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얇은 비옷을 걸치긴 했지만 우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짐 가방이며 옷이 추적추적 젖었다. 하루 이틀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고 하는 거라면야 그깟 비 좀 맞는 게 문제도 아니겠지만 계속 움직여 다녀야 하니 이 비는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몸이 괜찮다, 좋다고야 말하곤 하지만 그런 말이야 크게 아프지 않다는 뜻이지 기운이 없다. 오히려 평소처럼 그대로 기운이 있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말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절 안을 잘 둘러보고 싶었는데, 절 뿐 아니라 절 둘레 마을과 산도 천천히 거닐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못했다. 나중에는 우산을 빌려 쓰고 나가도 머리와 어깨 정도만 겨우 가릴 뿐 바람 섞인 비에 온 몸이 다 젖을 정도였다. 우리는 함양에서 아침 일찍 떠나 실상사로 왔다. 다 젖은 채로 짐을 풀어 놓고 바로 큰 법당으로 옮겨 실상사에 있는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만났다.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오전 공부만 있는데 그 가운데 세 시간 동안 우리 순례단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무서운 그리고 부러운, 비참한 2004년 9월 8일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무서운 그리고 부러운, 비참한 2004년 9월 8일

평화를 만나러 가는 길 단식순례를 시작한 거야 9월 3일이지만 나로서는 울진순례 기간이 어디를 떠난 건 아니었다. 오늘부터야말로 짐을 싸들고 길을 나서게 된다. 울진순례 기간에 쓴 일지들을 추려서 정리하는 일을 하기로 했는데 그걸 다 하고 나니 아침 여덟 시가 되었다.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짐을 꾸렸다. 이주일 동안 입고 다닐 옷가지들, 그 사이에 없으면 아쉬워질 소지품 따위. 짐을 꾸리고 집 정리를 하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가야지 했는데 그럴 새가 없다. 안동에 네 시에 닿으려면 적어도 12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빠뜨린 것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폈다. 죽염, 효소, 껌, 전화기 충전기, 속옷, 겉옷, 양말, 수건……. 순례단이 머물고 있는 한터울 숙소에 가니 벌써 떠날 준비를 다 마쳤다. 출발이다. 평화유랑단의 꽃마차 한 대와 봉고차 한 대가 움직였고 수사님과 나는 버스를 탔다. 봉고차 한 대에 타는 사람도 많고, 저마다 짐이 많아 힘이 들 테니 버스를 타고 움직이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도 따라 나서서 수사님과 함께 버스를 탔다. 울진에서 영덕으로, 그리고 영덕에서 갈아타고 다시 영주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머 한다고 그 지옥을 맹글어 보내놨노?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머 한다고 그 지옥을 맹글어 보내놨노?

“평화를 나누어 드려요!” 울진 장날, 오늘은 단식순례단이 장터 선전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그치지 않는다. 울진 모임 분들 몇 사람과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가 이렇게 오면 장에 사람이 없는데 이래도 할거냐 하는 얘기였다. 사람이 너무 없으니 하지 말자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바퀴라도 돌고 오자 하며 길을 나섰다. 모두 비옷 하나씩을 입었다. 두 사람은 어제 열심히 만들어 놓은 ‘엿판’을 끈으로 매어 목에 걸었다. 포도 상자로 쓰던 스티로폼을 가지고 만든 ‘엿판’이었다. ‘엿판’에는 사탕을 수북히 담았다. 그 옆에는 <평화를 나누어 드립니다> 하는 피켓을 들었고, 그 뒤로 줄줄이 전쟁반대, 파병철회 피켓들을 들고 뒤따랐다. 시장에 들어갔지만 장날 분위기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장날이야 정말 지나길 수가 없을 정도로 골목골목마다 집에서 가꾼 푸성귀를 들고 나와 자리에 편 할머니들이 길에 가득했다. 옴짝달짝할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푸성귀를 내놓고 도라지 껍질을 벗기거나 밤 껍질을 깠다. 그런데 오늘은 장날이 아닌 평소처럼 시장이 한가했다. 하지만 다니다 보니 오히려 이게 더 나았구나 싶기도 했다. 장날처럼 난전이 아니었으니 늘 장사하는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전쟁 안하고 얘기로 하면 안 돼요? 오전에는 수사님과 울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만났다. 수사님은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느라 교실까지 가는 길이 더디고 더뎠다. 수사님은 이라크에 함께 있을 때도 언제나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특히 아이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다. 다만 그 때하고 지금 바뀐 게 있다면 그 때는 렌즈가 두꺼운 필름 사진기였는데 지금은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뿐이다. 그런 수사님이 초등학교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복도마다, 계단마다 아이들이 만들고 그린 것들로 전시해 놓은 게 가득했는데 수사님은 그것들이 너무 예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걸음 움직이는 게 더디다. 2층, 3층 계단으로 올라가면서는 더했다. 쉬는 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계단 쪽 복도 끝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말뚝박기를 하는 아이들, 복도마다 발 딛을 틈 없이 셋씩 넷씩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꼭대기 층 5학년 4반 교실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교실에는 책상을 모두 뒤로 미루고 바닥에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 수가 좀 많다 싶어 보니까 일다 님네 반인 5학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우리들의 하느님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우리들의 하느님

김재복 수사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오전부터 잇달아 성당에 가서 미사 시간에 성당의 신도들과 만났다. 열 시 반 울진 성당, 그리고 바로 이어서 열한 시 반 북면 성가정 성당. 울진에서는 미사 시간을 아예 두 분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대신했고, 북면 성당에서는 미사를 마친 뒤 바로 이어서 하기로 한 거였다. 두 곳 성당 모두 신도가 가장 많은 시간에 수사님과 신부님을 모시고 싶다 하여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울진에서 수사님이 먼저 말씀을 하고 나면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수사님은 북면으로 옮겨가 있고, 북면 성당에서 수사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사이에 신부님도 그쪽으로 옮겨와 수사님 이야기에 뒤이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수사님이 북면 성가정 성당으로 옮겼을 때 그 때부터 함께 했다. 북면 성당 앞은 자주 오갔지만 안으로 들어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참 예뻤다. 아담한 정원에 예쁘게 지은 건물. 들어가는 길에 가톨릭 단체에서 일을 하는 안원영 선생님께 성당은 다 이렇게 예뻐요? 하고 물었더니 웃으시며 예뻐서 그게 문제지요 한다. 그래, 옳다. 너무 예뻐서 문제, 너무 멋있어서 문제, 너무 커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평화의 바람, 철군의 바람!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평화의 바람, 철군의 바람!

문정현 할아버지와 어린이들 맑은 토요일 아침. 오늘은 모두 부구에서 일정이 시작한다. 울진읍에서 자동차로 이십 분쯤 올라가는 곳. 오전 일찍부터 부구 중학교에서 김재복 수사님과 햇살님네 반 학급 아이들과 만남, 그리고 부구 초등학교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어린이들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같은 시간에 하는 거여서 함께 가는 사람들도 두 패로 나누어 가야 했다. 나는 문신부님과 함께 초등학교 교실로.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줄을 잘 맞추어 앉아 있다. 아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귀한 손님이 오니까 떠들지 말고 말씀 잘 들으라 일러 놓았나 보다 싶었다. 신부님은 그 동안 억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일들로 살아왔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뒤 군산의 미군 비행장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서 미선이, 효순이 이야기까지, 그리고 도룡뇽과 지율스님, 천성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새만금 갯벌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것들을 엮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모두 작고 약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고, 결국은 생명과 자연, 평화로 이어지는 얘기였다. 그리고 나서 신부님은 이라크 전쟁을, 우리 나라 군대의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제만 놓고 보면 하나 같이 아주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대를 보낸 나라의 백성이 걷는 길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대를 보낸 나라의 백성이 걷는 길

파병연장동의안 예상 못한 바 아니었지만 국방부가 파병연장 방침을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바로 열릴 정기 국회에서 연장 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다. 지난 해 12월 연장 동의안을 낼 때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들만 늘여 놓았다. “평화애호국가로서 테러행위 근절을 위한 미국의 행동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한-미 동맹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파견된 국군부대의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것임.” 반박의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 테러행위 근절을 위한다니? 결혼 잔치를 하는 자리에 폭탄을 쏟아 붓고, 어린아이까지 조준 사격을 하는 일보다 더 끔찍한 테러라는 게 어디 있나? 한 마을의 물과 전기를 다 끊어 놓고,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죽여대는 짓보다 더한 테러가 도무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테러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거라면 미국의 침략행위에 맞서야 한다.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려면 점령군을 당장 떠나게 해야 한다. 이라크는 평화로운 나라였다. 평화를 깬 것은 침략군이고, 평화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점령군이다. 결국 ‘동의안 제안 이유서’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말이 되는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 안의 미국, 우리 안의 미국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내 안의 미국, 우리 안의 미국

바빴다 바빠졌다. 어제 회의에서 짠 울진 순례 일정을 준비하는 데 해 놓을 일이 많다. 햇살 님이나 일다 님은 고장 안에 있는 학교 선생님들께 연락을 해서 수사님이나 신부님이 아이들과 어느 날, 몇 시에 만날지를 확정지어야 했다. 그리고 성당 쪽에 알아보아 성당을 찾는 군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또한 그게 가능한지, 날짜와 시간들을 알아봐야 했다. 그 밖에 다른 작은 모임들. 일다 님이 함께 하는 엄마들 동화 모임이랄지, 바라 님이 강습하는 어머니들 풍물패랄지, 순례단이 울진에 머무는 동안 그런 크고 작은 모임들과 어떻게 만나게 해주고, 어떻게 평화 이야기를 나누어갈지에 대해 하나 하나 다 짜야 했다. 그런데 적어도 내일부터는 현수막이며 초대장, 포스터 따위 홍보도 나가야 하고, 미리 집회 신고도 내 놓아야 서둘러 알아보고 확정을 지어야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화바람 쪽 분들, 수사님, 민중법정 제안팀과도 준비하고 있는 내용을 수시로 소통하면서 공유해야 했다. 바쁘지만 바빠도 일이 되어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는 마음이 한결 좋다. 몸이 바쁘고, 손이 바빠야지 그게 아니라 무얼 할지 몰라하면서 마음만 바쁠 때는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길을 떠날 준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길을 떠날 준비

마지막 출국이 있던 날 – 서울 (28일) 서울까지 가는 게 무리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더 일찍 나섰어야 하는데 꼭 마쳐주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열 한 시나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바라님과 바하님이 함께 올라갔다. 서울까지는 쉼 없이 쌩쌩 달려야 다섯 시간. 넉넉히 쉬면서 가면 그보다 한 두 시간은 더 걸리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일을 하겠다고 뒷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죽변을 지나고 부구를 지나 원덕, 삼척을 지나는 길. 멀미가 심하게 왔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곤 했는데 제대로 혼이 나는 것 같았다. 스무 날이 넘게 아무 것도 먹지를 않고 있으니 속이 온전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겠지. 컴퓨터를 덮고 옆으로 엎드리듯 쓰러져 뱃속이 편안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도 모른 사이 잠이 들었다. 여주를 지날 때가 네 시 반쯤 되었나? 동서울 톨게이트를 나갈 때는 다섯 시 이십 분쯤 되었다. 종묘 집회에 가 있는 바끼통 회원이 전화로 일러주길 집회가 썰렁하단다. 학생들이 좀 있고, 기껏해야 300명 정도 된다 한다. 300명이라고? 이 나라에서 침략군대를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전범 민중재판운동 인권단체 모임에서 ‘전범 민중재판’을 위한 간담회가 있다는 얘기를 얼마 전 들었는데 그게 어제 있었던 모양이다. 가까운 곳에서 하는 거면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게 오늘 인권하루소식을 보니 어제 있은 간담회를 요약해 소개해주고 있다. 이 민중전범 재판 운동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나라밖에서는 벨기에와 영국, 일본, 독일에서 벌써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엊그제 본 신문에는 미국에서도 공화당의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부시에 대한 시민법정을 열 것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 나라의 민중재판은 미국의 점령 뿐 아니라 한국의 파병이 전쟁범죄라는 것을 뚜렷이 밝혀 내고, 그것을 통해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해 마땅히 다루어야 함에도 입을 다물기만 하는 국제기구들을 압박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지금도 엄연히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지만 이 엄청난 범죄 앞에서 어떤 구실도 하려들지 않는다. 헌법을 어긴 대통령, 국제법을 어긴 나라의 책임자들을 그 누구도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이들을 심판해야 하는 권리이자 의무는 당연히 우리 민중에게 있다. 참고로 유엔에서 오랫동안 일한 인권변호사 디아즈 씨는 지난 7월 말 한국에서 한 강연에서“한국군 이라크파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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