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2024. 10.6. 서울역광장) *출처: 이주노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약 1년 전 2023년 12월에 네팔의 카트만두와 방글라데시의 다카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름 하여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리유니언’. 카트만두에서 공식행사를 마치고 그날 저녁 숙소에서 20년 만에 만난 많은 동지들끼리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를 가졌다. 술이 한 순배 돌자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 목소리로 ‘간절히 간절히’를 그야말로 간절한 목소리로 뜨겁게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나니 모두 ‘간절히 형’의 안부를 궁금해 했다. 그가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 모두 아쉬운 모양이었고 ‘간절히 형’이 간절히 그리운 것 같았다. 서울과 카트만두, 그 먼 거리와 20년이라는 시간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간절히 형(연영석 동지)’이 명동성당 농성투쟁 당시 집회 때마다 불렀던 노래가 ‘간절히 간절히’였다.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하도 많이 들어서 저절로 이 노래를 익혔다.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 갖는 세상,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마음만큼 갖는 세상’을 간절히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염원이 절절히 배인 노래였다. 특히 농성장의 요리사였던 꼬빌 동지가 주방에서 주걱을 흔들며 이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요리사 꼬빌 동지의 또 다른 별명은 ‘간절히 동생’이었다.
지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두 여성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옵티칼 하이테크 구미공장의 추석 문화제에서 간절히 형이 이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20년 전 명동성당 농성단 동지들이 목이 터지도록 목이 쉬도록 불렀던 그 간절한 세상은 여전히 멀기만 한 것 같고,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선을 넘는 투쟁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명동성당 농성투쟁 이후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주체로 나서서 당당하게 당사자 운동의 전망을 밝히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 나고 있어서 고무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선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민주노총이 그러하듯 민주노총의 우산 아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주노동자들이 선을 넘는 투쟁을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당시 고용허가제를 연착륙시키려는 참여정부가 50퍼센트를 넘나드는 미등록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한부 합법화 방침’을 발표해서 시작되었다. ‘시한부 합법화 방침’은 2004년 당시 2005년 연말까지 출국을 전제로 모든 미등록 노동자들에게 신고 후 체류비자를 발급한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신고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시적이나 체류 비자를 발급하고, 한편으로는 신고를 거부하는 모든 미등록 노동자를 강제 추방하는 조치였다. 당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는 이 방침을 받아들여 미등록 노동자들에게 자진신고를 하고 체류비자를 받으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네팔투쟁단을 중심으로 한 이주노동자들은 이것은 시한부 합법화가 아니라 시한부 출국 통보라고 강하게 반발하였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었다. 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강제 추방 정책도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었다. 공권력을 가진 법무부가 명동성당 농성장을 침탈하기라도 한다면 모두 강제 추방당하는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추방을 각오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힘으로 이주노동자들은 1년을 넘는 농성투쟁을 전개하였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국경을 부수는 체제전환운동의 상징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을 살지 못한다. 자본가가 원하는 만큼 일하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고용허가제의 기본 설계가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내 일한 만큼 받는 세상을 살지 못한다. 툭하면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이야기하는 자본가들이 주는 만큼 받는 세상을 강요당한다.
2024년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2024. 10.6. 서울역광장) *출처: 이주노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주노동자와 함께 선을 넘어 체제전환운동으로!
이주노동의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고착화된 근대국가의 국경이 그것을 조장하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안동에 사는 내가 서울에 가는데 그 어느 누가 시비를 거는가? 그런데 카트만두에 사는 로미씨가 서울을 오는 데는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경은 민중을 보호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구획선이 되어야 한다. 모든 지자체의 경계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런데 검사라니! 그리고는 통제라니! 국경이 곧 차별과 배제의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체제전환운동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경을 넘어 일하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내가 원한 만큼 일하고 내가 일한 만큼 받는 세상이 바로 체제전환운동이 지향하는 세상이어야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신자유주의다. 오늘도 노예노동을 강요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통제하고 감시하는 국경을 정당화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이주와 정주로 우리를 구분하고, 등록과 미등록으로 이주노동자를 구분하고 그 구분의 룰에 따라 살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답은 간단하다.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마음만큼 갖는 세상! 간절히 동지가 명동성당의 농성투쟁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불렀던 그 노래가 현실이 되도록 지금 당장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선을 넘어 체제전환운동의 광장으로 나가자.
- 덧붙이는 말
-
김헌주는 경북이주노동자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