과 범죄자 집단이 국정을 장악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간곡한 마음으로 호소드린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내란 선동이다.
윤석열의 행보에 극우 유튜버들이 반응했다. 고성국 TV 진행자는 “종북 주사파들이 윤 대통령에게 내란수괴라는 누명을 덮어씌워서 자유 우파를 완전히 괴멸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라며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설파하고 있다. 보수논객으로 통하던 전원책 변호사 또한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내란죄는 아니다”라고 동조하고 있다.
시민들의 대통령 탄핵 열망과는 다르게 ‘공론’에서조차 윤석열 지지 세력들이 결집하고 있다. 그중 국민의힘의 행보는 가장 고약하다. 윤상현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비상계엄은 고도의 정치 행위”라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윤석열 탄핵을 반대했다. 그 결과, 지난 14일(토)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204표 찬성으로 가까스로 통과됐다. ‘국민의힘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언론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당장 YTN 김백 사장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석열 내란 지지 여부를 떠나 언론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엄이라는 엄중한 사태에 대해서도 ‘언론의 중립’이라는 신화를 내세워 내란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TV 속으로 불러내는 행보가 그것이다. KBS는 지난 4일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대통령을 파면시킬 정도의 중대한 불법이냐 그렇게 보기는 또 어려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알고리즘’ ‘필터 버블’ ‘확증편향’…유튜브,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또다시 유튜브다. 플랫폼 기업의 책무가 강조되는 시대다. 2021년 미국의 상황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해 1월, 트위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realDonaldTrump)을 ‘추가적인 폭력 선동의 위험’을 이유로 영구 정지 결정을 내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이 패배한 대선에 대해 ‘부정선거’ 주장을 되풀이하며 의회에 난입한 폭도들을 격려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린 뒤 내려진 조치였다. 2024년 12월, 한국의 상황은 뭐가 다른가.
‘알고리즘 계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이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유통된다. 알고리즘에 맞춰 부정선거를 옹호하는 유사한 콘텐츠들이 자동으로 추천된다.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허구성을 다룬 콘텐츠는 내 유튜브 속에서는 사라진다. 이때 키워드는 ‘부정선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플랫폼은 이용자들 간의 ‘소통’이 아닌 ‘그들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는데 더 크게 기여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그 세력은 이제 더 이상 유튜브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때로는 폭력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계엄을 통해 확인됐다.
윤석열이 극우 유튜브 알고리즘에 갇혀 내란을 일으켰다고는 아직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확실해진 것은 하나다. 알고리즘 그리고 필터 버블, 확증편향의 문제에 빅테크 기업들이 이제는 더 이상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알고리즘’을 그대로 둘 건가. 이제 같이 답을 찾아야 한다.
- 덧붙이는 말
-
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