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장문의 글 ‘트럼프와 미국 소프트 파워의 종말’은 미국 외교 정책 사상의 거장 중 한 명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썼다. 나이는 1990년에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대중화하며, 국가들이 ‘하드 파워’ 이외의 수단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설명했다. 예상대로, 그는 트럼프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실패한 전략으로 본다. 나이는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이라고 결론짓지만, 그 이상의 진단은 내리지 않는다.
나이의 글을 금요일에 실린 내 칼럼과 비교해 보니, 우리가 많은 점에서 동의하면서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이가 덜 비관적이며 트럼프 대통령직의 특정한 역학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여기에는 두 가지 상당히 다른 역사관이 걸려 있다. 이는 단순히 역사 서술의 분위기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내 시각이 분명 더 어두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이는 보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도 존재한다.
내가 보는 미국 역사는 단순히 두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발전적이다. 트럼프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지점까지 왔는지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며, 이는 경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더 깊고 장기적인 흐름을 드러내는 현상임을 의미한다. 이야기의 시작을 항상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에서 ‘중간부터’ 사고하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 자유주의적 글로벌리즘을 지탱하던 연합이 붕괴했으며, 그 과정이 2024년이나 2016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면,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물론 나이의 주장도 역사적이다. 사실, 그는 정책 지식인으로서 ‘미국의 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역사 서술 방식과 트럼프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그것은 일련의 에피소드적이거나 계절적인 관점으로 묘사될 수 있다. 좀 더 강한 표현을 쓰자면, 그것은 발전적이라기보다 순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의 글에서 역사에 대한 이런 에피소드적, 계절적 관점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는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가 존재한다. 이는 상호 연결된 연속적 단계들을 거쳐 정당성을 상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로 의존적 발전과는 대비된다.
* 트럼프 1.0 이후 바이든이 등장하며 글로벌 신뢰가 회복되었다. 즉, 트럼프는 예외적인 존재이며, 바이든식 글로벌리즘이 정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 백악관이 어떤 행동을 하든 견제와 균형이 작동한다는 주장—이는 단순히 MAGA만이 아니라 미국 정치 전반, 심지어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진행 중인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전복 가능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나이는 미국 민주주의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즉시 ‘해결책’의 문제로 논의를 옮긴다.
* 미국 시민사회는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힘이며, 그것은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존재로 그려진다—그러나 실상은 깊은 긴장과 모순에 의해 분열되어 있으며, 미국 민주주의의 추악한 현실이 이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 머스크는 단순히 ‘억만장자’일 뿐이다—그러나 그는 단순한 부유층 로비나 기존의 정치경제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형의 과두제(oligarchy)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이런 식의 에피소드적 역사관은 그 지지자들이 현재의 역사적 흐름과 그 의미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 없이 넘어가게 해준다.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며, 지금은 단순히 암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적 역사관의 계절적 변형에서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식의 낙관이 자리 잡는다. 예컨대, 2024년 공화당의 승리는 202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귀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식이다.
나이의 글을 읽으며, 올해 초부터 민주당 엘리트들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같은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고방식을 두 차례나 ‘직접’ 접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순응적 논리의 경량 버전은 ‘미국학술원’(American Academy) 회의에서도 나타났다. 이 자리에는 콰메 앤서니 아피아(Kwame Anthony Appiah), 마이클 프로먼(Michael Froman), 앤마리 슬로터(Anne-Marie Slaughter)가 참석했다.
두 번째 트럼프 대통령직이 초래할 극적이고, 되돌릴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직시하는 대신, 공동 패널들은 편안하게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오바마 행정부에서 얻은 교훈을 주고받았다. 대체로 워싱턴에서의 "차례대로 권력을 나누는" 현실에 순응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도는 것"이라는 식이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다소 놀랐다. 그것은 단순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차 없는 공세 때문만이 아니라, 2016년 패배 이후 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든-해리스가 패배하고, 트럼프 2.0이 대기 중이던 시점에서, 나는 바이드노믹스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MAGA"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는 제이크 설리번의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의 무역 정책 사이의 연속성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민주당 진영은 2016년 패배 이후 단순한 복기를 넘어 새로운 대본과 새로운 현실을 만들고자 했다.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 정책"이라는 기치 아래, 민주당 엘리트들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전면적으로 재확립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려 했다. 의회의 제약 속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바이든과 설리번이 갈망하던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2024년 11월까지 그 결과는 세 갈래로 나타났다. 즉, 우크라이나 개입, 중동에서의 이스라엘 침략 지원, 동아시아에서의 대중국 봉쇄였다.
그런데 <파이낸셜 타임즈>의 퇴임 인터뷰에서, 전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은 이러한 연속성에 대한 의문을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조했다.
와인이 도착하자, 나는 민주당이 왜 백악관을 잃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2016년만큼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어. 2016년 11월 9일, 나는 실업자로서 소파에 앉아 끝없이 고민할 수 있었지." 그는 2016년 대선 결과를 "심층적인 구조적 문제",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지연된 결산", 그리고 "시스템이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느낀 미국 대중의 깊은 분노"의 결과로 보았다. "2024년은 그런 선거 중 하나일지도 몰라. 높은 물가와 반(反)현직 정서가 만연한 시기에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후보와 맞붙었고, 공화당이 근소한 차이로 이겼을 뿐, 실존적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지." 그는 잠시 멈춘 후 덧붙였다. "아니면, 정말로 실존적 의미를 가진 선거였다고 나중에 판명될 수도 있고."
그 역사적 순간, 즉 미국과 세계사의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보이는 선거 당일 밤에 대해서, 설리번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집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나는 11월 5일, 카멀라 해리스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한 바로 그날, 그에게 아내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것에 대해 물었다. 백악관을 잃은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날 밤에는 완전히 실감하지 못했어. 매기가 당선된 게 너무 기뻤거든. 멋진 밤이었고, 그리고 힘든 아침이었지."
역사적 패배 속에서도 개인적 성취를 기념하는 이러한 태도는 2025년 1월 30일 브뤼셀 컨퍼런스 2025(BruxConf2025)에서 ‘완벽한 폭풍’이라는 세션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이 자리에서 USTR(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캐서린 타이(Katherine Tai) 등 바이드노믹스의 핵심 인사들이 참석한 패널에 대해 논평할 기회가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베테랑들에게서 지배적인 분위기는 바로 후회와 자기 축하가 뒤섞인 태도였다. 이 두 감정은 "유산", "교훈 학습", 그리고 내부적 자축 분위기 속에서 해소되었다. 2024년 역사적 패배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의 미국인 공동 패널들은 마치 2024년 11월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럽 청중들에게 교훈을 설파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패배한 후 레임덕 기간 동안 발표한 문서들에 대해 특히 자부심을 표명하기까지 했다. 설리번과 마찬가지로,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자신들의 실패가 갖는 의미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전 USTR 대표인 캐서린 타이는 세션 말미의 답변에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진보적 자격을 더욱 빛나게 만든 것—즉, 마지막으로 성 베드로를 만나게 될 날을 대비해 남긴 ‘흉터’였다. 그리고 그가 상상하는 성 베드로는 거친 목소리의 마틴 쉰(Martin Sheen)으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태도는 에런 소킨(Aaron Sorkin)의 웨스트 윙(West Wing)—부시 시대 자유주의자들에게 위안을 주던 따뜻한 담요 같은 드라마—을 통해, 실제 정치와 역사가 감미로운 신정론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여기에 아일랜드식 과장 섞인 미사여구까지 더해지면서 현실은 더욱 희화화된다.
그 사이, MAGA 2.0은 이전보다 한층 더 광적인 형태로 등장했다. 이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책 변화를 중심으로 한 미국 외교 정책의 급격한 조정과 동시에, 미국 내 기관들, 공무원 조직, 그리고 대학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결합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특히 무역 정책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는 실제 효과를 내기보다는 뉴스 사이클을 장악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듯하다.
또한 MAGA 2.0은 바이든 행정부가 "끔찍한 경제 상황"을 물려줬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빅 라이(big lie)’ 방식의 탈진실 정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추종자들을 위해 완전히 대체 현실을 만들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급진화된 MAGA 2.0의 등장은, 내가 주장했던 “바이드노믹스는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MAGA”라는 연속성 논제(continuity thesis)를 위협하는가? 어느 정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문득 캐서린 타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그가 마틴 쉰/성 베드로를 감격스럽게 언급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나는 다시금 2024년 9월의 열광적인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는 한창 대선 국면이었다. 그런데 당시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던 행정부가 TV 드라마 웨스트 윙의 출연진을 실제 ‘웨스트 윙’에 초대했다. 그리고 마틴 쉰이 극 중 캐릭터 그대로 나타나, 경건한 목소리로 이렇게 읊조렸다. “Dear Father, let our country awake” ("거룩한 아버지여, 우리나라를 깨우소서") 그 순간을 회상하며, 나는 다시금 의문을 품게 된다.
트럼프 2.0이 상상의 정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면, 이는 보다 현실에 기반을 두었다고 여겨지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바이든 팀의 퇴임 인터뷰를 고려할 때, 사실 양측 모두 각자의 신화 속에 갇혀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단순한 광기의 나락이 아니라, 웨스트 윙의 새로운 시즌일지도 모른다. 이번 시즌의 제목은 ‘한심한 자들을 위한 웨스트 윙’(West Wing for deplorables)이다.
[출처] Chartbook 359 West Wing for deplorables: America's liberal elites, history and the Trump shock.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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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