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5월 19일 일요일이란 언론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타브리즈 시의 금요 기도 예배 인도자(Imam), 새로 임명된 동부 아제르바이잔 주지사 등이 탑승한 헬기가 추락한 사건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지방 및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이란 북서쪽 국경에서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수력 발전 댐을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이란의 북서쪽 산악 지대에서 수색 및 구조 작업이 안개 속으로 빠져들면서 월요일 새벽까지 생존자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고이란 정부는 8대 대통령이 7명의 동료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확인된 직후 모든 관심은 두 가지 이슈즉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와 고인이 된 대통령과 외무장관의 후임이 누가 될 것인지에 집중되었다.

이란 헌법 제131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유고사망사임 시 부통령이 책임을 지고 정부 수반의 역할을 수행한다이 경우 모하마드 모크베르 제1부통령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로부터 즉시 권한을 위임받았다.

같은 헌법 조항에 따르면 임시 정부 수반국회의장사법부 수반은 5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위한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같은 날새로 취임한 임시 정부는 6월 28일에 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라이시의 후임으로 출마하는 후보자는 이란 법에 따라 투표 3주 전에 공식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임시 정부 책임자 

모크베르 임시 대통령은 이미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모하마드 모크베르는 수년간 이란의 고위 엘리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로석유가 풍부한 후제스탄 지방의 성직자 집안 출신이다경제 개발과 국제 관계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받은 그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감독하는 금융 기관에 입사하면서 권력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모스타자판 재단과 그 금융 부문인 시나 은행에 합류했다. 2007하메네이는 그를 이맘 호메이니 지시(보통 "세타드"로 약칭)의 집행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세타드는 하메네이가 직접 감독하는 부유한 대기업이다세타드의 사장은 지도자와 그의 사무실에만 보고하는 직책이기 때문에 상사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또한 어떤 국가 기관도 세타드의 업무에 간섭할 수 없다따라서 세타드를 관장하는 개인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다.

모크베르는 라이시가 2021년 선거에서 승리한 후 이란의 정계 전면에 등장했다전직 대법관 출신인 라이시는 모크베르를 정부의 대표 얼굴로 선택했다. 6월 말 이란의 제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이미 8대 이란 정부의 운전대를 잡았던 라이시와 같은 길을 계속 걸을 가능성이 높다. 

아미르 압돌라히안을 대신할 사람은 누구일까?

비극적인 헬기 추락 사고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해결해야 할 두 번째 시급한 문제는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의 부재로 인해 서아시아에서의 외교적 노력이 손상되거나 차질을 빚는 것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후임자를 찾는 것이다.

10월 7일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 저항군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시작된 이후 아미르 압돌라히안은 수많은 아랍과 유럽의 수도더 나아가 유엔까지 방문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얻고 이란의 저항군 축 전략을 진전시키기 위해 바쁜 일정을 보냈다.

따라서 모크베르는 첫 업무 순서로 아미르 압둘라히안의 정무 차관이자 이란의 최고 핵 협상가인 알리 바게리 카니를 "정부 대외 관계 위원회"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모크베르와 마찬가지로 바게리 카니도 성직자 집안 출신이다그의 아버지 아야톨라 모하마드-바게르 바게리 카니는 이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 회의의 위원이었다그의 형인 메스바 울 후다 바게리 카니는 하메네이의 딸과 결혼했다.

알리의 삼촌인 아야톨라 모하마드-레자 마흐다비 카니(1931~2014)는 1981년 잠시 총리와 내무장관을 역임한 유명한 보수 정치인이다그러나 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요 성직자 단체인 전투 성직자 협회를 이끌고 30년 넘게 이맘 사데크 대학교의 학장으로 활동한 것이었다.

이맘 사데크 대학교는 이슬람 공화국과 그 지도자대의정책에 충실한 간부들을 최소 2세대에 걸쳐 배출한 '공장'으로 묘사되곤 한다이 대학은 바게리 카니가 나중에 경제학을 가르친 모교이기도 하다.

바게리 카니는 20대 후반에 외무부에 입사해 이란 외무부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및 중부 유럽 부서를 이끌었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 사이드 잘릴리(또 다른 이맘 사데크 동문)와의 친분으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당시 최고 국가안보회의 비서실 차장이자 최고 핵 협상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아미르 압돌라히안이 그를 외무부로 복귀시켜 이란과 중국프랑스러시아영국미국독일 등 P5+1 국가 간의 핵 협상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면서 바게리 카니라는 스타는 다시금 부상했다그렇게 바게리 카니는 이슬람 공화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협상을 이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은 2018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후 무산된 핵 합의인 2015년 공동 포괄적 행동 계획(JCPOA)을 되살리는 데 실패했다.

바게리 카니는 진지하고 부드러운 말투의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3년 동안 서방 및 지역 외교관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그를 알릴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아랍 국가들과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고 아미르 압돌라히안 전 외무장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바게리 카니가 전 세계특히 서아시아에서 이란의 전략을 발전시켜야 할 때다.

이란의 미래 외교 정책연속성의 길 

이란의 향후 외교 정책 방향은 6월 선거에서 모하마드 모크베르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연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그 효과가 입증된 만큼이란 국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라이시의 유산과 외교 정책에 대한 그의 '동방 지향접근법은 후임자 아래에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전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열망했던 것과 달리 라이시 대통령은 러시아중국기타 글로벌 남방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강조했다그의 노력으로 테헤란의 지정학적 위상은 베이징모스크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올라섰다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방문을 포함한 라이시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는 이란의 글로벌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라이시의 후계자는 아마도 그의 정치적 성공 경로를 따라 국내외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할 것이다따라서 이란의 동방에 대한 전략적 지향과 글로벌 남반구에서의 입지 강화는 향후 몇 년 동안 이란 외교 정책의 핵심 기둥으로 유지될 것이다.

[원문] https://thecradle.co/articles/for-iran-what-comes-next

[번역] 신현원

덧붙이는 말

페레슈테 사데기(Fereshteh Sadeghi)는 테헤란에 거주하며 이란 국내 정치에 중점을 둔 저널리스트다. 이란의 Press TV와 카타르의 알 자지라 잉글리시에서 근무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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