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사회]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방송사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문화사회]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방송사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장르의 편중화’ ‘라이브 립싱크 논쟁’ ‘거대 기획사 독점 현상’ ‘가수들의 중복 출연’. 음악에 대한 애착과 음악프로그램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면 모두 눈을 감고도 줄줄 외울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 개혁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와 같은 문제를 질질 끌고 다니는 TV 음악프로그램에 대해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문화연대는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과 함께 ‘가요 순위프로그램 폐지’ ‘라이브 공연 활성화’ ‘음성적인 PR비 문제 해결’ 등의 과제를 갖고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2003년 역시 음악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 음악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지난 7월 30일, ‘지상파 방송 음악프로그램 모니터링 분석 결과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는 기존의 문제점과 더불어 2003년 상반기 모니터링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장르 편중화’ ‘라이브 공연의 부재’ ‘가수들의 중복 출연’ ‘몇몇 기획사의 독점 현상’ 등이 주된 내용이었고, 이에 대해 신정수(전 MBC <음악캠프> 담당 PD)PD와, 성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이종현 ‘마스터 플랜’ 대표가 현재 음악프로그램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였다. 토론에서 쟁점이 되었던 화두는 △진행자 문제 △음악 프로그램에서 장르의 문제 △음반 시장의 총체적 불황

[클리핑] 반세계화 미디어 운동의 두 번째 실험장 : 칸쿤

[클리핑] 반세계화 미디어 운동의 두 번째 실험장 : 칸쿤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 소장)

[문화사회]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도발적 질문 이와아키 히토시의

[문화사회]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도발적 질문 이와아키 히토시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 가운데 가장 이기직인 생물, 인간. 어느 날, 지구상의 ‘악의 축’ 인간을 백만 분의 일로 줄이기 위해 지네 같은 모양의 생명체가 나타나 인간의 뇌를 잠식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인간의 뇌를 잠식해야 하며, 자신이 뇌를 잠식한 인간을 숙주로 삼아 살면서 다른 인간을 잡아먹어야 한다. 그런데 주인공 신이치의 몸을 침입한 생명체는 귀를 통해 뇌로 침입하려다가 실패하고 손으로 침입했다가 신이치가 팔 중간을 막는 바람에 그만 손에 머무르게 되고 말았다. 자신의 손에 침입한 생물을 죽이자니 자신의 팔을 잃어야 하고, 신이치를 죽이자니 자신도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 두 생명체는 그렇게 해서 한 몸에 ‘공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생명체는 오른손에서 살게 되어 ‘오른쪽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인간 세계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빠른 시간에 습득할 수 있고, 자신의 형태를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도 있다. 한편, 인간의 뇌를 잠식한 생명체(이후, 기생생물이란 의미에서 패러사이트라 한다)들에 의해 인간들은 잔혹한 죽임을 당하고,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필요에 따라 인간의 모습으로, 싸울 때는 각종 무기의

그 옥탑방에 고양이는 있지만 사람 사는 맛은 없다

그 옥탑방에 고양이는 있지만 사람 사는 맛은 없다

요즘 최고 인기 드라마 였던 옥탑방 고양이가 23일 종영되었다. 요즘 이 프로로 인해 동거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나는 동거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이다. 내가 동거를 찬성하게 된 이유는 이전에 나와 함께 2년여 동안 함께 자취생활 했던 사람과 나눴던 이야기의 영향이 크다. 전에도 동거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술을 마시며 동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동거인은 적극적으로 동거를 찬성했는데 동거가 두 사람사이에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는 현재의 결혼 제도에 대한 불만이 닮겨 있었다. 그는 이전 어머지 아버지 세대의 불평등한 관계, 그리고 삼대를 관통하는 가족 내 지배체제의 모순을 경험하고, 일반 민주주의의 진전과 그만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대가 가질만한 특질이라고 본 것이라 요약 할 수 있다. 나의 동거인은 80먹은 할머니가 황혼의 마무리를 얼마 남기지 않고서 남편과 이혼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경상도 남자로써 자신의 아버지를 빗대었다. 한평생 무뚝뚝하게만 살아오면서 가부장성을 드러낸 이전 아버지 새대의 결혼은 실패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결혼에는 소통이 없었으며 여성은

[문화사회] 마리오 라가와의 , 그리고 원수연의

[문화사회] 마리오 라가와의 , 그리고 원수연의

야오이와의 구분을 위하여. 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 세 단어의 앞 글자면 따서 붙여진 ‘야오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가 있다. 절정도, 결말도,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절정, 결말, 의미도 없는 이야기의 소재는 남성간의 동성애이다. 야오이 만화의 스토리는 항상 고정적이다. 건장하고 체구 좋은 힘 센 남자가 여리고 작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다른 남자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하고, 여린 남자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결국은 쾌감을 느끼게 되며 급기야 상대 남자의 일방적 태도에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어허…어디서 많이 본 레파토리 아닌가? 그렇다. 바로 포르노의 수법이다. 현실에서라면 성폭행 범죄(심지어 아동 성폭행 범죄까지!)에 해당할만한 이야기들이 꽃미남들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다. 야오이 안에는 포르노처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성행위’와 ‘부당한 관계’가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야오이 만화들은 포르노의 효과가 그러하듯이, 일방적 성행위를 통해서 사랑의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허구를 심어주고, 특히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만화 속 인물처럼 성행위를 강제로 시도할 것이라는 편견을 유포시키며, 동성 애인 간의

[문화사회]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문화사회]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편집자주] 지난 7월 2일, 3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개혁과제 및 대안정책 제시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문화연대와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문화정책 각 분야별로 정책제안이 이루어지고, 문화부 및 민간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문화사회>는 이번 토론회의 발제문 중 ‘문화정책 일반, 지역문화, 문화유산, 체육정책’에 대한 4개의 발제문의 요약문을 싣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1.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 강내희 2. 지역불평등 해소 및 문화민주주의 확대 전략으로서의 지역문화정책 활성화 – 임정희 3. 참여정부 문화유산정책의 개혁과제 및 개선방안 – 황평우 4. 참여정부 체육정책의 방향 – 정희준 자료집 전문을 다운받으시려면 여기를 클릭! —> http://culture.jinbo.net/maynews/read.php?table=organ&item=&no=737 ==================================================== 경제적 이성 비판 ‘위험사회’를 경고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재귀성’(reflexivity)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한다. 이들의 입장은 근대성 자체를 포기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대성에 자기성찰의 능력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다. 이성으로 하여금 자기비판의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한 비판이론의 전통과 부합하는 이론적 입장인 셈이다. ‘경제적 이성’을 비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필요한 것은 ‘경제적 이성’의 폐기가 아니라 그것의

선무당의 곽덕준 특별전 감상기

선무당의 곽덕준 특별전 감상기

오늘의 미술관 감상에서는 시작부터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입구에 있던 특별전 리플렛을 감상도 하기 전에 모두 읽어버린 것이다~! 시간 많고 느긋하고 다리도 튼튼한 그대여, 리플렛의 논리에 빠지기 전에 감상부터 하시길… 덕분에 전시되어 있던 모든 작품에 대한 감상포인트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항시 자아정체성에 위기감을 갖아왔다던 “곽덕준”의 작품이라는 오만과 편견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사실 재일교포라는 위치가 결코 동정의 시선이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한국 가면 한국사람 대접 못받고 일본 가면 일본사람 대접 못받는 그룹인 건 맞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도 우선 말이 않 통하면 없는 사람 취급을 잘 하는 편이다. 혹시라도 내가 외국에 떨어져있는 상태라면 나 스스로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을 거다.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홍성욱교수의 “하이브리드 세상 읽기”에서 나오듯, 백의민족을 강조하면서 순종병에 사로잡혀있던 한국인이 하이브리드한 – 즉 잡종적 – 삶과 사고를 갖는다는 건 21세기에 들어서야 근사한 일이 된 것이다. 처음 전시관에 들어가면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다. 제목은 “자화상”. 곽덕준 ( 이하 “곽”) 자신의 모습을 유리에 이리저리 이그러트리고 있는 모습이 10분 내내 계속된다.

[문화사회] [라이브공연이 왜?] 라이브공연 활성화와 전문공연장의 필요성

[문화사회] [라이브공연이 왜?] 라이브공연 활성화와 전문공연장의 필요성

문화연대와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이하 대개련)은 라이브공연 활성화를 위해 서명운동과 홍보활동 등 제도개혁 운동과 음악팬 운동을 작년 말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문화연대와 대개련은 라이브 공연 활성화 캠페인을 통해 각종 제도개선은 물론이고, 음악팬들의 의식전환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라이브공연 활성화 캠페인이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아주 중요한 지점에 서있다는 것을 몇 가지 질문들을 통해서 음악팬들의 공감을 얻고자 한다. 대중음악 전문공연장이 왜 필요해? 한국에 공연이 많지 않은 이유는, 공연장 수와 관계 있다. 물론 정부소유의 공공문화시설이나, 체육관, 지방의 문화예술회관, 대학의 문화공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중음악 공연을 제대로 할만한 여건을 갖춘 곳은 극히 빈약하며, 세종문화예술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등 그나마 공연 시설이 갖추어진 공간들은 아예 대중음악에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다. 특히 대중음악전문공연장은 뮤지션에 따라, 공연의 성격에 따라 다른 규모의 공연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이 절실하다. 그러나 한국에는 500석 이하의 소극과 1500석 정도의 중극장 규모의 공연장이 거의 없다. 전문공연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체육 경기장이나 기타의 다른 공연장을 대관할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음향, 무대, 조명

[문화사회] Gate in Soul

[문화사회] Gate in Soul

세계시장의 85%를 독점하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 가진 놈이 더 하다고, 얘네들 눈에 힘주고 찡얼대는 것좀 봐.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146일)가 너무하대. ‘자유경쟁’을 막는 걸림돌이래. 그래서 축소해야만 쓰겠대. 니들 맘대로. 싫다면? 때리겠대(BIT). 100% 완전 독점을 위한 헐리우드식 ‘자유경쟁’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주는 대로 듣고, 보는대로 믿으라고. 너그들은 영화를 ‘돈’으로 보지만, ‘문화’로 보는 절박한 애들도 있어. 때려도, 협박해도, 어쩔 수 없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스크린쿼터 사수해야 하겠어. 최영화 문화사회 편집위원 / sobeit2000@hanmail.net

[문화사회] 스크린쿼터제도는 밥그릇 싸움이자, 집단 이기주의인가?

[문화사회] 스크린쿼터제도는 밥그릇 싸움이자, 집단 이기주의인가?

사진 : 한겨레 한국영화산업이 밥그릇이라면, 한국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주장은 어느 정도는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 맞다. 하지만 멀쩡하게 먹고 있던 밥그릇을 누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뺏어가려고 한다면, 먹고 있던 사람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문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밥그릇 싸움이란 말이 밥그릇을 뺏어가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의 구별 없이 양쪽을 모두 비난하거나, 심지어 적반하장으로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쪽을 집단이기주의라는 이름으로 근거없이 매도하기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밥그릇을 뺏으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을 구별해야 하며, 밥그릇을 지키려는 싸움은 정당방위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그 정당성을 추정해주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뺏으려는 쪽의 정당함과 지키려는 쪽의 부당함을 증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키려는 쪽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모든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전체주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인들의 주장이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이런 질문 방식은 옳지 않다. 멀쩡한 밥그릇을 뺏으려는 쪽이 지키려는 쪽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는 근거를 대어야지, 지키려는 쪽에 집단이기주의가 아닌 근거를 대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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