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파괴되지 않았다>(2024) 한내 기획·펴냄, 이황미 지음, 364쪽, 3만원.
발레오전장·보쉬전장·콘티넨탈 노조파괴 사례담아
노동자역사 한내가 복수노조 노조파괴 공작에 맞선 투쟁을 책으로 펴냈다. 책에서는 복수노조 피해사업장 가운데 옛 만도기계노동조합 소속이었던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대전충북지부 보쉬전장지회와 콘티넨탈지회의 사례를 다뤘다.
파괴 공작의 칼날이 가장 먼저 가닿은 곳은 대체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지역과 산업에서 주축이 되는 노조들이다. 이들 세 사업장 역시 투쟁과 산별노조 활동에서 모범을 보여왔다. 특히 만도기계는 정리해고 법제화 이후 1998년 정리해고 직격탄을 맞아 처절한 투쟁을 전개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이후 각기 다른 외국 자본으로 매각돼 노조 이름이 달라졌어도 이들은 만도기계 시절 민주노조의 전통을 이어가며 지역에서 핵심 사업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1년 복수노조 허용을 전후로 한 노조파괴 공작에서 다시 직격탄을 맞았지만 10년이 훌쩍 넘은 기나긴 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 투쟁하며 여기까지 온 사업장들이다. 이들의 10여 년 투쟁을 톺아보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양산한 문제들을 다시 확인하고자 했다.
노동3권 무력화시킨 복수노조 금지조항
대한민국 헌법 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70년 동안 역대 정권은 노동법을 개악해 노동3권 보장이라는 헌법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노동법 개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복수노조 금지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3년, 군사정권은 노동조합법 제3조에 단서조항(5호)을 달아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동조합의 결격사유로 추가했다.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3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만든 것이다. 자신의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는 한국노총과 그 가맹노조의 독점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는 굴종하지 않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7년 11월 노동법이 개정되며,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 대상을 같이 하는 경우’도 노조 설립을 금지하도록 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국에서 노조 민주화 투쟁이 전개됐으나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여전히 민주노조 진영의 노조 설립을 방해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노조 설립보다 더 힘겨운 ‘노조 민주화 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폭력과 구속·수배에 시달렸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마침내 탄압을 뚫고 어용노조 체제에 맞서는 민주노조 체제를 세우고야 말았다. 자본과 정권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된 민주노조 체제가 이제 역으로 복수노조 금지조항의 존립 근거를 위협했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국제적으로도 규탄의 대상이 됐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기나긴 공방
민주노조 진영이 노동법 개정 투쟁을 이어가던 1996년, 김영삼 정권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구성과 논의를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노개위 참가를 통해 복수노조 금지조항 철폐를 꾀했다. 그러나 노개위는 바로 자본의 돌파구였다. 그들은 존립 자체가 위기에 빠진 복수노조 금지조항 폐지를 전제로 이미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정권과 자본은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조건부로 폐지하는 대신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 파견근로제를 법제화해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관철할 계획이었다.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로 노개위 합의가 무산되자 김영삼 정권은 그해 12월 26일 새벽에 개악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민주노총이 ‘세상을 뒤흔든 총파업’ 투쟁으로 맞서 날치기 노동법은 폐지됐지만, 1997년 3월에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 제정됐다. 정권과 자본은 기어이 정리해고제를 제도화했다. 그 반대급부로 복수노조 금지조항 폐지를 내주었다고 하나,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유예했다.
조만간 복수노조 시대 도래를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한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바로 복수노조 교섭창구 강제적 단일화다. 법을 개정하고 시행을 유보한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는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장기간 갈등을 빚었다. 비극의 씨앗을 품은 노조법 개정안이 2009년 12월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2010년 1월 1일 새벽, 여야 간 극한 대치 속에 끝내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노총은 ‘노사관계를 역행하는 날치기법’이라고 반발했다. 개정 노조법(이른바 ‘추미애법’)은 복수노조 설립 허용과 함께 과반수 노조에 의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도입했다. 그리고 당초 유예기간보다 1년 앞당겨 2011년 7월부터 시행하게 됐다.
제도 악용한 노조파괴 공작
복수노조 허용은 2011년 7월부터 시행됐지만, 제도 도입 과정에서 논의가 어긋났다. 마지못해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받아들인 자본의 요구를 반영, 사용자의 교섭비용만을 고려하면서 승자독식 방식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법 개정 당시 노동계는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의무화되면 조합원 수가 많은 노조에서 교섭권을 독점할 우려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노동권의 핵심인 교섭권이 회사에 유리하게 재편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우려는 순식간에 현실로 닥쳤다. 복수노조가 시행되자마자 골머리를 앓는 민주노조들이 늘어났다. 복수노조 제도가 도리어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이 제도는 우려했던 대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할 권리를 박탈하고 배제하는 수단이 됐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노조파괴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전문적으로 기업들에 ‘노조 깨는 방법’을 자문해 주는 노무법인이 생겨났다. 직업윤리는 팽개친 채 노조파괴 컨설팅을 일삼는 노무법인이 득세했다. 개중 가장 대표적인 게 창조컨설팅이다. 자본과 정권은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제도 악용을 넘어 한껏 활용하며 무수한 민주노조 파괴를 시도했다. 실제 많은 노조가 파괴돼 갔다.
민주노총 등 민주노조 진영은 현행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위헌성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민주노총은 사업장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와 산별교섭 의무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복수노조를 설립해 노조파괴를 도모하는 사업장들 노동자들은 끈질기고 처절한 현장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있다.
여전히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 이야기
책에서 다룬 발레오지회는 복수노조 13년 만인 2023년에 하나의 노조로 통합을 이뤄냈다. 그러나 노조파괴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사측은 고용 인원과 생산 물량을 지속해서 줄이며 이윤을 해외로 유출하고 현지 재투자는 하지 않는 이른바 ‘먹튀’ 행태를 재현하고 있어 노동조합과 지역사회가 다시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투쟁에 나섰다. 보쉬전장지회와 콘티넨탈지회는 여전히 소수노조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비슷한 어려움에 부닥친 충북지역의 다른 복수노조 사업장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조직적 전망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이 꺾이지 않고 전진하며, 마침내 민주노조를 온전하게 사수·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전체 노동운동 진영이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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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미는 오랜 노동운동의 길 위에 있는 활동가로서 현재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