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2심 선고 기자회견(소소부부 제공)
“사랑이 이겼다!”
2023년 2월 21일, 고등법원 앞에서 감격에 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우리 부부가 다투고 있던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직후였다. 결과는 우리들의 승리였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지위를 박탈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판결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게 법원의 책무임을 밝히며, 이성의 사실혼 관계와 동성 부부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했다. 따라서 건보공단의 처분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해당 판결은 우리 부부만의 권리, 건강보험 상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한다는 그 하나의 권리를 넘어, 평등을 향한 여정에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 소송은 건보공단의 상고로 대법원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동성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꾸린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차별금지법, 혼인평등법, 성별인정법 등 성소수자들의 삶에 꼭 필요한 법안들의 제정은 요원해 보이고, 군형법 제92조의6, 전파매개행위죄 등 성소수자를 낙인찍고 차별하는 법안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유지되고 있다.
‘사랑이 이긴다’는 말은 그저 구호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변화에 대한 확신을 설명하는 선포다. 이 선포의 힘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더 이상 외면 불가능한 정치의 당면과제로 만들어내야 한다. 앞으로 [소소부부의 Love Wins]를 통해 산재해 있는 성소수자 인권 의제를 풀어내려 한다. 소소부부의 Love Wins, 그 첫 번째는 아이다호빗 소개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집회(2022년 용산역)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질병분류에서 ‘동성애’를 삭제한다. 앞서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제외한 데에 이은 일이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매년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아이다호빗; 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ophobia , Biphobia, Inter & Transphobia, IDAHOBIT)로서 전 지구적으로 기념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은 행동과 행사가 만들어져왔다. 바로 앞으로 다가온 5월 17일을 맞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70여 개의 단체는 2024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투쟁단을 꾸려 ‘모두의 평등, 자유, 정의’를 기치로 투쟁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성소수자가 포함되지 않은 ‘모두’는 불가능하다는 이 슬로건 아래, 공동투쟁단은 모두의 평등과 자유, 정의를 위해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법과 제도에 반영하라는 외침을 투쟁대회를 통해 세상에 전할 예정이다.
1993년에 설립되었던 성소수자 단체 ‘초동회’를 기점으로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30년을 넘은 역사를 가진다. 그 시간의 투쟁과 행동, 축제와 공연은 성소수자 인권을 증진하는 수많은 사회문화적 진전을 만들어냈다. 이에 더해 이제는 법·제도적 변화와 성취를 통해 혐오와 차별, 낙인을 뚫어내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다.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의한 차별금지를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법제화를 통한 혼인 평등의 실현,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한 트랜스젠더 인권 증진 등 한국 정부의 무능과 정치의 무응답이 켜켜이 쌓아온 수많은 과제가 놓여있다.
최근 충남과 서울의 학생인권조례가 각 지방의회를 통해 폐지되었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까지도 폐지될 위험에 처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없애려는 세력의 주요 주장 중 하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의 내용이 동성애를 조장해서 청소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지구적 기록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저런 비과학적·후진적 주장에 유일하게 동요하고 결탁하는 것이 한국 정치다. 정부는 이런 무능함으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았고, 성소수자에 대한 법·제도·행정적 차별을 용인하거나 자행함으로 보수개신교의 성소수자 혐오·차별 선동에 공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더 힘껏 포용할 수 있게 만들어온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힘은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다. 축제와 퍼레이드는 전국 각지로 확장되어 그 울림이 더욱 커지고 있고, 작년 2월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에 관한 재판에서 항소심 승소를 만들어냈다. 차별과 낙인의 벽이 너무나 견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두드리고 부딪혔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우리는 결국 우리 사회의 전진을 방해하는 벽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구멍을 냈다.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혐오와 차별, 낙인의 벽에 생긴 구멍과 금을 확장하기 위해, 또다시 부딪혀 부수기 위해 평등과 인권을 바라는 이들이 모인다. 그 균열로 부서지는 벽 앞에서 모두의 평등과 자유와 정의를 소리친다. 모두에게 해로운 불평등과 갈라치기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 세상에 외쳐질 ‘모두의 평등, 자유, 정의’에 힘을 보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