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 왜 에드워드 시대 영국과 다른가…패권과 불균형의 역설

신(新) 홉슨주의 유비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불평등과 국제적 긴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21세기 초의 시급한 문제다그래서 현재 글로벌 불균형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오늘날의 정세를 해석하는 많은 이들은 우리가 불평등과 국제 긴장 양 측면에서 1914년 이전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구도로 회귀하고 있다고 본다미국의 불평등 수치는 도금시대와 유사하다여기에 기존 강대국이 잠재적 도전자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긴장을 조성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논의도 있다. 1914년에는 대영제국이 제국 독일을 견제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여겨지며오늘날에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계급 전쟁은 무역 전쟁이다⟫(Class Wars are Trade Wars)에서 페티스(Pettis)와 클라인(Klein)은 J. A. 홉슨(J. A. Hobson)을 명시적으로 참조한다홉슨의 ⟪제국주의⟫(Imperialism)(1902)은 이후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영향을 준 저작이다급진적 자유주의자였던 홉슨은제국 영국과 같은 부유한 국가에서 엘리트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국내 소득··권력 분배가 거시경제적 교착 상태즉 과소소비를 낳았고그 결과 과잉 생산 능력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을 공격적으로 해외로 수출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이러한 자본 수출은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홉슨의 직접적 계기는 1899~1902년의 보어 전쟁으로이는 남아프리카에서 거대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영국 국가 권력이 동원되어 기존 보어 식민자들과 그 국제적 후원자들에 맞선 전쟁이었다.

홉슨에게 이러한 제국주의는 새로운 현상이었다그는 이를 초기 근대 시기에 시작된 정착 식민주의나자신이 중반 19세기에 존재했다고 본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 잡힌 제국 지배와 명확히 구분했다제국주의는 제국 이후에 등장했다주요 강대국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약육강식의 제로섬 세계(1914년에 대한 폴 슈뢰더(Paul Schroeder)의 핵심 통찰)는 19세기 말세계적 개척지의 종결새로운 민족국가 세대의 부상도금시대의 극단적 국내 불평등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페티스와 클라인은 21세기 초에도 유사한 역학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그들의 핵심 논지는 중국에서의 분배 갈등—중국공산당(CPC) 정권과 대기업 연계 집단이 만들어낸 막대한 불평등—과 다른 흑자국들(2000년대 초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겪은 독일 등)이 무역 흑자와 자본 수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이는 임금 억제환율 조작자본계정 통제를 수행하지 않는 다른 국가들의 선택지를 제약한다이러한 조작된 세계화 체제에서끝없는 소비 수요와 거대한 금융 시장을 가진 미국이 다른 국가들의 잉여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2000년대 이후 미국 내 사회경제적 압력이 세계의 수출 시장 역할이라는 과도한 부담에 반발하면서 무역 긴장이 고조되었다다행히도 페티스와 클라인은 제국주의 간 전쟁이 불가피하다고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그들이 강조하듯이홉슨 이론의 함의는 오히려 낙관적이다문제의 근원은 흑자국 내부에서의 권력 균형 왜곡에 있다만약 모든 지역에서 엘리트와 지대 추구 세력에 맞서는 적절한 국제주의적 연합이 형성된다면소득 분배의 왜곡과 그에 따른 만성적 수요 왜곡을 교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21세기적 홉슨 해석—특히 투키디데스 함정 논의와 결합될 때—에서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 것은홉슨과 그의 동시대인들이 비판했던 세계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극적인 차이다.

홉슨의 비판 대상은 당시 국제 체제의 지배적 행위자였던 대영제국이었다잉여를 창출하고 전 세계로 자본을 쏟아부은 주체는 영국이었다반면 페티스와 클라인의 비판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독일과 같은 종속적 행위자나 중국과 같은 부상하는 신흥국이다그들의 분석에서 긴장의 원인은 중국의 자본 수출과 미국의 자본 유입이다중국은 분명 강력하지만기존 패권국은 아니다도전자의 위치에 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는 가장 부유한 국가가 순채권국이 아니라 순차입국이다이는 에드워드 시대 영국과 정반대다. 21세기에는 순투자가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즉 중국과 같은 중소득 국가나 다른 선진국 채권국에서월가와 고소득 미국이라는 정점으로 자본이 이동한다.

홉슨의 세계에서는 자본 흐름이 반대 방향이었다. 1914년 이전 세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든 간에적어도 이 점에서는 일정한 합리성이 있었다투자는 중심부에서 개발 중인 주변부로즉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와 같은 자본 수입국은 1인당 기준으로 보면 결코 가난하지 않았지만여전히 발전 과정에 있었다(이 점은 오늘날 미국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며나는 이를 이후 글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홉슨-레닌 테제에서 국제적 긴장의 원천은 경쟁하는 부유한 국가들이 제국적 개발을 주도하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입찰을 벌이는 데 있었다이러한 발전 주도권 경쟁은 오늘날 일부가 상상하는 것과 유사한 종류의 경쟁이다예를 들어 새로운 녹색 마셜 플랜을 요구하는 주장들이 그렇다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실상 중국만이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페티스와 클라인은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그들의 주장은 홉슨의 비판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오늘날 거울의 방과 같은 세계에서 그것을 반전시킨 형태에 가깝다그러나 이 테제가 투키디데스의 함정 논의와 결합할 때사람들은 쉽게 혼동에 빠진다그렇기 때문에 1910년대와 2020년대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극적인지를 분명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1914년 이전에는 금본위제가 일반적이었고법정화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거시경제 정책의 여지도 제한적이었다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제약이 없었고유럽인들의 노동 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홉슨이 비판의 핵심으로 삼았던 영국의 자본 수출 규모는 거대했다오늘날 글로벌 불균형 논의에 기여하기 위해 영국은행이 작성한 장기 자료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1870년부터 1914년까지 40여 년 동안당시 패권국이었던 영국은 상대적으로 볼 때 2000년대 이후 일본과 중국보다 더 큰 자본 수출국이었다이 그래프의 보라색 구간이 보여주듯이지난 150년의 현대 세계경제 역사에서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영국의 자본 유출 규모에 필적하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영국은행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대외 자산 축적 규모는 막대해졌다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당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전 세계 대외 자산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를 축적했다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빠르게 이를 따라잡았지만영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재정 파탄 없이 치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방대한 해외 자산 덕분이었다영국은행 자료를 보면1차 세계대전 기간 상당 부분 동안에도 영국은 여전히 동맹국들에게 자본을 수출하고 있었다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이 렌드리스(Lend-Lease) 형태로 깊은 적자 상태에 들어갔지만이는 단기간의 차입에 불과했다.

출처유진 스탤리(Eugene Staley), ⟪전쟁과 민간 투자자⟫(War and the Private Investor)

영국의 해외 투자에는 상당한 제국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지만런던 금융가에서 흘러나간 자금의 대부분은 영국 식민지나 제국 영토가 아닌 지역으로 향했다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대상은 미국이었다자금의 상당 부분은 철도와 같은 기반시설에 직접 투자되었으며이 거대한 투자 포트폴리오의 약 6분의 1이 미국 철도에 투입되었다.

출처괴츠만과 우코프(Goetzmann and Ukov, 2005)

이 자료를 보면 왜 홉슨이 보어 전쟁에 주목했는지를 알 수 있다. 1913년 영국은 남아프리카에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남아시아 식민지에 투자한 것과 맞먹는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었다멕시코 석유 산업을 구축한 것도 영국 자본이었다또한 세계 최대 규모였던 텍사스의 XIT 목장 역시 영국 자금으로 운영되었다한 텍사스 역사학자는 이렇게 쓴다.

영국 투자자들은 텍사스 북서부에 철조망 울타리강철 풍차심층 우물더 우수한 품종의 소를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그들은 다양한 작물을 실험했고연간 수천 달러를 받는 텍사스 카우보스(cattle bosses)’와 월 25~30달러를 받는 텍사스 카우보이(cowboys)’를 고용했다피할 수 없는 세금은 납부했고일부 주 정부 관리들과 로비스트들의 수입을 보전했으며결국에는 정착민을 유치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

그렇다도금시대 텍사스에서의 풍력 발전조차 런던 금융가의 자본 덕분이었다.

출처텍사스 협동 전력

이처럼 막대한 순자본 유출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그러나 그 흑자의 구성은 매우 흥미롭다이는 오늘날 미국과의 단순한 유비가 피상적임을 보여준다적어도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에드워드 시대 영국은 제국적 공물을 받아먹는 체제가 아니었다그것은 성실하게 일하는 패권국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영국은 오늘날의 미국처럼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영국은 외국 경쟁자들에게 시장을 제공했고이는 국가 쇠퇴와 엘리트가 영국 산업을 팔아넘긴다는 끊임없는 논쟁을 촉발했다홉슨 역시 이러한 영국 쇠퇴 논쟁의 일부였으며이것이 그가 21세기 미국 맥락에서 호출될 때 또 다른 혼란의 층위를 만들어낸다왜냐하면 오늘날 미국과 달리영국의 상품 수출은 여전히 견고하고 다양했으며대부분의 상품 수입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더 나아가 무역 적자는 서비스 소득에서의 큰 흑자와 해외 자산에서 발생하는 더 큰 소득 흑자로 충분히 상쇄되었다전체적으로 이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냈고이 흑자는 다시 재투자되면서 해외 자산 소득 흑자를 더욱 확대시켰다많은 해에 빅토리아 및 에드워드 시대 영국의 자산 소득 흑자는 전체 경상수지 흑자보다 더 컸으며이는 신규 해외 투자가 기존 투자 수익만으로도 충분히 충당되었음을 의미한다사실상 해외 투자 계정은 스스로 재생되는 부의 기금처럼 작동했다.

패권 안정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조합을 떠올리기 어렵다세계 경제 주변부 전반에 널리 퍼진지속적이고 대규모의 하향식’ 자본 흐름개발 인프라와 국채에 대한 집중 투자그리고 차입국들이 무역 흑자를 통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방된 무역 구조가 동시에 존재했다그 와중에도 영국은 대규모이면서 계속 성장하는 수출을 유지했고점차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이동해갔다.

이 체제가 불평등 위에 구축되어 있었고타국의 질투를 불러일으켰을 수 있음에도 이는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이상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영국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에드워드 시대 엘리트와의 격차는 컸지만동시에 영국의 노동 귀족층과 유럽 노동자들 사이에도 상당한 격차가 존재했다물론 인도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의 노골적인 제국적 착취가 이러한 우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그러나 잉여의 더 큰 부분은 직접적인 수탈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일상적 작동에서 비롯되었다북미라틴아메리카호주에 대한 수익성 높은 투자는 높은 수익을 창출했으며동시에 저렴한 소비재—특히 수입 식품—를 제공하여 영국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지탱했다.

물론 이러한 구조는 영국 내부의 변화를 초래했다그러나 독일과 같은 다른 유럽 경제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영국 제조업의 상대적 쇠퇴(이는 영국 경제사에서 논쟁적인 주제다)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소농 경제의 종말이었다. 1911년경 영국 본토에는 사실상 농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아일랜드에서만 예외적으로 존재했는데이는 런던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농민화(peasantization)’ 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출처제국 독일과 영국 인구조사

에드워드 시대의 이러한 이상형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 버전그것도 전후 할리우드를 거쳐 필터링된 형태를 보고 싶다면 <메리 포핀스>(Mary Poppins)를 떠올리면 된다.

20세기 초의 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왜 그랬을까?

한 가지 설명은 영국 내부에 국한된 것이다. ‘상대적 쇠퇴에 집착했던 영국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학자들이 높은 해외 투자와 위축된 국내 투자의 관계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만약 국내 투자가 위축되었다면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엘리트의 반산업적 편향 때문이었는가(그렇다영국은 이 논의에서도 가장 먼저 나섰다), 아니면 국내 소비 수요의 부족 때문이었는가(홉슨의 과소 소비론적 입장)? 이 논쟁의 틀은 미국과 독일에 의해 추월 당했다는 인식(앨프리드 챈들러(Alfred Chandler)가 ⟪규모와 범위⟫(Scale and Scope)에서 전형적으로 제시한 테제)당시 이용 가능했던 국민소득(GDP) 자료에 기반한 보다 기술적인 경험적 발견—특히 파인스타인(Feinstein)의 데이터—에 의해 형성되었다이 자료들은 1900년 전후 영국이 성장 둔화를 경험했다는 점을 시사했고이는 이른바 에드워드 시대 클라이맥터릭(Edwardian climacteric)’ 테제로 불렸다그러나 이 서사는 최근 세대의 경험적 경제사 연구를 견디지 못했다새롭게 수정된 영국의 GDP, 노동생산성총요소생산성(TFP) 자료는 177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 산업혁명 전반에 걸쳐 생산성 증가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1873년 전후에는 일시적인 상승 돌출과 하락 충격이 있었지만이후에는 역사적 기준에서 높은 수준의 안정적인 생산성 증가 구간에 안착했다.

크래프츠(Nicholas Crafts)와 밀스(Terence C. Mills), 「생각보다 더 이르게: 1914년 이전 영국의 생산성 둔화는 에드워드 시대가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의 현상이었다」⟪유럽 경제사 리뷰⟫(European Review of Economic History) 24권 4(2020), 736748.

도금시대 세계화의 붕괴를 설명하는 보다 비영국 중심적인 접근은 신(폴라니주의 경제사학자들이 제시한다이들은 세계화를 통해 세계 경제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 자체가 분배 투쟁에서 패배한 집단들의 반발을 낳았다고 본다대규모 이민이 유입된 국가의 노동자들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이민 제한을 지지했다수입품이 자국 시장을 잠식한 경제의 생산자들은 보호주의로 돌아섰다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던 사람들은 금본위제에 반대할 이유를 가졌다금본위제는 당시 체제의 금융적 틀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이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4)에서 말한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이다따라서 1914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상관없이세계화는 그 자체의 성공이 낳은 무게에 짓눌려 20세기 초에 붕괴되었다는 반사실적 역사 서술도 가능하다영국은 1870년대와 1890년대 세계를 휩쓴 보호주의와 배타주의 물결의 선두에 서 있지는 않았다그러나 결국 영국도 그 흐름에 합류했다데이비드 에저턴(David Edgerton)과 마틴 다운턴(Martin Daunton)이 보여주듯이, 20세기에 들어 영국 역시 제국 내 특혜 무역으로그리고 이후에는 국민경제 구축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영국 자본이 주도한 세계화의 붕괴를 촉발한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내생적 경제 요인이나 신폴라니주의적’ 정치경제가 아니라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폭발한 제국주의 경쟁이었다전쟁 자체를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것인지는 별도의 논쟁이다내가 다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나는 길핀(Gilpin)식 패권 전쟁 모델에 무게를 둔다1차 세계대전은 경쟁하는 제국주의 투자자들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유럽 내부의 불균등하고 결합된 발전 과정—특히 취약한 오스만 제국합스부르크 제국차르 제국 사이의 균형과 그 사이에서 치명적 역할을 한 독일—에서 비롯되었고이는 결국 유럽 열강 간의 세계적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어쨌든 영국의 견고한 대외 자산 구조를 무너뜨린 것은 생산성 격차나 보호주의적 반발이 아니라 전쟁이었다전간기에는 영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가 위협받기 시작했다2차 세계대전은 두 번째 재정적 재앙이었다전후 시기에는 영국이 때로는 무역 흑자를 기록해야 했는데이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요컨대불평등과 총수요에 대한 홉슨식 분석이 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는 있지만홉슨이 비판했던 상황이 21세기 세계와 구조적으로 크게 유사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가장 근본적인 특징에서 보면, 1914년 이전의 세계 경제는 고전경제학의 논리에 부합했다자본은 자본이 풍부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으로즉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그러나 21세기 세계와 오늘날 미국의 권력 구조는 그보다 훨씬 더 기묘하다.

[출처Chartbook 443 Hard-working hegemon? Why 21st-century America is not like Edwardian Britain.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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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국주의 홉슨 화폐 금본위제 미국 런던 금융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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