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노동청 천안지청에서 만난 세 명의 근로감독관
청년유니온 프리랜서 법률자문단 활동으로 접한 사건이다. 개인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업주는 교육을 빌미로 근로시간을 축소하여 근로계약서에 기재하고, 근로계약서 뒷면에는 ‘프리랜서 근무형태: 자율 근무형태’라는 표현이 적혀있었다. 식비와 교육비 명목으로 각각 30만 원과 50만 원을 급여에서 공제하고, 퇴직금은 급여에 포함되어 퇴직금 지급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별도 문서도 아닌 근로계약서에 당사자 서명과 함께 적혀있었다.
1년 1개월 동안 주 6일을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고작 110만 원을 받았다. 청구액이 1천만 원을 넘었고, 진정인이 프리랜서라는 사업주의 주장은 제대로 된 증빙자료조차 없었다. 사실 이 정도면 노동자성을 다투는 사건 중에서는 무난한 편이다. 그런데 최초 진정 사건에서 퇴직금 220만 원을 제외한 임금은 모두 인정이 되지 않았고, 해당 사건을 담당한 노무사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근로자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후 3년의 시효가 지나기 전에 다른 곳에서 상담을 받아봤는데 재진정은 인정이 어렵다고 해서 돌고 돌아 나에게 온 것이다.
우선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아 일단 진정부터 접수했고,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후 배정된 담당 감독관과 날짜를 조율해 출석 일자를 최대한 당겨 천안에 내려갔는데 감독관이 사건의 실익이 없다며 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퇴직금 미지급 건에 대하여 기소유예 처분이 나온 것이 있어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한다며 굳이 왜 재진정을 넣었냐고 되물었다. “임금체불과 퇴직금 체불은 범죄 구성 요건이 다르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기소유예 처분은 판결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감독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옆자리 감독관들도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사건 진행이 안 된다고 할 뿐이었다.
결국 근로감독관 기피 신청을 하고, 다시 감독관을 배정받았다. 그런데 새로 배정된 감독관은 제출한 의견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 사건을 종결해 버렸다. 그러면서 대리인에게 “감독관이 종결하라고 했기 때문에 저도 어쩔 수 없어요”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받아보고 충격적인 사실들을 발견했다. 최초 진정 사건의 감독관은 진정인이 사업주와 두 번째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을 ‘퇴사로 인한 자발적 근로관계 단절 후 재입사’의 증거라는 사업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퇴직금 미지급에 대해서 ‘법 위반 사실 없음’으로 올렸다가, 검사가 추가 조사를 지휘하여 퇴직금에 대하여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것이었다(검사가 근로감독관의 조사에 반하여 죄를 인정하도록 지시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두 번째 진정에서 기피신청 후 배정된 감독관은 검사가 일사부재리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시효는 더욱 촉박해졌고, 다시 재재진정을 제기하여 부분적으로 인정은 받았으나 상처 많은 승리였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모 감독관의 ‘내사지휘건의’ 문서 中 발췌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대한 집단적 무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과장 면담을 위해 새벽 지하철을 탔고, 감사를 제기했다. 그 결과 천안지청 소속 감독관 전체가 재발 방지 차원에서 직무교육을 진행했고, 담당 감독관에게는 “주의”조치가 내려졌지만 사건은 끝난 뒤였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민원처리결과 회신’ 문서 中 발췌
“상대방 통화 기록이라도 제출하세요” 위법수집증거 확보하라는 군산지청 근로감독관
군산지청에 근로기준법 제40조(취업 방해의 금지) 사건을 맡게 되었다. 서울에 본사가 있는 용역업체는 지역에 일일이 내려오지 않고, 현장소장 역할을 하는 지배인이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받아 처리한다. 미군기지에서 간접고용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는 200만 원이 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일자리는 귀해서 평균연령은 65세에 달하고 70세가 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일자리가 절실한 만큼 반대급부로 현장소장의 영향력은 상당해서, 잘못 보였다간 말 한마디에 잘리기 십상이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처음으로 사업주에게 휴업수당, 연차휴가미사용수당, 초과근로수당 등을 요구한 사람이다. 그러자 근무 중에 계속 트집을 잡아 고립시키더니,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대부분의 노동자가 최소한의 면접 절차도 없이 승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계가 배제되었다(이 글에서의 쟁점은 아니지만, 이후 노동위원회에서 고용승계 기대권을 인정받아 복직하였다).
전북2023부해275 심문회의 녹취록 발췌
엘000 소속인 지배인이 00개발로 채용이 내정된 상태에서, 00개발에 어떠한 리스트(명부)를 주어 특정 당사자를 ‘채용하지 않음’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였다면, 이는 충분히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 소지가 있다. 원청인 00개발에 용산 본사에 있고, 간접고용 사업장이 군산이라는 점도 충분히 ‘통신’을 통한 취업 방해 행위를 의심할 수 있는 사항이다. 또한, 지배인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스스로 제출한 자필 진술서에 “강력히 재고용 안 된다고 말씀드리게 되었다”며 채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당사자가 채용되면 내가 그만두겠다”며 사실상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담당 감독관은 “당사자가 자료가 없다고 한다”, “증거가 불충분해 통신영장 청구는 어렵다”, “증명 책임이 주장하는 자에게 있으니 지배인과 사업주의 통화 기록을 내라”라며 수사관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위법수집증거를 대리인에게 요구하기도 하였다.
“강력히 재고용 안 된다고 말씀드리게 되었다”며 진술한 사실을 인정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위증으로 제출된 전화 등 사실확인 내용
“재진정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행정해석 편의주의에 빠진 대구노동청 감독관
지난 7월 11일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서 24년 만에 콜센터 교육생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었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뒤 전국 각지의 콜센터 교육생들이 사례를 제보하고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 이 중 많은 당사자가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는데 감독관이 “콜센터 교육생은 노동자가 아니니 민사 소송으로 해결하라”, “콜센터 교육생 문제는 노동청 관할이 아니다”며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거나, 2000. 1. 27.에 나온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사건을 종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근무한 한 콜센터 교육생 사건의 경우, 감독관이 “서약서에 진정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써 있는데 직접 작성하지 않았냐”, “저희는 입사 전 교육에 대하여는 민사소송으로 청구해야 할 부분으로 본다”, “다른 사업장에서 인정된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해야 하기에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면서 노동법의 강행규정성을 무시하고, 진정인에게 유리한 사례에 대하여는 기판력이 없어 개별·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행정해석은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르는 모순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재진정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진정인의 물음에 “재진정을 넣는 건 가능하지만,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 재진정 결과를 판단하기까지 했다.
“대법원 판결에도 10년 전 판단기준에서 요지부동” 수사하지 않는 서울 서부지청 감독관
서울 서부지청에 헬스트레이너의 노동자성에 대한 진정을 접수했다. 그동안 헬스트레이너의 노동자성에 대한 하급심 판결은 엇갈려왔는데, 2023년 2월 2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 있어 충분히 노동청에서도 다퉈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위 대법원 판결이 헬스트레이너의 노동자성 판단기준을 정립하여 엇갈린 하급심 판결들을 정리했다고 평가되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서울 서부지청의 감독관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다. 위탁사업계약서를 입사하여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있는 “乙은 독립사업자에 해당하여 甲(사업주)은 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가 부담하는 법령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문구에 대한 책임을 요구했다.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근거로 해당 문구가 무효임을 주장하자, “사업주의 우월한 지위는 계약 성립 후에 발생하는데, 계약서는 입사 과정에서 작성하기에 양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작성하는 것 아니냐”라며 믿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 이 발언대로라면 계약서 하나로 사업주의 노동법상 책임을 모두 회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위 사건을 수임하게 된 계기가 단순히 2023년 2월 2일 자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2심 민사 판결에서 나온 사실관계는 이번 당사자의 사실관계와 매우 유사했고, 계약서의 내용 역시 90% 이상이 일치했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한 판단기준에 따라 사실관계를 정리했으나, 결과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행정종결이었다. 사업주는 대질조사에서 “이사와 매니저가 사업주에게 보고 없이 임의로 지시하였고, 이를 트레이너들이 자발적으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라는 무리한 주장을 하였으나, 근로감독관은 이사와 매니저에게 임의로 트레이너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 요구조차 하지 않고 증거불충분으로 결론을 내렸다. 진정인이 그런 자료들까지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청 사건처리결과 통지서에 제시된 판단기준
심지어 해당 근로감독관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최근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판단기준인 ‘계속성 및 전속성’ 판단기준을 가져오는 것으로 모자라, “근로관계의 계속성은 미래의 가능성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근로제공 관계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및 “‘전속성’은 ‘독립사업자’ 표지와의 관계에서 제한적으로 판단해 ‘업무시간 내 전속성’으로 한정해야 한다”라는 최근의 판단기준을 10년 전으로 돌려버렸다. 산재보험법에서 전속성 요건이 폐지된 것이 2023년 7월 1일인데, 위 사건의 결과가 나온 것은 2024년 7월 10일이다. 이처럼 근로감독관들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의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근로자 이음센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위 사건들이 갖는 공통점은 근로감독관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진정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증명책임을 요구하여 증거불충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노동관계법령에서 규정한 범죄에 관하여 수사권을 가진 특별사법경찰관으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추가로 수사하거나 필요할 경우 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조장풍’같은 감독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에게만 내리는 비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 모든 억울한 사건들이 나에게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입할 노동조합도 없고, 체불액이 소액이라 대리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노동자들은 이와 유사한, 또는 더 심각한 문제를 반복해서 겪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이는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는 근로감독관에 대한 업무 과중과 인원 부족이 주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근로자 이음센터’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강행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은 더 이상 불이익을 그저 참고 견디지 않고, 쉽게 권리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안타깝게도 노동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용기를 낸 노동자를 돌려보내는 근로감독관들의 태도이지, 상담할 곳의 부재나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노동청 진정 잔혹사를 끝내는 것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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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