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 생명·안전 논의는 실종?" 참사 유가족들 '생명안전기본법' 공약 호소

"제 나이 이제 곧 팔순을 바라봅니다. 저는 자식을 찾기 위해 지난 8년간 하루하루를 견뎌왔습니다. 그런데 국회와 정부가 귀를 막고 눈을 감는 사이,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고, 또 다른 부모들이 저처럼 가슴을 치며 울게 된다면, 이게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저는 오늘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미수습자 허재용 님의 어머니인 이영문 씨의 말 

재난·산재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대선 주자들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목소리를 냈다. "누구나 안전하게 살고 일하는 세상, 이제는 말로만 아닌 실천을 할 때"라면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약속해달라 호소했다. 

유가족·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이하 생명안전 동행)은 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후보들에게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공약을 촉구했다. 생명안전 동행에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를 비롯한 10개 재난·산재피해자 주체 안전운동단체와 (사)김용균재단, 반올림, 양대노총 등 36개 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반복되는 참사,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미수습자 허재용 님의 어머니인 이영문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8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국가는 제 아들이 엄마에게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질 않았고, 정부는 그저 세월이 흘러 사람들에게 스텔라데이지호가 잊히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며 "자식을 앞세우고 남은 세월,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힘은 자식이 왜 죽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고 장례라도 치러줘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애끓는 마음을 전했다.

이영문 씨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이후에도 광주 학동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등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잃고 가슴을 쥐어뜯었는가. 그때마다 두 번 다시 이런 아픔 없게 하겠다던 약속은 그저 말로만 되풀이되고 있다"고 짚고 "참사가 일어난 뒤의 대책이 아니라, 그 참사를 막기 위한 첫걸음이자,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인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발언 중인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미수습자 허재용 님 어머니 이영문 씨. 생명안전 시민넷 제공

한국 서부발전 하청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어느 날 일하러 간 아들의 산재사망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실감했고, 당시 가장 큰 충격은 한 해에 수천 명이 제 아들처럼 일하다 죽는다는 것이었다"며 "기업들의 이윤 앞에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인 데다, 원하청으로 나눠지면서 아무도 안전 책임이 없도록 구조적 모순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김미숙 씨는 이어서 "그동안 나라 발전을 위한 노동자와 시민들의 희생을 국가나 기업이 암묵적으로 강요해 왔고, 경제발전에 가려져 해마다 수천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다치는 끔찍한 일"이 계속되어 왔다고 환기하고는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유족들이 힘 모아 특별법을 만들고 진상규명을 외치는 반복적인 모습을 보면서 생명안전기본법의 필요성은 더욱 확고해졌고, 이러한 참사는 누구한테든 일어날 수 있기에 시민의 생명안전권은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권자의 요구, "안전하게 살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주권자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국민은 안전권을 보장받는 주권자가 아니라 통치 대상, 관리 대상, 시혜 대상"이라며 "참사 원인을 밝혀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자의 인권과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우리는 길거리에서 외쳐야 했고, 단식과 삼보일배를 해야 했고, 어렵게 특별법을 만들었어도, 또 다른 국민들이 일상과 일터에서 계속해서 생명을 잃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주권자 국민으로서, 안전하게 살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요구한다"고 밝히고, 대선 후보들에게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공약으로 실천해달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달라" 강조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민사회 각계의 고민을 담아 준비한 법안으로 △안전하게 생활하고 일할 권리(안전권) 보장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 명시 △피해자의 인권과 권리 보장 △안전약자 보호 △위험에 대한 알 권리 보장 △독립적 조사 기구 설치 △안전영향평가 제도 실시 △추모와 공동체 회복, 시민 참여 등이 뼈대다. 

생명안전 동행의 공동대표인 김훈 작가는 이날 "세월호 이후에도 재난 참사와 안전사고는 계속되고, 많은 사람들이 산업과 생활의 현장에서 죽고 다치고 병들고 있다"면서 "국민의 안전권을 법률로 명시하고 이 안전권을 수호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를 명확히 하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한국 사회는 광복 후 70여 년 동안 성과, 이윤, 속도, 경쟁을 향해 치달으면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대한 역사적 과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세월호 기억식 눈물 흘린 이재명... 대선 후보들 응답할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국회 생명안전포럼 공동대표는 "국민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데, 생명과 안전에 대한 기본법이 없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제 이 말이 안 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끝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제대로 지켜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생명안전기본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어서 "이번 대선 때 모든 대선 후보들은 이 내용을 공약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다"며 "저희는 이러한 요청과 함께 국회에서 입법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지난 2020년 21대 국회에서 당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으나 , 다음해 2월 행정안전위원회 상정 후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3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기본소득당 용혜인·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을 대표로 77명의 의원들이 다시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도 추모사를 통해 "생명안전기본법이 조속하게 제정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날 기억식 현장에서 눈물을 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대선 주자들이 재난·산재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절실한 호소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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