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마리오 라가와의 , 그리고 원수연의
야오이와의 구분을 위하여. 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 세 단어의 앞 글자면 따서 붙여진 ‘야오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가 있다. 절정도, 결말도,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절정, 결말, 의미도 없는 이야기의 소재는 남성간의 동성애이다. 야오이 만화의 스토리는 항상 고정적이다. 건장하고 체구 좋은 힘 센 남자가 여리고 작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다른 남자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하고, 여린 남자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결국은 쾌감을 느끼게 되며 급기야 상대 남자의 일방적 태도에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어허…어디서 많이 본 레파토리 아닌가? 그렇다. 바로 포르노의 수법이다. 현실에서라면 성폭행 범죄(심지어 아동 성폭행 범죄까지!)에 해당할만한 이야기들이 꽃미남들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다. 야오이 안에는 포르노처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성행위’와 ‘부당한 관계’가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야오이 만화들은 포르노의 효과가 그러하듯이, 일방적 성행위를 통해서 사랑의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허구를 심어주고, 특히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만화 속 인물처럼 성행위를 강제로 시도할 것이라는 편견을 유포시키며, 동성 애인 간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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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4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