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제임스 A. 로빈슨(James A Robinson)이 경제학 분야에서 노벨상(사실은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유는 "제도 형성과 그것이 번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때문이다. 대런 아세모글루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교수이고, 사이먼 존슨도 같은 대학의 교수이며, 제임스 로빈슨은 시카고 대학교의 교수이다.
출처 : 노벨상 홈페이지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수상 이유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20%의 국가들은 가장 가난한 20%의 국가들보다 약 30배 더 부유하다. 지난 75년간 국가 간 소득 격차는 매우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으며, 200년간 국가 간 소득 불평등은 더욱 커져왔다. 왜 국가 간 소득 격차는 이렇게 크고 지속적인가?
올해의 수상자들은 이러한 인류의 중요한 질문에 신뢰할 수 있는 정량적 답변을 제공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척했다. 그들은 식민지 전략이 이후 경제 발전에 미친 영향과 지속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저소득 국가들의 착취적 제도 환경의 역사적 뿌리를 밝혀냈다. 자연 실험과 역사적 데이터를 사용하는 그들의 연구는 번영의 역사적 원인, 혹은 그 결여를 밝히는 새로운 연구 전통을 시작하게 했다.
이들의 연구는 정치 제도가 국가의 부를 근본적으로 형성한다는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도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세모글루와 로빈슨은 기존의 정치학 이론을 게임 이론적 틀로 통합하여, 지배 엘리트가 주기적인 위협에 대응하여 정치 제도, 특히 선거권 확대에 대해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동적인 모델을 개발했다. 이 틀은 이제 정치 제도 개혁을 분석하는 표준이 되었으며, 연구 문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모델의 핵심 함의 중 하나를 지지하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더 포괄적인 정부가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수년(혹은 수십 년?) 동안 나는 경제학에서 다양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에 대해 글을 썼다.
Nobel people
Robert Lucas: the rationality of capitalism
Robert Mundell: nothing optimal
A prize auction
Poverty prize
Progressive capitalism – an oxymoron
Climate change and growth – Nordhaus and Romer
We’ve never had it so good!
Kenneth’s three arrows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수상자의 연구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대체로 노벨상은 가장 형편없는 연구, 즉 경제 세계의 주류 관점을 확인해주는 연구에 대해 수여되었다. 이런 연구들은 실제로 우리가 그 모순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진전시키지 못했다.
이 결론은 이번 수상자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그들이 받은 백만 달러 상금은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이 번영을 이루고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연구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 즉 사람들이 주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때때로 공무원들을 선출하며, 법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엘리트들이 민주적 책임 없이 통제하는 사회는 자원을 착취하고 재산과 가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번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련의 논문에서 이들은 민주주의와 번영 수준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입증하려 했다.
실제로 노벨 수상자들은 18세기와 19세기 남반구의 식민지화가 포괄적인 시스템일 수 있어 북미를 번영하는 국가로 만들었고, 반면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은 착취적인 시스템으로 인해 빈곤에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이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이러한 경제학은 '제도주의적' 경제학이라 불리는데, 이는 성장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시장의 맹목적인 힘이나 자본 축적이 아니라 인간이 설정한 결정과 구조라는 주장이다. 이 모델을 지지하며 수상자들은 혁명이 경제적 변화를 앞서간다고 주장하고, 경제적 변화가 혁명을 앞서기보다는 혁명 후에 새로운 경제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이 따라온다. 첫째, 만약 성장과 번영이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면, 소련, 중국, 베트남과 같은 나라들이 엘리트에 의해 '착취적'이거나 비민주적이라고 여겨질 때, 이 나라들의 분명한 경제적 성과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이들 나라가 처음에는 가난해서 '따라잡기'를 해야 했지만, 곧 그 착취적 성격이 그들을 따라잡을 것이며, 중국의 급성장도 결국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마도 지금이 그 시점일지도 모른다.
둘째, 정치적 개혁이나 혁명이 번영을 위한 길을 설정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 옳은가?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가 1917년 혁명 없이 오늘날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을까? 혹은 1949년의 혁명 없이는 오늘날의 중국이 가능했을까? 그러나 수상자들은 이런 예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예는 19세기 영국에서의 선거권 확대나 1770년대 미국 식민지의 독립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노동력의 투자와 생산성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영국에서 자본주의와 산업 혁명의 출현은 보편적 선거권 도입에 앞섰다. 1640년대의 영국 내전은 영국에서 자본가 계급의 패권을 위한 정치적 토대를 마련했지만, 그 후의 세기 동안 무역(특히 노예 무역)의 확장과 식민지가 경제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번 수상의 아이러니는 아세모글루와 존슨의 최고 연구가 과거의 노벨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연구보다 최근의 연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작년에 『Power and Progress』를 출간했는데, 여기에서 현대 경제에서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기술의 모순과, 동시에 불평등과 빈곤이 증가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물론 그들의 정책적 해결책은 재산 관계의 변화를 언급하지 않으며, 자본과 노동 간의 더 큰 균형을 요구하는 데 그친다.
이번 수상자들에게 긍정적인 점은 적어도 그들의 연구가 세계와 그 발전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많은 수상자들이 상을 받았던 시장에서의 균형에 관한 난해한 정리와는 다른 접근이다. 다만, 그들의 '따라잡기' 이론은 모호하고(혹은 그들이 말하듯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는 브라질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아달미르 안토니오 마르케티, 알레산드로 미바흐, 엔리케 모론이 최근 발표한 책에서 따라잡기 과정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세계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남반구'가 '북반구'의 생활 수준을 따라잡는 과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측정했다. 이 책은 노벨 수상자들이 무시한 생산성, 자본 축적, 불평등한 교환, 착취, 그리고 잉여를 누가 통제하는가와 같은 중요한 제도적 요소를 다루고 있다.
[출처] Why nations succeed or fail: a Nobel caus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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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