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민영화의 또 다른 시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

작년 2023년 6월에 제정·공포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올해 6월부터 시행되었다. ‘분산에너지라는 용어에서 나타나듯이이 법은 기존의 중앙집중형 전력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고전력 수요지에서 전력을 직접 생산하고 소비하는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이 법의 근거인 기존의 중앙집중력 전력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인가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듯이현재의 전력시스템은 한편으로는 불균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의하다는 것이다전력자급률 차이에서 나타나듯이 전력생산지역과 전력소비지역(특히 수도권)의 분리가 심각하고수도권 등 전력 소비지의 확대에 따라 전력망의 보강이 필요하지만전력망 건설은 많은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더구나 재생에너지가 무분별하게 확대되면서송배전망의 확충은 그 시급성에도 많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중앙집중적 전력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산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물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의 모습즉 분산의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다가령 수도권 중심적 사회경제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서 지방 분권 등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거나, ‘에너지 프로슈머를 강조하면서한전의 독점적 구조를 깨고 민영화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이러한 분산화에 대한 지속적인 요청을 특별법은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이번 특별법은 분산화=시장화 또는 민영화라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한전 독점을 비판하고비효율적인 국가개입을 비판하면서분산화를 앞세우고 있지만신사업과 지역개발이라는 명목으로대기업을 비롯한 에너지 사업자들의 새로운 먹거리와 이를 통한 지역간의 또 다른 개발 경쟁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더 나아가 시장화즉 에너지의 상품화를 촉진시킴으로써현재 중단된 상태인 에너지 시스템의 민영화를 완성시켜공공적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무엇이 문제인가?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아래 표와 같이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첫째분산에너지와 그것과 관련된 사업 및 사업자를 정의한다둘째일정규모 이상의 전기 사용자에게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를 규정한다셋째일정 규모 이상의 전력 사용자에게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시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넷째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규정하여발전과 판매 겸업을 허용한다다섯째송배전비용 등을 고려하여 지역별로 요금을 차별화시켜전력시장에서 가격 기능을 활성화한다.

이 중에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역별 전기요금 및 분산에너지 통합발전소 사업의 경우 특별법의 시장화(민영화)’ 기조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된다이 조항들은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주요한 유인책이자에너지 민영화의 촉진 수단으로서다음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주요 내용>

판매시장 개방과 지역 에너지 계획의 민영화

특별법의 내용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이라는 조항이다이에 따르면 특화지역 안에서는 분산에너지 사업자(발전사업자)는 전기사용자에게 직접 전기사용자에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또한 전기사용자의 공급자선택권도 규정하고 있는데구역전기사업자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 전기사용제를 제외한 전기사용자는 분산에너지사업자와 전기판매사업자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즉 이 조항에 따라 특별지구 선정 지역에서는 유럽미국일본 등과 같은 민영화된 전력시장이 형성되게 된다즉 국내의 경우에는 전력 도매부문만 부분적으로 민영화되어 있는데소매부문까지 확대되어 민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출처 : 자유기업원 “22대 국회, 22대 자유입법과제 민간전력시장 활성화법”(2024.1.18)

물론 이러한 민영화 확대 기조는 이번 특별법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위의 표에서처럼 판매시장의 개방 시도는 전기사업법의 부분적 개혁을 통해 꾸준하게 추진되어 왔다판매시장 개방의 목적은 신산업경쟁력 있는 사업자의 참여 확대일 뿐이다이에 자유기업원에서는 이번 특별법에 대해 직접 거래·가격 차별화 허용으로 전력시장 경쟁 촉진을 기대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민영화의 경험을 살펴보면경쟁적 시장은 가격을 인상시켰고소비자의 선택권은 편익 증대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지난 에너지 위기 시기에 폭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는 민영화된 전력시장의 실패를 반증하는 사례였다이런 사례를 보고도보다 공공적인 시스템으로 개혁하려는 노력보다, (한전)독점 아니면 시장 또는 (한전)독점의 유일한 해결책이 시장뿐이라는 주장만 넘쳐날 뿐이다게다가 이번 특별법은 분산이라는 용어만 있을 뿐, ‘분산화=시장화이므로중앙집중을 넘어선 분산을 통한 거버넌스 개혁 등 지역 민주주의의 강화라는 의미도 무색해졌다여러 언론 보도에서 나타나듯이지자체의 관심은 이를 계기로 신사업 유치 등을 통해 또 다른 개발 실적을 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SMR만 문제인가

분산에너지 정의 조항에서 SMR(Small Modular Reactor, 소형 모듈형 원자료)은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실현 가능성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진 위험성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하지만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분산에너지 통합발전소다르게는 가상발전소라고 불리는 VPP(Virtual Power Plant)이는 실제로 전력을 생산하지 않지만소규모 태양광을 비롯해 개별 발전사업자의 전력거래 대행을 통해하나의 발전소처럼 기능할 수 있으며다수의 분산 발전사업자의 전력 공급으로 인한 전력계통 불안정성의 문제를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통합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에 VPP는 현재의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 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VPP 역시 도매시장의 경쟁 증대와 소매 판매 시장의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발전소를 운영하지 않아도일종의 중개 플랫폼을 통해 전력거래소에 입찰이 가능하며특별법의 정의에 따라 분산에너지 사업자이므로특화 지역에서는 소매 전기사용자와의 직접 거래도 가능하다자본력과 사업 경험이 있는 SK 등 에너지 자본들이 일찍이 화석연료 중심의 민자 발전사업에 진출해서 막대한 이윤을 획득했던 것처럼소매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VPP를 그냥 지나칠 일은 없을 것이다즉 특별법은 신사업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전력 민영화를 더욱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이미 SK에코플랜트는 더욱 민영화된 전력시장을 테스트 중인 제주도에서 전력중개사업을 운영 중에 있다.

시장 가격 신호를 강화시키자?

이번 특별법의 취지 중 하나는 전력자급률의 지역별 불균등 문제와 그에 따른 송배전망 투자 부담의 문제를 가격 신호의 강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송배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지역(비수도권 등)에는 가격을 싸게반대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지역(수도권 포한 대도시)에는 가격 비싸게 매겨서전자의 경우에는 신규 전력 수요를 유치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고후자의 경우에는 전력 다소비처의 이전 및 신규 분산전원의 유치(공급 증대)를 유도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가격 신호를 통해 신규 전력 수요나 공급원을 유치할 유치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사업체들의 입지와 관련해서 전력 요금은 여러 고려 요인 중 단지 하나의 고려사항일 뿐이다또한 신규 분산전원 사업자의 유치와 관련해서도 가격 신호만이 아니라 계통 연결 문제재생에너지 자원의 잠재성 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또한 가격신호가 작동하여 전력 수요 및 공급 증대를 위한 무절제한 개발이 일어난다면그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그리고 지역별 요금제는 매우 불평등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발전소도 없지만 송배전망도 부족한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지역별 요금제를 위해 도매시장 개혁을 위해 지역별 차등 도매전력요금제(LMP)’의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LMP는 연료비 차이만이 아니라위치에 따른 송전제약이나 송전혼잡을 고려한다는 개념으로서미국과 호주, EU 등 우리보다 앞서 전력 민영화가 이루어진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그러나 해외에서도 LMP의 효과성즉 가격신호의 효과성에 대해 논란이 많다심지어미국의 텍사스 주처럼 전력 민영화가 고도로 진전된 곳에서도 도입 결정 후 시행에 이르기까지 7년이 넘게 걸렸다게다가 호주에서는 7년 동안 준비했지만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도입을 철회하기도 했다이 긴 시간을 시장에 맡겨서 허비하느니보다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을 모색해보는 것이 어떨까?

결국 노동자, 서민의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특별법의 몇몇 조항은 완전경쟁 시장이 구현되는 에너지 시스템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이 체제 아래에서는 VPP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사업자의 진입이 허용되고지역별 가격제와 같이 다양한 가격 체계를 통해 사업자 간 경쟁이 활성화되어이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어 편익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그림에서 핵심은 사업자의 수익성 문제일 것이다특별법이 그리는 것처럼 가격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사업자에게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우리가 근래 겪은 에너지 위기가 보여주듯이 사업자의 수익성 보장은노동자·서민들의 요금으로 결국에는 전가될 수밖에 없다또한 수익성 위기로 사업자들이 파산하는 경우그 사업자와 계약한 노동자 서민들은 정전 혹은 단전 등으로 인한 엄청난 손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수익성 보장이 안된다면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다이번 특별법의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지겠지만점점 심각해지고 어려워져만 가는 기후위기와 노동자·서민들의 생활에는 또 하나의 어려움을 더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뿐이다.

덧붙이는 말

류승민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위원으로 활동한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