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 강령 비판⟫ 150주년, 그리고 오늘의 사회주의 전략

⟪고타 강령 비판(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이 발표된 지 150년이 되었다.

⟪고타 강령 비판⟫은 1875년 5월 초 칼 마르크스가 독일 사회민주노동자당(SDAP)에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작성된 문서였다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 정당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었다이 편지는 고타 강령이라는 문서에서 이름을 따왔으며이는 고타(Gotha)라는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당 대회를 위한 강령 초안이었다그 대회에서 SDAP는 페르디난트 라살(Ferdinand Lassalle)의 추종자들이었던 독일 노동자총연합(ADAV)과 합당하여 통일된 정당을 구성할 계획이었다.

칼 마르크스의 ⟪고타 강령 비판⟫은 이번 주로 150주년을 맞는다이 문서는 혁명 전략에 관한 마르크스의 가장 구체적인 발언,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의 의미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성격그리고 국제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사상을 담고 있다.

고타 대회: 1875년 5

사회주의 활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라살은 국가를 민중의 표현으로 보았으며어떤 사회 계급의 산물로 간주하지 않았다그는 국가 사회주의 형태를 수용했고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거부했다대신 그는 임금에 관한 맬서스주의적 이론인 임금의 철칙을 주장했다이 이론은만약 한 경제에서 임금이 생계 수준 이상으로 오를 경우 인구가 증가하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경쟁에 뛰어들어 결국 임금을 다시 하락시킨다고 설명했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임금 이론을 오랫동안 거부해왔다. (내 책 ⟪엥겔스 200⟫ 40~42쪽 참조) 

페르디난트 라살

아이제나흐파(Eisenachers)는 통일당을 위한 강령 초안을 마르크스에게 보내 검토를 요청했다마르크스는 이 강령이 라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판단했고이에 비판적 응답으로 ⟪고타 강령 비판⟫을 작성했다그러나 1875년 5월 말 고타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결성하기 위해 이 강령은 단지 약간의 수정만 거쳐 채택되었다마르크스의 비판 서신은 훨씬 뒤인 1891년에 엥겔스에 의해 출간되었고이는 SPD가 새로운 강령을 채택할 의사를 천명했을 때였다그 결과물이 1891년의 ⟪에르푸르트 강령⟫(Erfurt Programme)이다칼 카우츠키(Karl Kautsky)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 초안한 이 강령은 고타 강령을 대체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에 더 가까웠다.

⟪고타 강령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여러 항목 가운데 특히 국가 원조에 대한 라살식 제안을 비판했는데이는 생산물의 사회화나 상품생산 폐지가 아니라 국가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었다또한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을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한다는 언급이 강령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지점이다왜냐하면이것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과의 일상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진정한 계급 조직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유로운 인민 국가라는 표현에도 반대했다마르크스에게 있어 국가는 단지 투쟁혁명 속에서 적을 무력으로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과도기적 기관이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인민 국가라는 말은 철저히 허튼소리다왜냐하면 진정한 자유의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국가는 그 자체로서 존재를 멈추기 때문이다.” 이 점은 탈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입장과, ‘국가 사회주의를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공산주의의 두 단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항상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는데이는 초기의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와 구분하기 위해서였다그들은 공산주의를 단순히 교환가치에 기반한 생산양식과 사회형태의 해체라고 정의했다⟪고타 강령 비판⟫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생산자(노동자)가 생산에 대한 통제를 분리당하는 자본주의의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었다이것을 되돌리려면 노동력의 완전한 탈상품화가 필요하다공산주의적 또는 조직된’ 생산은 임노동시장국가라는 계급 기반의 중개 없이 생산자들과 공동체에 의해 계획되고 수행된다.

⟪고타 강령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폐지된 후 공산주의의 두 단계를 개략적으로 제시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것은자체의 토대 위에서 완전히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오히려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막 태동한 공산주의 사회다그러므로 경제적·도덕적·지적으로 모든 측면에서 그것은 아직 그 자궁으로부터 나온 옛 사회의 출생 자국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개별 생산자는공공 기금에 대한 공제를 제외한 뒤자신이 사회에 제공한 만큼을 정확히 사회로부터 돌려받는다그가 사회에 제공한 것은 자신의 개별 노동량이다예컨대사회 전체의 노동일은 개별 노동시간의 총합으로 구성된다개별 생산자의 노동시간은 사회적 노동일에 대한 그의 몫즉 그가 기여한 부분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특정 양의 노동을 제공했음을 나타내는 증서를 사회로부터 받는다(공공 기금에 대한 노동 공제를 제외한 뒤). 그리고 이 증서를 가지고 그는 소비 수단의 사회적 비축분에서 동일한 노동량만큼을 인출한다그가 한 형태로 사회에 제공한 동일한 노동량을 다른 형태로 되돌려받는 것이다노동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 부의 기초적 실체이므로노동시간은 부 생산의 비용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교환가치가 제거된다고 해도 말이다.”

공산주의의 하위 단계에서조차도 시장은 존재하지 않으며교환가치도화폐도 없다새로운 결합체의 하위 단계에서는, “생산자들이 … 그들의 노동시간에 상응하는 소비재를 사회적 비축분에서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종이 증서를 받을 수 있지만, “이 증서는 화폐가 아니다유통되지 않는다”(마르크스). 노동 증서는 연극 입장권과 같으며단 한 번만 사용된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1단계에서조차도 전체 사회 생산물의 대부분은 개별 노동자가 노동증서로 분배받기 전에 처음부터’ 공공의 용도로 공제된다고 보았다교육보건공공요금노후연금 등은 이처럼 전체 생산물에서 공제된 후에 마련되는 확장된 사회 서비스로 제공된다따라서 생산자가 개인으로서 박탈당한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그에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이익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회적 소비가 현대 사회에 비해 상당히 증대될 것이며새로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 비중도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보았다그리고 기술 발전 덕분에 노동일이 급격히 단축되면노동증서의 적용 범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는노동의 분업에 대한 개인의 예속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사라진 이후그리고 노동이 단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의 주요 욕망이 된 이후생산력이 개인의 전면적 발전과 함께 증가하고협동적 부의 모든 원천이 더욱 풍부하게 흘러나올 때그제야 사회는 부르주아 권리의 좁은 지평을 완전히 넘어서고, ‘각자에게는 능력에 따라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라는 구호를 깃발에 새길 수 있다.”

과도기

⟪고타 강령 비판⟫으로부터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경제를 구분할 수 있다이 시기에는 정치적 과도기가 존재하며이 시기의 국가는 오직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일 수밖에 없다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민주주의와는 낯설게 느껴지지만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있어 이 개념은 단지 국가와 경제를 노동계급이 장악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는 공산주의 언론인이었던 요제프 바이데마이어(Joseph Weydemeyer)가 처음 사용했다그는 1852년 독일어 신문 <투른 차이퉁>(Turn-Zeitung)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같은 해 마르크스는 바이데마이어에게 편지를 써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보다 훨씬 앞서 부르주아 역사학자들은 이 계급 간 투쟁의 역사적 전개를 기술했고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 경제적 해부를 수행해왔다내가 한 기여는 다음과 같다. (1) 계급의 존재가 생산 발전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와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2) 계급투쟁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됨을 밝혔다. (3)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결국 모든 계급의 폐지와 무계급 사회로의 이행일 뿐임을 규명했다.”

자본주의는 보편선거권과 선출된 지도자라는 형식을 갖춘 민주주의의 외양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 민주주의는 자본의 독재즉 금융자본과 거대 과점체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통제하는 자본의 지배다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노동계급 다수가 자본을 지배하는’ 민주적 통치를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파리 코뮌을 그 사례로 꼽았다엥겔스는 1891년 ⟪프랑스 내전⟫(The Civil War in France) 팸플릿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다여러분이 독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은가파리 코뮌을 보라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파리 코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엥겔스는 코뮌이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첫째행정·사법·교육 등 모든 직책을 해당 대상자들의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하고동일한 유권자들이 언제든지 자신이 선출한 대리인을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권했다둘째모든 공직자들이 고위냐 하위냐에 관계없이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을 수령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이러한 방식으로대리인에 대한 구속적 위임과 대표 기구에 대한 각종 통제 조항들 외에도출세주의나 경력 추구에 대한 실질적인 장벽이 세워졌다.

엥겔스의 두 번째 원칙은 선출된 사람이 선출한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이는 단지 강력한 반부패 수단일 뿐만 아니라기능공이 단순 노동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 자체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유래한 낡은 잔재임을 뜻한다노동자가 숙련되었다면그것은 본인의 타고난 자질 때문이거나(그리고 이를 이유로 보상할 이유는 없다), 교육 체계로부터 혜택을 받은 결과이기 때문이다어느 경우든 그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쓰레기를 수거하는 노동자는 경제학 교수만큼이나아니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항들은 공산주의로 이행 중인 노동자 국가에 있어 출발점부터 필수적인 요소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권력(군대경찰관료체계)의 점진적인 소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자본의 기능(통제와 감시)을 수행하는 자들과 노동의 기능(노동 과정의 조정과 통일)을 수행하는 자들 사이에 본질적인 구분을 한다마르크스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예로 들어 이러한 조정자의 역할을 설명한다지휘자는 연주자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노동 과정의 통일성과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의미의 관리자가 아니다그들은 감시하거나 감독하지 않으며자본을 대신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의 대리인이 아니다그들은 집단 노동자의 일원이다이들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의 관리자와 정반대에 있다.

과도기 경제의 생산은 사용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여 생산하기로 한 재화들—예를 들어군비보다 환경 투자를 우선하는 식—을 만드는 것이다이것은 계획을 필요로 하며따라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요구한다또한생산수단의 공동 소유투자에 대한 민주적 결정각 노동 과정에서 모든 노동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의 선택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원칙들이야말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핵심 지표들이다이 원칙들이 확장되고 있는지 또는 사라지고 있는지는 한 사회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아니면 멀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잣대다.

국제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개별 국민국가들에서 시작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주요 경제권들로궁극적으로는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는 한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그러했듯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지 않는 한사회주의다시 말해 국가기계의 소멸을 통한 사물의 관리’ 단계로 진전할 수 없다.

공산주의적 생산은 단순히 자본주의로부터 상속되어새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부가 그것을 법으로 공표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장구한 투쟁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통한 투쟁조건들과 인간의 변형을 요구한다이 변화된 조건들 중에는 분배의 변화만이 아니라생산의 새로운 조직화아니 오히려 생산의 사회적 형태를 그들의 현재 계급적 성격으로부터 해방시키고 … 그것을 국민적·국제적으로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도 포함된다이것은 제국주의의 종식을 의미하며이를 민주적 계획과 공동 소유에 기반한 국가들의 연합으로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중국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중국은 ⟪고타 강령 비판⟫에서 제시된 노동자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으며제국주의에 둘러싸인 과도기적 경제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중국은 가두어진 과도기’ 상태에 있으며이 상태는 소련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결국 후퇴할 수도 있다이러한 후퇴를 막고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중국은 자신의 생산성을 제국주의 핵심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이를 통해 사회적 필요를 위한 노동시간과 결핍을 줄이고임금노동과 화폐 교환을 폐지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제국주의 핵심부에서의 노동자 혁명 없이 실현될 수 없다그러한 혁명은 그곳에 과도기적 경제를 수립할 수 있어야 하며그 다음에야 비로소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적 필요에 부합하는 생산과 분배의 민주적 계획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이 계획은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목표로 해야 한다.

⟪고타 강령 비판⟫은 마르크스가 150년 전 작성한 짧은 편지였다. 2025년인 오늘날에도그것은 여전히 명료하고 유효하게공산주의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150 years since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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