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럽은 분명 막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도전들을 역사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표현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
최근 안톤 예거(Anton Jäger)는 역사학자이자 연설문 작성자, 유럽연합의 비공식 조언자이며 현재 브뤼셀 지정학 연구소(BIG) 소장인 뤼크 판 미델라르(Luuk van Middelaar)에 대한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판 미델라르는 역사가 끝났고, 정치도 끝났다고 선언하는 포괄적 이론들을 경계하라고 유럽인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헤겔 대신 다른 철학자, 즉 정치가 급진적인 우연성의 지형 위에서 전개되며 역사는 일정한 패턴을 따르는 과정이 아니라 운명의 무작위적 작용이라고 주장했던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바라보라고 권했다. 판 미델라르는 냉전 이후의 세계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인들은 권력으로부터 영원한 휴가를 보내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들의 ‘마키아벨리적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남아 있던 무기력 상태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서양 동맹을 해체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몽상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판 미델라르는 지난해 ‘최근의 격변과 파괴적 사건들이 진정한 충격으로 다가온 곳은 유럽뿐’이라고 썼다. 그의 조언은 단호했다. 유럽연합의 상징인 경직된 규칙의 정치 대신, 유럽인들은 사건의 정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역사의 예측 불가능성은 혼란스러운 예외가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다. 혼돈과 위기로 너덜너덜해진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법률가식 논쟁이 아니라 신속한 의사결정이다. 이러한 긴급성의 필요성이 국방 분야만큼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다. 지난 2년 동안 BIG는 안보 자율성을 명분으로 익숙한 정책 제안들을 내놓아 왔다. 공동 부채 발행, 디지털 유로, 유럽 경제안보위원회가 그 예다.”
역사의 귀환을 주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역사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2022년에 주장했듯이, 미델라르의 사고방식을 특징짓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역사를 일련의 충격의 연속으로 본다는 점이다.
아래에는 2022년 1월 29일에 발행된 <차트북 75>의 일부를 인용한다.
판 미델라르의 최근 세 권의 저서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핵심 과제는 유럽이 하나의 정치적·역사적 행위자로 등장하는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가 이를 수행하는 배경에는 마키아벨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정치에 대한 특정한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의 마키아벨리 동상
판 미델라르는 마키아벨리를 J. G. A. 포코크(J. G. A. Pocock)의 영향력 있는 저작 ⟪마키아벨리적 순간⟫(The Machiavellian Moment)을 통해 읽는다. 판 미델라르는 ⟪판데모니움⟫(Pandemonium)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J. G. A. 포코크는 그의 탁월한 연구 ⟪마르디니(Guicciardini) 같은 동시대 인물들에키아벨리적 순간⟫(1975)에서 마키아벨리와 구이차 의해 이루어진 근대 정치사상의 형성을 폴리스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 속에서 찾는다. 포코크는 공화국이 ‘자신의 시간적 유한성과 대면하고, 세속적 안정의 모든 체계를 본질적으로 파괴하는 비합리적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도덕적·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려 시도하는 순간’을 말한다. 자신이 필멸의 존재임을 아는 사람들은 시간의 강물 속에서 우연에 의해 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무장해야 한다. 그것은 실존적 경험이다.”
— 뤼크 판 미델라르, ⟪판데모니움: 유럽 구하기(Pandemonium: Saving Europe)⟫, 41쪽
포코크의 이 구절은 판 미델라르의 사유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분의 기초를 제공한다. 한쪽에는 예측 가능한 사건들의 흐름을 관리하는 데 적합한 규칙 제정 기계로서의 유럽연합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역사라는 예측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인 사건들의 흐름에 직면해 즉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적 행위 능력이 있다.
판 미델라르가 그리는 EU의 역사는 하나의 성장소설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유럽은 미국이 제공하는 지정학적 우산 아래 거대한 규칙 제정 조직을 통해 상충하는 국가적 이해관계를 통제하려는 단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점차 역사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국경과 정체성, 이해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국가들의 결집한 정치 공동체로 성장한다. 마키아벨리가 조언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체들처럼, 유럽은 마침내 권력과 폭력, 역사적 사건들이 지배하는 세속화된 세계와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EU는 근대 초기로 되돌아간다. 판 미델라르는 유럽이 21세기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1500년대 마키아벨리적 각성의 반복으로 본다. 결국 역사성은 비록 초역사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천년 단위의 시간 범위를 갖는 틀 속에서 이해된다.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RB)에 실은 서평에서 판 미델라르의 첫 번째 저서 ⟪유럽으로 가는 길⟫(The Passage to Europe)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논의했다. 앤더슨은 판 미델라르가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유럽에 관한 담론은 관료기구, 국가, 시민을 중심으로 전개됐으며, 이에 따라 기능주의, 정부 간 협력주의, 입헌주의라는 이론들이 등장했다. 기능주의는 정지된 현재를 향하고, 정부 간 협력주의는 익숙한 과거를 향하며, 입헌주의는 갈망되는 미래를 향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어느 것도 진정한 역사성이라는 비판적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판 미델라르는 포코크를 인용하며 정부란 “우연적 시간을 다루기 위한 일련의 장치들”이라고 썼다. 역사성이란 바로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의 흐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판 미델라르가 말하는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건들이 유럽의 마키아벨리적 순간을 만들어냈는가? 최근의 사례들로는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유럽적 후유증, 2013~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2015~2016년의 “난민 위기”가 포함된다.
판 미델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세계사의 종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위기들이 찾아왔다. 은행들이 무너지고, 유로화가 흔들렸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 뤼크 판 미델라르, ⟪경보와 우회⟫(Alarums and Excursions)
유럽은 그렇게 신중세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새로운 현실주의로 내던져졌다.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판 미델라르가 ⟪경보와 우회⟫에서 2013~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를 길게 다루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그에게 첫 번째 우크라이나 위기는 EU의 학습 과정이었다. EU는 유럽의 규범과 규칙이 지닌 “매력”을 순진하고 고압적으로 강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2015년 민스크 II 협정(2015년 2월 12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체결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쟁 휴전 협정)을 중재한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적인 행위자로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원칙과 국제법의 엄격한 준수는 안정이라는 목표에 우선권을 내주었다. 완전한 평화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폭력의 감소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러시아는 판 미델라르에게 정치와 역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대비물 역할을 한다. 그가 러시아 국가 운영 방식을 묘사하는 대목은 길지만 인용할 가치가 있다.
모스크바와 마주할 때 유럽연합은 역사를 다루는 전혀 다른 방식을 접하게 된다. 러시아인들은 기회주의적 사건 정치의 대가들이며, 그에 걸맞은 체제를 갖추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것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것을 구현하고 있다. 서방의 논평가들은 흔히 푸틴이 비전 있는 ‘전략가’라기보다 기회주의적인 ‘전술가’라고 말하거나, 그의 의도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나 시리아에 관한 거대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그가 그런 계획을 세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노력이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러시아적 태도는 푸틴 이전부터 존재했고, 푸틴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냉전 한복판에서 러시아의 의도를 이해하려 애쓰던 시절, 모스크바 주재 미국 최고의 외교관 조지 F. 케넌(George F. Kennan)도 같은 현상을 관찰했다. 그는 1952년 워싱턴에 보낸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기민함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은 역사와 정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독특한 관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러시아인들)이 국제관계에서 행동과 반작용의 상호작용, 사건들이 서로 맞물리고 반영되는 방식, 몇 년 뒤의 상황을 결정하는 데 개입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들을 우리보다 훨씬 더 의식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먼 미래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지금 당장 확고하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우리보다 덜 느낀다.”
이러한 정치 방식은 지속적인 책임성 없이도 행동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도력을 요구한다. 크렘린은 바로 그런 체제에 매우 적합하다. 민주주의에서는 즉흥적 대응이 더 어렵다. 모든 행동은 설명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은 설득되거나 제압되어야 하며, 대중도 납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 번 사용된 논리는 독자적인 생명을 갖게 된다. 만약 석 달 뒤 상황이 바뀌어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면, 정치인은 곧 과거의 자신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게 되고 ‘말 바꾸기 정치인’이라는 비난받는다. 크렘린의 지도자는 그 문제에서 훨씬 자유롭다. 러시아식 우연과의 거래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국가 이익을 지켜내고 존경을 얻기만 하면 지도자는 진정성을 가장할 필요도 거의 없고 고려해야 할 것도 많지 않다. 반면 우리는 현실이 던져주는 맹목적인 우연에 불안해하며, 그것을 길들이기 위한 이야기들을 요구한다. 가능하면 도덕적 범주로 구성된 이야기들을 원한다. 그리고 정치인들 역시 그 이야기들을 믿어야 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훌륭한 즉흥 정치가 단순한 기회주의일 필요는 없다. 순간에 대응하는 유럽 지도자들 역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할 수 있으며, 나침반을 가지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논쟁의 대상이 되는 전략적 목표들을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 또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가치들이 복수적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바로 그것들이 우리의 힘과 개성을 규정한다. 만약 전통적인 미국 역사가 본질적으로 정의와 힘의 대결을 그린 도덕극이라면, 러시아 역사는 힘과 힘의 냉소적 대결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의 역사는 우리에게 비극적 인식을 남겨주었다.
-뤼크 판 미델라르(Luuk van Middelaar), ⟪경보와 우회: 유럽 무대에서의 즉흥 정치⟫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미국식, 러시아식, 유럽식이라는 세 가지 정치 양식에 대한 본질주의적 구분만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판 미델라르의 텍스트와 케넌의 텍스트 사이에 발생하는 의미의 미묘한 이동이다.
케넌이 크렘린에 귀속시킨 것은 행동과 반작용이 얽혀 있는 복합적 패턴, 그리고 장기적인 역사적 규정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런데 판 미델라르의 서술에서는 불과 몇 문장 뒤 그것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뀐다. 푸틴이 지녔다고 여겨지는 복잡성과 상호연관성, 장기적 규정성에 대한 인식은 “맹목적인 우연”에 대처하는 즉흥적 능력으로 변환된다. 달리 말하면, 판 미델라르는 톨스토이를 마키아벨리로, 혹은 적어도 포코크가 해석한 마키아벨리로 바꾸어 놓는다. 케넌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와 무관하게 우리는 다시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비합리적”인 사건들의 세계로 돌아온다. 역사는 “맹목적인 우연”이 된다.
판 미델라르는 순수한 즉흥성 너머에 전략적 국가 운영이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기회주의와 즉흥성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해류나 계절풍에 대한 지식, 다시 말해 복잡하지만 여전히 질서를 가진 역사적 과정의 논리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지도자들이 가진 나침반이다. 질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과 통찰에서 비롯되며, 역사 과정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판 미델라르는 한 대목에서 마키아벨리의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ù)에 대한 논의를 변주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들은 관습과 전통에 의지할 수 없으며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 … 그러나 단절과 갱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하나의 이점도 제공한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현재에 더 끌리며, 현재가 좋다고 느끼면 그것을 즐기고 추구한다.”
— 뤼크 판 미델라르, ⟪경보와 우회⟫
하지만 판 미델라르의 서술은 중요한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록 완전히 알 수는 없더라도, 새로운 영역이 실제로는 부분적으로 지도화되어 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방향을 잡을 기준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무지 상태에 있지 않다. 우리 세계에는 분명 단절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의 언제나 절대적인 단절은 아니다. 판 미델라르에게서는 실존적 드라마가 근대성의 발전 논리에 대한 분석을 압도한다.
포코크가 말한 원래의 마키아벨리적 순간, 즉 중세 신학의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면 동시대 사람들이 역사를 비합리적 사건들의 흐름으로 이해한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근대 역사가 쉽게 이해 가능한 신적 계획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포코크의 극적인 서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유로존 위기, 우크라이나 위기, 난민 위기를 본질적으로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비합리적인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 사건들은 어느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세 사건 모두 예측 가능했고, 과잉결정(overdetermined)되어 있었다. 만약 그것들이 비합리적이었다면, 그것은 오직 서로 충돌하는 여러 논리들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 결과는 케인스가 말한 의미에서의 “뒤죽박죽”이라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갈등과 모순, 불균등·결합 발전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결과를 낳은 역사 과정 자체는 결코 해독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EU의 원래 비전이 일종의 신중세적 신정론이었다고 믿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경보와 우회⟫의 한 대목에서 판 미델라르는 EU의 이데올로그들을 “중세의 예언자들”이라고 묘사한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유럽의 기술관료들이 금융 파멸의 악순환과 러시아 군대에 직면했을 때 세속화된 마키아벨리적 충격을 경험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존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트라우마를 그들 상황에 대한 진단의 기초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을 우리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 틀로 삼아야 할 이유도 없다. 만약 그러한 순간들에 역사가 단지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비합리적인 사건들의 연속처럼 보였다면, 만약 역사가 “러시아적” 얼굴을 하고 있었거나, 혹은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이 주장했듯 전쟁의 신 마르스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면, 그러한 상상은 결코 깊은 현실주의의 징표가 아니다.오히려 그것은 방향감각의 상실, 환멸, 절망의 징후다. ...
탈정치화의 시대, 그리고 이른바 역사의 종말은 결국 역사와 정치의 “귀환”에 대한 유난히 경련적이고 비역사적인 서사를 낳았다. 그것이 트라우마의 형태를 띠든, 혹은 남의 불행을 즐기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실패나 고통을 즐기는 심리)의 형태를 띠든, 그 서사는 자신의 탄생 순간이 남긴 흔적을 지나치게 많이 짊어지고 있다. 이 순간과 현재 상황을 진정으로 현실적으로 이해하려면, 실존주의적 과장과 감정적 연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글은 2021~2022년 겨울에 쓰였다. 하지만 2026년 여름인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출처] Chartbook 452 Europe's Machiavellian momen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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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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