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체제의 문제다!

지난 6월 전주 제지공장에서 19살의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설비실에서 홀로 기계 정비 중이었고,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긴 수첩의 메모가 화제가 되어 당분간 인터넷에 떠돌았다. “다른 언어 공부하기, 살빼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편집 기술 배우기, 카메라 찍는 구도 배우기, 악기 공부하기, 경제에 대한 공부하기.”

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출처: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그의 글씨를 많은 신문기사들이 손쉽게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회수했지만, 이 노트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진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체제가 부추기는 자기계발과 전혀 다른 것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의 삶, 능력주의, 소외된 노동, 가난의 혐오, 경쟁과 약육강식과 같은, 이 세계를 채우고 있는 강마른 논리가 결코 훼손할 수 없었던 소박하고 건강한 삶의 의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하는 존엄한 마음 말이다. 그것을 2인 1조 작업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무시하는 세계, 더 많은 이익을 만드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하는 이 체제가 죽였다. 

더 큰 문제는 돈을 버는 것, 이윤을 남기는 것이 어느새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기서 돈은 더 이상 성실히 일해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 그 자체이므로 재테크가 삶의 필수적 기술이다. 모두가 통장을 몇 개씩 나누어 관리하며 주식을, 코인을,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밑천, 즉 자본을 모아서 돈을 굴려야한다고 말한다. 서점마다 재테크 교과서가 쏟아져 나온다. 빚을 내는 것도 능력이니,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밑천을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다들 하고 있는데 나만 안하면 점점 더 가난해지고 뒤쳐질 것 같다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우리 모두는 어느새, 좋은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죽이는 체제와 같은 것을 욕망하고, 그렇게 체제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이윤추구를 욕망하게 하는 체제 속에 있다면 이는 어떻게 전환 가능한가? 우리는 어떻게 이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멈추고, 우리와 세계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미 오래되었다. IMF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자본의 위기는 곧 금융 위기였으며, 이것이 곧장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뒤흔든다는 것도 모두 잘 알고 있다. 부자부터 가난뱅이까지 빚은 도처에 퍼져있고, 빈부격차는 점점 커진다. 그러나 금융의 위기를 혁명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만은 안전한 채로)금융위기가 지나가고 체제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 결국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금융은 너무 거대한 문제, 우리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매일 금융실천을 하고, 그것은 우리의 매일과 관계를 구성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모으고 투자하거나,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 차 한 잔 마시고 영화 한 편 볼 때조차 포인트 카드의 점수를 모으고 약간의 할인을 받으며 안심한다. 친구 간에도 연인 간에도 계산은 정확히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다.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이익을 계산하며 우리는 금융자본주의의 일부가 되어 그러한 세계를 재생산한다. 무수한 가짜 욕망을 만들어내는 세계에 휩쓸리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놓지 않았던 젊은 노동자조차 이 거대한 압박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경제에 대한 공부하기"는 그의 인생 계획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는 그의 노트의 다른 계획들이 구체적인 세부항목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 경제공부의 항목엔 물음표가 가득했다는 점이다. “주식? 투자? 부동산? 돈을 굴리는 법?” 이 물음표들은 그가 금융자본주의의 만트라를 받아 적으면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위화감을 표시한다.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이미 너무 익숙한 이 단어들을 낯설게 볼 것을 요구한다. “친구에게 돈 아끼지 말기"라는 문장의 소박한 명료함과 또렷한 대비를 이루면서 말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물음표들이야말로 이윤을 추구하는 체제, 금융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유언이며 화두가 아닐까. 

금융자본주의는 경제교육과 금융의 언어, 재테크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불안을 생산함으로써 무수한 부채인간을 만들었다. 부채인간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밑천을 만들고 부채를 동원해서 돈을 굴려야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가며 이윤추구의 세계를 재생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에 대한 문제제기, 혹은 운동은 여전히 드물다. 자본주의적 금융과 다른 금융의 가능성이 다양하게 제안되어 왔지만 대부분 현실성 없는 것으로 기각되기 일쑤다.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적극적으로 재테크를 하지 않는 정도를 최선으로 여길 뿐이다. 

기후정의행진 강남역(2024.9.7.) 출처: 빈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재테크를 거부할 때조차도, 거대금융기관의 계좌를 흘러 다니는 우리의 돈은 전쟁과 환경파괴에 사용되고 자본을 위한 이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는 진실로 중요한 문제이다. 금융은 체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의 관계와 삶, 욕망을 빚어내며 체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나날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윤추구가 아닌 다른 목적, 그러니까 다양한 관계와 즐거움, 공동체, 혹은 사회운동의 확장을 위해 우리의 돈과 자원을 투자할 수는 없을까?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어느 정도는 늘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그러한 실천들이 보다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금융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모두가 자본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금융체제와는 반대로 모두가 자본을 공유하고 자본수익을 사양하는 공유지/커먼즈의 금융체제를 말이다. 공동체은행 빈고는 조합원 500여명, 자산 약 6억원정도의 작은 금융조합이지만 탈자본의 원칙에 따라 운영한다. 15년간 60여개의 공유지(공동체 공간)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 왔고,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재정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안정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자본주의적 금융에 반대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넓게 탈 자본 금융에 참여하고 함께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간다면 어떨까? 이는 우리가 가진 자원을 자본의 체제에서 커먼즈의 체제로 옮겨오는 실천을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금융은 지금 여기서 각자가 전환을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이며, 다양한 전환의 실험과 운동을 연결하는 구체적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체제전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지금 여기서, 다른 욕망과 다른 관계, 다른 우리를 만드는 구체적인 대안 금융의 실천과 동시에 진행되어야만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심장이며 이윤추구의 논리를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퍼뜨리는 혈관인 금융을 바꾸자. 자본에서 공유지로. 

덧붙이는 말

디디와 지음은 공동체은행 빈고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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