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인 3조 6천억 원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시장의 반응은 시끄러워졌다. 지난해 1조 7천억 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고 올해와 내년에도 6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기업에서 3조 6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느닷없었기 때문이다.
유상증자는 주식 수가 많아져 개별 주식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특히 소액 주주에게는 불리한 자본 증식 형태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곤두박질을 시작했고, 일반 주주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또한, 한화오션의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 등이 한화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때문이라는 비판도 쇄도했다.
논란이 확산하고 주식이 급락하자 한화는 일반 주주를 달래기 위해 3조 6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중 주주 배정 유상증자는 2조 3천억 원으로 축소하고 나머지 1조 3천억은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 한화에너지싱가포르 등 3개 계열사가 인수하겠다고 정정 공시했다. 또한, 대주주와 계열사는 할인 없이 신주를 인수하고 일반 주주는 15% 할인된 가격에 배정한다고 밝힘으로써 일반 주주의 반발을 잠재우려 했다. 이러한 한화의 시도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는지, 현재 주가는 다시 회복됐고 주주들의 반발도 다소 사그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재벌의 편법, 불법 승계는 총수 일가의 사적 이윤과 지배구조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소액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경제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해치며 경제민주주의를 뒤로 돌려놓기 때문에 국민 경제 전체에도 큰 피해를 입힌다. 소액주주 달래기는 성공했을지라도 노동자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승계 작업이 계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최근 한화오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와 고용불안을 호소하며 고공농성 중인데, 이 문제는 재벌 승계라는 자본의 거대한 그림 속에 노동권이 침해당하고 노동자가 희생되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사진: 참세상
한화의 3대 승계 과정
한화그룹의 3대 승계는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고, 그 핵심에 한화에너지의 상장(IPO)이 놓여 있다.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 22.1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을 비롯하여 세 형제가 각각 50%, 25%, 25%의 지분을 나눠 소유한 한화에너지는 말 그대로 ‘총수 일가 소유 회사’다. 한화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는 수십 년 전부터 재벌들이 활용해 온 방식의 전형적 패턴과 유사한 면이 있다. 지주회사 격인 한화와 총수 일가 소유 회사인 한화에너지를 결합시키면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한화에너지의 상장은 핵심적인 매개체로 작용한다. 재벌 승계에 필요한 실탄(현금)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면, 이후 한화와 합병할 때 유리한 합병 비율이 산정되어 지분승계가 한층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세 형제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고 강화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도 나섰다. 이를테면 한화오션 지분 구조 정리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사명을 한화오션으로 바꾼 과정은 재벌승계가 일종의 ‘교통정리’ 형태로 진행된 단적인 사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 등 계열사들이 각각 나눠 가졌던 한화오션 지분을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모아갔다.
이로써 방산부문 주력이 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오션을 지배하는 구조를 명확히 했는데, 김동관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 등이 막대한 현금을 회수하는 효과까지 누리게 되었다. 즉,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는 초기에 한화오션 지분을 투자한 뒤 시세차익을 얻거나 원금을 회수할 길이 열린 것이다. 문제는 이 매입 자금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직접 현금 투입하여 마련했다는 데 있다. 그 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인 3조 6천억 원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하지만, 소액 주주의 반발에 직면한 한화는 주주배정 유상증자의 비중은 낮추고 한화오션 매각 대금만큼인 1조 3천억 원의 유증은 한화에너지 등 한화오션 주식을 매각한 계열사 배정을 통해 다시 회수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결국 현금 회수는 늦춰졌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신주)과 한화오션 주식을 교환한 셈이 됐지만, 유상증자를 통해 삼형제, 특히 김동관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재벌 승계의 본질적인 측면은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현금 회수 문제도 한화오션 주식 매각보다 더 중요한 한화에너지 상장이 도래해 있으므로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김동관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에게 부여된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제도 또한 총수 일가의 지분 확대나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된다. RSU는 부여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현금으로 지급된다. 회사의 주가가 높을수록 현금화 가치가 커지므로, 경영진 입장에서는 주가를 부양하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한화그룹은 이를 두고 "경영 성과와 연결된 인센티브일 뿐,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주가 상승의 몫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이들은 총수 일가다. 게다가 재벌 총수의 주식 지분을 상속받으려면 결국 현금이 필요하기에, RSU의 현금 지급 부분은 총수 일가가 필요 자금을 얻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된 RSU가, 실제로는 재벌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구조다.)
한화오션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공농성
한화오션 주식을 이쪽저쪽으로 돌리면서 재벌 승계와 계열사 지배구조 재편이 활발히 이뤄지는 상황에서, 한화오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한화 본사 앞 농성과 고공농성을 이어갔다. 그들은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 환경 등으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호소한다. 이전 대우조선 시절부터 이어진 사내하도급, 외주화, 파견 등을 통한 비정규직 고용 관행이 한화오션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쌓인 결과다.
고공농성은 노동자들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며, 수차례 교섭을 시도해도 번번이 묵살되거나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때 택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다. 통상 재벌 대기업은 사측의 교섭 의지가 낮고, 협력업체나 하청 노동자들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게다가 사내하도급이나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원청 책임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짙어,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걸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게다가 한화오션은 방산업체라는 특수성과 조선업 특유의 공정 위험성, 그리고 높은 산업재해율이 결합해 노동 강도가 세면서도 임금은 낮은 구조가 유지되었다. 거기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처우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한화오션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사항은 “안전한 일터와 안정된 일자리, 그리고 인간다운 대우”다.
노동권 희생으로 이뤄지는 재벌 승계
재벌승계는 단순히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이어가는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 기업 운영 측면에서 보면 지분 확보와 상속세 마련 등으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를 위해 그룹 내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고, 비용은 낮추거나 외부로 떠넘기는 압박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손쉽게 ‘비용 절감’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로 인건비, 즉 노동자들의 몫이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노동조건 개선을 방치하는 식으로 노동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유인이 강화된다.
또한, 재벌 체제는 지배구조가 복잡하며,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회사 내 의사결정 구조는 ‘총수 일가의 사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먼저 초점을 맞추기 쉽다. 한화오션처럼 막대한 투자금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노동자 처우나 지역사회의 이익보다 총수 일가가 주도하는 경영 전략이 우선한다. 이는 사회적 책임, 노동권 보호, 투명한 지배구조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낳는다.
특히, 주식시장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은 투자자와 주주의 이해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단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 우선될 가능성이 커, 노동환경 개선이나 고용 안정 같은 장기적 사회적 이익은 저해되기 쉽다. 재벌 승계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한 지분 매입이나 유상증자를 추진하면, 일반 주주들은 보유 지분이 희석되고, 주가가 급락하는 피해를 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기업의 경영권 분쟁과 자금 압박 속에서 안정된 노동조건과 고용을 보장받지 못한다.
사진: 참세상
재벌 개혁은 비정규직의 외침과 공명해야
현재 한화오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으로 호소하고 있는 핵심 문제는 “삶의 안정과 인간다운 노동 조건”에 대한 갈망이다. 반면, 한화그룹은 재벌 승계에 열을 올리며, 계열사 간 지분 정리와 한화에너지 상장 추진, 대규모 유상증자 등 기업 재원을 동원하고 있다. 이 대조적인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재벌 자본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기본권 문제를 압도해 버리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이 사안은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재벌 체제의 세습적 지배구조가 유지되는 한, 기업 이익이 특정 가문에 집중되고, 노동자들의 요구는 뒤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 방식이 아니면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화오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한화그룹뿐 아니라 한국의 재벌 체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볼 계기로 삼아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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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만은 민중언론 참세상의 발행인, 편집인이며,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