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제국의 마지막 날에는 바보들이 지배한다. 그들은 현실과 단절된 문명이 보여주는 집단적 어리석음을 반영한다.
부조리의 꼭두각시극(Puppet Theater of the Absurd), by Mr. Fish.
죽어가는 제국의 마지막 날은 바보들이 지배한다. 로마, 마야, 프랑스, 합스부르크, 오스만, 로마노프, 이란, 소련의 왕조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국가를 약탈하며,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사라진 메아리 방에 틀어박힌 퇴폐적인 통치자들의 어리석음 속에 무너졌다.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에 있는 아첨하는 어릿광대들은 로마 황제 네로의 통치 버전을 현대적으로 다시 그려낸 존재들이다. 네로는 마법 능력을 얻기 위해 막대한 국가 재정을 투입했고, 중국 황제 진시황은 불사의 약을 가져오기 위해 신화 속 불사의 섬을 향해 반복적으로 원정을 보냈으며, 무능력한 제정 러시아 궁정은 러시아가 2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전쟁에 파괴되고 거리에서는 혁명이 들끓고 있을 때도 타로카드를 읽고 강신술에 매달렸다.
정치철학자 에리히 푀겔린(Eric Voegelin)은 『히틀러와 독일인들』에서 히틀러가 탁월한 웅변가이며 기회주의적 정치인일 수는 있지만 교양이 부족하고 저속하다는 점에서 독일인을 현혹하고 유혹한 인물이었다는 통념을 일축했다. 그는 독일인들이 히틀러와 그 곁의 “기괴하고 하찮은 인물들”을 지지한 이유가, 히틀러가 병든 사회의 병리를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사회는 경제적 붕괴와 절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푀겔린은 어리석음을 “현실 상실”로 정의한다. 현실을 상실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행동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다. 선동가는 항상 ‘이디오테스’이며, 괴물이나 사회적 돌연변이가 아니다. 그는 그 시대정신, 즉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의 합리적 세계로부터 사회가 집단으로 이탈한 모습을 표현한다.
잃어버린 영광과 권력을 되찾겠다고 약속하는 이 바보들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파괴할 뿐이다. 그들은 붕괴를 가속한다. 지적 능력은 제한되어 있고, 도덕적 나침반도 없으며, 형편없이 무능하고, 자신들을 무시하고 배척했다고 여기는 기성 엘리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세상을 사기꾼, 사술가, 과대망상자들을 위한 놀이터로 만들어낸다. 그들은 대학을 공격하고, 과학 연구를 추방하며, 백신에 대한 사이비 이론을 유포해 대규모 감시와 데이터 공유를 확장하려 하고, 합법적 거주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며,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되어버린 깡패 군대를 동원해 공포를 퍼뜨리고 복종을 강요한다. 기후 위기든 노동계급의 빈곤이든, 현실은 그들의 환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상황이 나빠질수록, 그들은 더 어리석어져 간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급진적 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회의 책임을 이 집단적 “사유 없음”에 돌린다. 자기 자신과 자녀들이 갇힌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절망적인 사람들은, 모든 이들을 착취하며 살아남기 위한 악다구니를 일상화한다. 사람들은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이는 지배 계급이 가하는 잔혹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푀겔린이 지적했듯, 혼란과 무질서에 시달리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을 찬양한다. 그들은 교활하고, 조종하고, 속이고, 폭력을 일삼는다. 열린 민주사회에서는 이러한 특성들이 혐오받고 범죄화된다. 그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배척된다. 그러나 병든 사회에서는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규범이 완전히 뒤집힌다. 열린 사회를 지탱하는 특성 — 공동선을 위한 헌신, 정직, 신뢰, 자기희생 — 은 조롱받는다. 그런 덕목은 병든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해가 될 뿐이다.
플라톤이 지적했듯, 공동선을 포기한 사회는 언제나 도덕적 제약이 없는 욕망 — 폭력, 탐욕, 성적 착취 — 을 풀어놓고, 마법적 사고를 부추긴다. 나는 이런 경향을 『환상의 제국: 문해력의 종말과 스펙터클의 승리』라는 책에서 다뤘다.
이 죽어가는 정권들이 유일하게 잘하는 일은 스펙터클뿐이다. 트럼프가 6월 14일 자신의 생일에 열겠다고 발표한 4천만 달러 규모의 육군 퍼레이드 같은 ‘빵과 서커스’ 쇼는 고통받는 대중을 잠시나마 즐겁게 만든다.
영원히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나라, 뭐든지 가능하다는 허상을 파는 나라 — 바로 미국의 디즈니화는 경제 침체와 사회 불평등의 잔혹함을 감추기 위해 팔리고 있다. 대중은 성적 상품화, 진부하고 무의미한 오락, 폭력의 노골적 묘사로 채워진 대중 문화에 의해 길들여지고, 실패의 책임을 자기 탓으로 돌리도록 학습된다.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현대의 시대(The Present Age)』에서 현대 국가는 양심을 제거하고 개인을 유연하고 세뇌된 ‘공중(public)’으로 조형하고 조작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이 공중은 실제가 아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기괴한 추상, 전부를 포괄하지만 실체가 없는 어떤 것, 신기루”라고 묘사했다. 요컨대 우리는 하나의 무리에 편입됐다. “결코 실제 상황이나 조직 안에서 단합될 수 없고 단합된 적도 없는 비현실적인 개인들 — 그럼에도 하나의 전체로 묶여 있는 존재들”이 되었다. 공중을 의심하는 자들, 지배 계층의 부패를 고발하는 자들은 몽상가, 괴짜, 배신자로 치부된다. 그러나 그들만이, 그리스의 ‘폴리스’ 정의에 따르면, 시민으로 간주할 수 있다.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은 전제 정권은 타락한 시민 사회로부터 자라난 곰팡이라고 썼다. 과거 사회들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우리에게도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타락을 개인화하고 싶어지는 유혹이 있다. 마치 트럼프만 제거하면 우리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고 분별을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부패는 이미 우리의 민주적 제도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이 제도들은 형식만 남고 실질은 사라졌다. 국민의 동의는 잔인한 농담이 되어버렸다. 의회는 억만장자들과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클럽이다. 법원은 기업과 부유층의 하수인이다. 언론은 엘리트들의 메아리 방이며, 그들 중 일부는 트럼프를 싫어할지 모르지만, 전제정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개혁을 주장하는 이는 없다. 문제는 전제정치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이지, 전제정치 자체는 아니다.
역사학자 램지 맥멀린(Ramsay MacMullen)은 『로마의 부패와 쇠퇴(Corruption and the Decline of Rome)』에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정부 권한의 왜곡과 오용”이라고 썼다. 권력은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로 인해 정부는 무력해졌다. 최소한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기관의 기능은 상실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부도 무력하다. 정부는 이제 기업, 은행, 군수 산업, 과두정 oligarchs의 도구가 되었고, 부를 상층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자신을 잡아먹고 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이렇게 썼다. “[로마의 쇠퇴는] 지나친 위대함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은 부패의 씨앗을 익게 했고, 정복의 확장과 함께 파멸의 원인이 증식되었으며, 인위적인 지지대가 시간이 지나거나 우연히 제거되자, 그 거대한 구조물은 자신의 무게에 눌려 무너졌다. 그 몰락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우리는 로마 제국이 왜 망했는지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유지되었는지에 더 놀라야 한다.”
로마 황제 코모두스(Commodus)는 트럼프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는 자신을 헤라클레스처럼 형상화한 동상을 만들게 했고, 정치는 거의 관심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경기장 스타라고 여겼고, 검투 경기에서 자신이 승리자가 되도록 연출했으며, 활로 사자를 사냥했다. 그는 로마의 이름을 콜로니아 코모두아나(Colonia Commodiana, ‘코모두스 식민지’)로 바꾸면서 제국 전체를 자신의 끝없는 나르시시즘과 부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았다. 그는 트럼프가 사면권이나 특혜를 자신에게 우호적인 투자자, 취임 위원회 기부자, 대통령 도서관 후원자에게 팔듯이, 공직을 매매했다.
결국 황제의 측근들은 그가 글래디에이터 복장을 하고 집정관직을 맡겠다고 선언한 뒤, 그를 목욕탕에서 프로 레슬러에게 목 졸라 죽이게 했다. 그러나 암살은 쇠퇴를 막지 못했다. 코모두스를 계승한 개혁가 페르티낙스(Pertinax)는 석 달 만에 암살당했다. 프라이토리아 경비대는 황제직을 경매에 부쳤고, 다음 황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Didius Julianus)는 66일밖에 못 버텼다. 코모두스가 죽은 다음 해인 서기 193년에는 다섯 명의 황제가 차례로 등장했다.
후기 로마 제국처럼, 우리의 공화국도 이미 죽었다.
헌법상 권리 — 적법 절차, 인신보호, 사생활, 착취로부터의 자유, 공정 선거, 반대할 권리 — 는 사법적·입법적 결정으로 박탈당했다. 이 권리들은 이제 이름만 존재한다. 우리의 가짜 민주주의가 내세우는 가치와 현실 사이의 극심한 괴리는, 우리가 정치적 담론에서 사용하는 단어들 — 우리가 우리 자신과 정치 체계를 묘사할 때 쓰는 언어 — 이 모두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1940년, 유럽의 파시즘이 부상하고 세계 대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썼다.
“앙겔루스 노부스(Angelus Novus)라는 파울 클레의 그림에는, 무언가를 응시하며 곧 떠나려는 듯한 천사가 있다. 그의 눈은 넓게 뜨이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천사의 모습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다. 우리가 연속된 사건의 고리를 보는 자리에, 그는 하나의 거대한 재앙을 본다. 이 재앙은 잔해 위에 잔해를 쌓아 그의 발 앞에 내던진다. 천사는 거기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산산조각 난 것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낙원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그의 날개에 걸려들었고, 그 폭풍은 너무나 거세서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 없다. 폭풍은 천사를 저항할 수 없이 미래로 밀어내고, 천사는 등지고 내던져진 과거의 잔해를 하늘 끝까지 쌓아 올리게 된다. 이 폭풍이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타락, 문해력의 쇠퇴, 현실로부터의 집단적 도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유권자의 권리를 포함한 권리의 지속적인 침식, 국가 기관들이 착취 도구로 변질된 과정,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의 빈곤화, 방송을 가득 채운 거짓말, 공교육의 붕괴, 끝없는 무익한 전쟁, 천문학적인 공공 부채, 물리적 인프라의 붕괴 — 이 모든 것들은 모든 제국의 마지막 날과 똑같은 모습을 비춘다.
방화광 트럼프는 우리가 침몰해 가는 동안, 우리를 오락거리로 삼아 즐기게 한다.
[출처] The Rule of Idiots - The Chris Hedges Report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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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