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파시즘이 오고 있다


출처: 가디언 화면 갈무리

불과 몇 시간 전 막을 내린 바이든-트럼프 대선 토론회를 계기로 미국 사회가 요동을 치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을 우려하는 측에서 그 흔들림은 더 격하다.

평년보다 훨씬 일찍 잡힌 대선 토론회는 애초 바이든 측에서 제안한 거였다. 여기에는 일찍 토론을 해서 트럼프의 거짓을 폭로하고 바이든의 건재함을 증명함으로써 기선을 잡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대선 토론회 내내 시종 힘없는 모습을 보였고 말도 더듬었으며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도와 다르게 이전부터 제기된 바이든의 건강 문제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통치력에 대한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더 힘을 받기 시작했고, 토론회를 계기로 주류 언론도 앞다투어 바이든이 대선 후보를 계속해야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후보 사퇴가 바이든이 미국에 봉사하는 길”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사설을 싣기까지 했다. 

출처: 뉴욕타임즈 화면 갈무리

바이든에 대한 우려와 문제 제기는 대선 토론회 전부터 있어 왔다.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바이든 당선 이후 말과 사진의 정치 말고 민주당이 흑인을 위해 한 것이 무어냐는 물음이 더 커졌다. 여기에 팔레스타인을 초토화하며 학살 전쟁을 밀어붙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바이든의 견고한 지지는 민주당의 새로운 지지기반이자 활력소였던 청년층과 진보파의 지지 유보와 철회로 드러났다. 이날 대선 토론회 장소였던 NBC 로비에는 백 명이 넘는 유대인 반전 활동가들이 모여 바이든의 이스라엘 지지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더 무서운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미국 정치와 사회의 극우화다. 미 연방 대법원은 최근 뇌물의 정의를 축소해 실질적으로 뇌물을 합법화하는 결정에서부터 (참고로 대법관 둘이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상황이다) 지난 40여 년 적용되어 온 환경 오염에 대한 규제를 불법화하는 판결, 또한 2020년 미 의회를 점거하고 폭력을 휘두른 수백 명의 시위자들에 대한 업무집행 방해 혐의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에 이르기까지 법의 보수적 해석을 넘어 입법부와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 유지를 위한 행정력의 무력화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런 연방 대법원의 프로젝트는 극우 개신교를 비롯한 극우 세력의 ‘정치세력화’와 행보를 맞춰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극좌 민주당’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을 조장하고 확산해 왔다. 그 중 임신 중단을 비롯한 여성의 재생산권, 성소수자, 이주자 이슈는 보수층 결집의 핵심적 매개였다. 이들 사회적 소수자의 악마화와 공격은 담론 캠페인의 수준을 넘어 극우 세력의 정치적 의제와 정체성과 즉각 행동에 응할 수 있는 지지기반 구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정치세력화’를 넘어 트럼프 정권 창출 후 시행할 정책들을 착착 마련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극우화의 경로를 걸었던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하고 수십 개의 보수/극우 단체와 재단, 연구소들이 모인 ‘프로젝트 2025’라는 대권 인수 프로젝트다. 그 방향과 내용은 딱 하나로 요약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견제 체제 해체와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 몰아주기”. 프로젝트 홍보 영상은 대놓고, 예컨대 환경청(EPA)이나 국무부의 공무원들이 법이 정한 임무/역할이나 각 부처의 정책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책의 최종 집행자인 대통령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파시즘을 구축하자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냥 한번 모여서 분위기 띄워보자는 취지가 아니라 철저한 평가와 계획 속에서 도출되었다. 2016년 대선에서 준비 없이 당선된 트럼프가 내각이나 각 주의 연방 대법관, 주요 부처의 책임 있는 자리에 앉힐 인력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했는데, 이로부터 트럼프가 당선되는 날부터 폭풍처럼 변화를 만들어갈 준비를 미리 해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프레임에 기반한 견고한 정치 담론 구축, 대대적인 대중적 지지기반의 조직화, 그리고 목표 현실화를 위한 치밀한 계획. 이는 트럼프의 재집권이 2016년과 다를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정치의 뿌리에는 거짓 정보(disinformation)와 이를 무제한 유통하는 인터넷 플랫폼으로서의 소셜미디어가 있다. 인터넷 확산 초기, 인터넷이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정보가 시민의 정보접근권과 민주주의 의식 함양에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혹은 너무나 많은 정보 때문에, 좌우를 막론하고 듣기 싫은 것은 거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방식의 정보 소비 행태가 자리잡았다.

이러다 보니 ‘사실은 구성된다’는 수준을 넘어 거짓이 사실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되었고, 사실보다는 믿음과 성향에 기반한 정보 접근, 또한 조회수 증가를 위해 이를 타깃으로 삼는 온라인 비즈니스가 횡행하게 되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이런 현실을 교정하고 방향타를 제시해 왔던 사법부와 정치권, 행정부, 언론, 학계 등도 이런 현실에 올라타는 형국이 일반화되었다. 심지어 이를 통해 돈이나 권력을 얻으려는 이들이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등장하면서 시민사회도 이와 같은 이전투구 현실의 일 주체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는 파시즘이다. 문제는 이게 미국만의 일도, 프랑스나 독일만의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확산한 거짓 정보가 공공연히 ‘사실’로 치장되어 언론과 정치권에서 주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 때 돌아다니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언론과 정치인을 넘어 대통령의 입에서까지 들먹여진 정황이 제시되기도 했다. 거짓 정보가 정부 정책의 기반이 되는 현실을 우리도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무제한적 성장과 이윤 추구, 공적 서비스의 민영화(혹은 민간 외주화), 민간 기업은 물론 공기업과 개개인까지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사회경제체제는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기후위기 악화와 사회 불평등의 심화, 민주주의의 퇴행을 낳고 있다. 체제는 민중에게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민중의 불안과 두려움은 거짓 정보가 만들어낸, ‘실재가 된 가상의 현실’에서 출구 아닌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100여 년 전의 역사는 혐오와 군국주의, 파시즘이 그 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정치는, 특히나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는 차가운 현실 분석에 기반해 정치의 출구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당들은 거짓 정보와 조작된 정치에 오염된 ‘여론’을 핑계로, 지지층 이반에 대한 두려움을 핑계로, ‘현실적인 정치’를 핑계로 필요한 노력을 회피한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흐름에 동참하며 그 흐름을 강화한다. 이 악순환을 끊어낼 정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20세기 초중반 전 세계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파시즘의 21세기 버전을 목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말

김선철은 기후정의 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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