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멤버들이 ‘데뷔 2개월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년 전의 일이다. ‘Hype Boy’가 수록된 1집의 대성공은 그들에게 ‘괴물 신인의 등장’이라는 수식을 가져다줬다. 그만큼 멤버들이 받은 정산금에도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지난 5월, 뉴진스 멤버 1인당 52억 원가량의 정산을 받았을 거라는 추정 기사가 나왔다. 인기만큼이나 빠른 정산과 높은 액수는 놀랍지만, 당연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케이팝 산업에서 이른바 ‘정산’의 시기와 금액은 그룹의 성공을 보여주는 잣대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때론 아이돌의 ‘늦은 정산’도 주목받는다. 오마이걸의 멤버 미미는 tvN <뿅뿅 지구오락실>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그 후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난 계속 마이너스 나오다가 지금 8년 만에 버는 거”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오마이걸이라는 꽤 이름이 알려진 그룹 멤버였던 미미의 ‘데뷔 후 8년 동안 마이너스였다’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고생 끝에 낙이 온’ 케이스로만 받아들였다. 뉴진스의 사례나 미미의 사례가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아이돌의 정산 에피소드는 ‘성공’한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얘기다. 케이팝 가수들의 성공 신화는 대체로 이렇게 만들어진다.
1%의 아이돌
아이돌의 ‘정산’ 에피소드는 미디어 콘텐츠에 종종 등장한다. 답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부모님께 많은 용돈을 드리고, 자동차를 교체해 드리거나 혹은 집을 사드렸다는 이야기들로 채워지며 본인을 위한 소소한 사치(?) 에피소드를 곁들인다. 그런 아이돌에 미디어는 ‘효도돌’이라는 네이밍을 붙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케이팝 산업에서 ‘정산’이라는 건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에 간 아이돌, 케이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공동주최)에서 노종언 변호사는 2024년 1월 기준 아이돌 순위표 상위 50개 그룹 명단을 PPT로 띄우고는 “이름 들어본 그룹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물었다. 케이팝을 즐기는 입장에서 자신 있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멤버들의 이름까지 모두 아는 그룹은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저들 중 TV쇼에 나와 정산을 에피소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에 간 아이돌, 케이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 출처: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실제 아이돌이 ‘정산’을 받기까지는 수많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일단 연습생 생활을 견뎌야 한다. 운이 좋으면 바로 데뷔하기도 하지만 10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렵게 ‘데뷔 조’에 든다고 하더라도 팀 자체가 깨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유도 다양하다. 회사의 재정 악화가 발목을 잡기도 하고 같이 준비하던 연습생이 중도 하차하기도 한다. 개인 투자자의 단순 변심에 의해 깨질 때도 있다. 연습생들한테는 흔한 일이다. 그 힘든 세월을 버텨 회사와 정식 계약을 통해 데뷔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아이돌이 곧바로 정산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케이팝 산업에서 정산이란, 회사가 해당 아이돌을 데뷔시키기 위해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한 후에 (그래도) 수익이 발생하며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돌 입장에서 정산은 데뷔 후에도 한동안 요원한 일이다.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그룹이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노동은 하지만 수입이 없는 아이돌이 케이팝 산업에 매일매일 다량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시기가 중요하다. 회사와 아이돌의 관계가 절대 갑과 절대 을의 위치에 놓이는 시기. 회사 입장에서는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인식하에 아이돌을 마구 굴리는 때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자유선택권을 비롯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조항은 아무런 힘이 없다.
99%의 아이돌
문제는 수입이 0원인 탓에 아이돌 멤버들이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TV 속 정산받는 아이돌은 ‘효도돌’로 불리지만, 케이팝 산업 내 대부분의 아이돌은 그 반대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아이돌 그룹 틴탑에서 활동한 방민수 씨는 “데뷔했으나 정산받지 못하는 99%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알바라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회사는 아이돌(idol, 우상) 자체가 다가가기 어려운 신비한 존재여야 하는데, 어딘가에서 알바한다는 것은 상품성이 훼손되는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바 금지 조항은 실제 계약서에 담기기도 한다. 방민수 씨는 “회사와 계약할 때 300만 원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7년 동안 본인의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며 “99%의 아이돌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하고 있는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사와 아이돌의 계약기간은 통상 계약은 ‘7년’에 맞춰져 있다. 장기 노예 논란 이후 큰 폭으로 줄어들긴 했으나,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다. 수익이 없는 아이돌에겐 그 7년이 족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방민수 씨는 “회사가 7년 동안 계약을 풀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그 기간 소모비용이 안 들어가니 일단 묶어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돌 멤버들은 본인의 앨범 발매나 활동 계획이 없음에도 계약에 묶여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방민수 씨는 문제 해결책으로 ‘월급제’를 제시했다. 최소한의 월급이라도 받아야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금을 기반으로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다. 또 다른 순기능도 기대된다. 회사 입장에서 월급을 줘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이 생기면 계약을 묶어두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토론회에서 브레이브걸스 전 멤버인 노혜란 씨 또한 “아이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생력이 없다는 점”이라며 “실업급여 등 직장인들이 받는 기본적인 권리들이 엔터에도 좀 녹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아이돌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
한국 사회에선 케이팝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이 속에서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보호 요구는 산업에 대한 규제로 받아들여지며 벽에 부딪혀 왔다. 그중 가장 강력한 논리가 바로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지난 21대 국회에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폐기된 일이 있었다. 해당 개정안이 무산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 15세 미만 아동의 노동은 금지된다. 15세 이상 18세 미만의 아동·청소년 또한 근로 시간을 1주 35시간으로 제한을 뒀다.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한 보호조치다. 그에 반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해 1주 40시간의 용역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가인권위에서 ‘타당하지 않다’며 법 개정을 권고한 이유다. 그에 따라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시간을 세분화하고 차등을 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상임위까지 무사히 통과됐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 당시 개정안에 극렬히 반대했던 한 국회의원실의 보좌관이 했던 말이 ‘아이돌은 노동자가 아니지 않느냐’였다.
그 보좌관의 논리에 따르면 방민수 씨가 제안한 ‘월급제’는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그래서 답답하다. 언제까지 대안도 없이 ‘노동자성’만 따지고 있어야 하나. 수익 없이 활동하고 있는 99%의 아이돌을 보호할 방안이라면, 그 이름이 ‘월급’이 아니더라도 적극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닌가. 토론회에 참석한 아이돌 그룹 단발머리 출신 허유정 씨(K-POP연구자)는 로엔 엔터가 소속 연습생들에게 월 5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자본의 선의에만 기댈 순 없다.
이날 토론회를 마치고 고민을 나눴던 한 동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스포츠 선수들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프로선수들은 노동자가 아님에도 최저임금은 보장되는데….” 실제 프로축구의 경우, ‘최저연봉’을 설정해 운영되고 있다. 프로야구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최저생계비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비춰보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한 회사라 하더라도 아이돌의 기초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정산은 보장돼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아이돌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니라 해도, 아이돌도 최저생계는 보장돼야 하는 게 아닌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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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