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스물 넷의 목숨, 사만 명의 목숨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스물 넷의 목숨, 사만 명의 목숨

스물 넷의 목숨, 사만 명의 목숨 오늘 하루만 해도 스물 넷이 죽었다고 한다. 팔루자 최소 넷, 아마라 최소 열 둘, 나자프 최소 여덟. 이렇게 수를 헤아리면서 점점 나도 목숨이 죽어 가는 것을 숫자로 읽고, 숫자로 기억하려 한다. 오늘 하루 죽은 스물 네 명의 사람들 또한 모두 사랑하는 식구가 있겠지, 그이가 만약 아버지라면 굵은 수염을 부비며 사랑했을 아기가 있겠지, 그이가 만약 사춘기를 지나가는 소년이라면 풋사랑에 빠져드는 여자친구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내일이 돌아오면 고백을 해야지 하며 마음으로 수줍은 용기를 키우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이가 만약 가축을 치는 농사꾼이었다면 새끼를 밴 양을 보면서, 달걀을 품는 닭을 보면서 앞날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어미 양을 들여다보면서, 닭 모이를 주러 나가면서……. 그런 사람들, 우리와 똑같이 꿈이 있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또 스물 넷이 죽었다. 당장 끝내야만 하는 이 전쟁, 하루라도 앞당겨 끝내면 그와 같은 목숨을 최소한 스물은 더 살릴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최소 하루에 스물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미친개, 제국의 전투기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미친개, 제국의 전투기

장터 토요일은 낮부터 군청 앞에 나가 농성을 한다. 그래도 ‘군청’이 있는 읍내이지만 토요일 오후면 길에는 벌써 사람들이 없다. 평일에 일곱 시까지만 하고 들어오는 까닭도 그렇다. 일곱 시, 평해로 들어가는 막차를 보내고 나면 읍내는 잠든 듯 조용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까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책방에 맡겨두고 다니는 시위 물품 – 피켓들이며 책상, 파병철회 우산, 모금함, 자리, 문구류 따위 – 을 챙겨 군청 앞으로 나갔다. 아직 다른 분들이 나오지 않아 도토리 님과 둘이 그것들을 옮겨 농성장 모양을 갖추는데, 버스 정거장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꽤 오랜만인 것 같다. 학교들이 하나 둘 개학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떼가 되어 있고, 긴 걸상에는 오늘따라 보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할머니들도 참 많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종이학 피켓부터 상황판, 그림판, 구호를 적은 판 들을 군청 담장에 주욱 세워놓았다. 어느덧 피켓은 아주 많이 늘어나 군청 담장 한 쪽을 다 두를 수도 있을 정도다. 방학이어서 나와보지 못하던 학생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이제는 싸움의 무기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이제는 싸움의 무기다.

회의 울진에서 평화모임을 같이 해 가고 있는 일다 님이 답답한 마음으로 얘기했다. 곁에서 지켜보는데 무얼 어떻게 함께 해야 할지, 해도 좋은지 몰라 답답하다는 말씀이었다. 하루하루 날짜는 더해가지, 굶고 지낸 게 열흘을 넘기고 있으니 마음은 마음대로 쓰이는데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게 없기 때문이다. 울진의 릴레이 단식은 선발대 파병이 있던 8월 3일부터 시작했다. 김선일 씨의 죽음이 있던 6월 중순부터 7월말까지 군청 앞에서 하루도 쉼 없이 피켓 시위를 잇다가 8월로 넘어가면서는 전국에서 함께 하는 10만 릴레이 단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일꾼 몇 사람이 잠정으로 얘기한 건 첫 주는 쉬며 호흡을 가다듬어 둘째 주부터 시작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예고 없이 이루어진 파병이 있고 나니 둘째 주로 미룰 수 없던 마음들부터 밥을 굶고서 다시 군청 앞에 나와 섰다. 그렇게 시작된 군민들의 단식 릴레이. 단식 릴레이는 먼저 시작하고, 굶는 사람들의 군청 앞 시위는 이미 이어지고, 며칠이 지나서야 군청 앞 주자창 바닥에 둘러앉아 회의라는 것을 했다. 두 달이 가깝도록 군청 앞 시위를 잇고, 소박하나마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지율, 김재복, 목숨을 건 싸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지율, 김재복, 목숨을 건 싸움

청와대 가는 길 정말 가도 되는 건지, 괜찮은 건지 겁이 났다. 가봐야 굳이 드릴 말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가서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몸 힘들 때면 사람 하나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다른 무엇보다 사람에게 치이는 일이야말로 정말 기운을 잃게 하는 일일 텐데 말이다. 주말에 서울 올라와 하루 더, 하루 더 있으면서 오늘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하나 아쉬웠던 게 김재복 수사님을 한 번 못 보고 가겠다 하는 거였다. 수사님은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가 파병철회를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하던 지난 7월 26일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여드레가 지나 자이툰 선발대는 달아나듯 몰래 떠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국민행동 지도부의 단식농성은 그것으로 마쳤다. 여기에 수사님은 오히려 이런 때야말로 더욱 중요한 시기인데 그대로 단식을 접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명동성당에 폈던 농성장을 청와대로 옮겼다. 그렇게 길가에 나와 굶기 시작한 게 오늘(8월 18일)로 스물 나흘 째. 수사님의 싸움은 외로울 것 같았다. 얼굴이라도 한 번 뵙고 가야지, 이렇게 응원하고 있다고, 함께 하고 있다고 힘을 드리고 가야지 하면서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이 나라는 침략자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죽일 것이고, 그 땅 사람들을 죽여 빼앗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 전쟁이 시작하기 전부터 반대했고, 우리나라의 군대를 보내는 것에 반대를 해 왔다 할지라도 어쨌든 나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다. 내가 먹게 될 음식, 내가 집에서 켜는 전깃불, 내가 물을 데울 때 쓰는 가스, 먼 길을 갈 때 타는 버스……. 그 모든 것들에는 이미 침략과 전쟁으로 죽어간 이라크인들의 목숨이 스며 있다. 내가 세금을 내거나 내가 낼 기름 값, 가스 값, 버스 값, 음식 값 따위들은 그 값은 모두 이 전쟁과 관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값이 올랐다면 그건 이라크로 보낸 군대의 총과 탱크를 마련하느라 더 높은 세금이나 물건 값을 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 전보다 값을 덜 내게 된다 해도 내가 이 침략과 약탈의 공범자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만약 세금이나 물건 값이 내려간다면 그건 수많은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전범은 노무현 정권이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전범은 노무현 정권이다

다시 광화문 2시부터 예정했던 광화문 집회에 조금 늦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본집회가 거의 끝나고 행진을 준비하던 때였다. 사회자는 되풀이해서 미대사관으로 가자는 말을 외쳤다. 무대 뒤편 경찰 버스로 쳐 놓은 바리케이트 앞에는 선봉대를 비롯한 시위대들이 달라붙어 몸으로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교보문고 쪽으로 길이 뚫리면서 한 떼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세종로 쪽으로 치고 나갔다. 뚫렸던 길이 다시 막혔고, 시위대는 바리케이트가 된 경찰 버스들을 손으로 밀었다. 버스 위에 올라선 경찰 쪽에서는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바로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에서 사람들의 몸과 얼굴로 직접 물대포를 쏘았다. 그리고 분말소화기. 잠깐 소동이 있는 듯 하더니 방패를 찍고 휘두르며 달려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시간 한 시간 남짓. 시위대는 맨몸으로 경찰과 경찰차를 밀었고, 경찰 측에서는 계속 물대포를 쏘며 대응했다. 그대로라면 어느 한 쪽에서 더한 물리력을 쓰지 않는다면 그러한 형세가 바뀌지 않을 듯 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몸을 다쳐 몸을 다치는 이들도 나왔다. 그러다보면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이들 가운데 몇몇이 돌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11월로 미룰 수 없는 싸움이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11월로 미룰 수 없는 싸움이다

동화의 편지 동화에게 메일이 왔다. 동화는 내가 모르던 또 많은 소식들을 전해왔다. 바그다드의 최대 빈민지역으로 200만 명이 넘게 사는 사드르 시티는 전기와 물의 공급이 모두 끊겼다 한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도 모두 막았다고 한다. 동화는 지금 사드르 시티의 상황을 4월의 팔루자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에서 ‘시티’의 개념은 우리나라의 서울이나 부산, 광주 같은 대도시로 치면 ‘구’에 해당하는 개념. 그러니 지금 사드르 시티에 전기와 물이 모두 끊겼다고 하는 건 서울의 동대문구나 관악구, 양천구나 송파구 같은 지역 한 곳에 물과 전기를 끊었다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가 알기로 바그다드에는 모두 5백만 정도가 산다고 알고 있으니 그렇다면 사드르 시티는 (흔히 빈민지역이 그렇듯) 인구밀도가 몹시 높은 곳일 것이다. 지금 사드르 시티가 봉쇄되어 있다는 것은 서울로 빗대어 본다면 못잡아도 ‘성북, 강북, 노원, 중랑, 동대문구’를 더한 만큼의 지역이 꽁꽁 막혀 있다는 것이다. 전기와 물이 끊기고 바깥으로 통하는 길이 모두 막혔다. 50도를 넘나드는 불볕에도 선풍기 하나 돌릴 수 없고, 해가 지면 암흑이다. 그리고 언제라도 가능한 죽음에 대한 공포. 동화는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아테네의 환호와 나자프의 절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아테네의 환호와 나자프의 절규

아테네와 나자프 우연히 어느 가게에 놓인 스포츠 신문을 보다가 오늘 밤 아테네 올림픽을 개막한다는 걸 알았다. 요사이에는 텔레비전은 물론 종이 신문을 통 볼 수가 없었으니 그 쪽에는 아주 깜깜했다. 면면마다 지면 가득 올림픽에 대한 특집기사들이 있다. 올림픽, 월드컵, 나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면 좋아하는 종목을 빼놓지 않고 보던 편이었다. 더구나 결승이나 메달을 앞둔 마지막 경기에서 드라마틱하게 역전과 재역전을 되풀이하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숨이 막히도록 흥분이 되고 손에 땀을 쥐었다. 운동 경기, 그 자체로 무엇이 그리 나쁘겠나? 돈에, 권력에, 패거리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세상의 승부들에만 질려하다가 그나마 정직한 승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이 지켜지는 게 운동 경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운동 경기에 더욱 매료되는 것 같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이 내걸고 있는 표어 가운데 하나가 ‘전 세계인이 함께 하는 평화의 제전’ 어쩌고 하는 말을 어려서부터 질리도록 들어온 것 같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그 말이 그럴듯해 보였다. 개막식을 보면 그 많은 나라의 선수단이 저마다 적게는 수십에서 수백 명씩 줄을 지어 경기장에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파병반대 투쟁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파병반대 투쟁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

1. 불안한 평화 시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적어도 이 여름 한적한 자연에서 며칠 휴가라도 보내고 왔다면 알 거다. 풀, 나무, 벌레, 새, 들판, 냇물, 하늘이 얼마나 평화로운가를 말이다. 이 안에서는 들일을 하는 ‘인간’조차도 하나 흉악해 보이지 않는다. 개발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고 빼앗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개발 동물’, ‘경제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는 종조차도 말이다. 물론 자연 안에 먹고 먹히는 사슬의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 균형과 조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온갖 목숨들이 제 빛깔을 내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도 그렇다. 여기는 울진에서도 깊은 산중으로 들어온 곳, 그래서 인터넷은 물론 신문이나 텔레비전 유선방송도 되지 않는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아랫논에, 건넛밭에 들어가 일을 하고 계시는 걸 보곤 한다. 허리를 굽혀 고추를 따는 할머니도 수레를 끌고 탈탈 먼길을 걷는 할머니도 누구 하나 그분을 감싸고 있는 들이나 하늘, 풀, 나무, 벌레, 새 따위와 다른 어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그대로 하나가 되어 있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그곳은 광화문과 명동, 종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그곳은 광화문과 명동, 종로

아침 하루가 다르게 아침 공기가 차갑다. 마침 이 무렵에 단식을 해서 그런지 요사이에는 눈을 뜨는 시간이 일러졌다. 평소 내 생활습관대로라면 서너 시간을 일찍 시작하고 있는 거다. 이상할 만큼 몸은 가볍다, 마음도 상쾌하다. 내가 사는 죽변 시골집은 문 앞이 바로 산이다. 그렇다고 갑갑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훤히 트여 있는 낮은 산. 내가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집 또한 이 편 나지막한 비탈에 있는지라 문 앞에 나가 내다보면 그 풍경이 날마다 새롭다. 꼭 문 앞에 나가지 않아도 창으로 바로 산이 건너다 보인다. 산을 아는 사람들이야 다 아는 말일 텐데, 산은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산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표정을 바꾸면서 온갖 얼굴을 한다. 그러다 보면 산은 나를 어디론가 이끈다. 나도 모르게 산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산이 내가 되고, 내가 또다른 내가 되어. 그곳은 광화문과 명동, 종로 아직도 아이들은 팔레스타인 호텔과 쉐라톤 호텔 둘레에서 외국인들을 따라다니고 있을까? 외신 기자들이 주로 모여 있던 그곳, 일급 호텔 들 둘레라면

기사 2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