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은 의사들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내리는 판정 제도의 문제점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의사라는 정체성을 우선으로 가진 판정위원들은 희귀병이라 연관성을 입증할 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이 없다’고 답한다는 점을. 담당 의사의 “전혀 관계 없으세요”라는 말, 판정서의 “크롬친화세포종의 원인 물질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직업적 요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가지의 문제가 어떻게 관계가 없다는 확신으로 이어져 사회 보장에 대한 거부의 근거로 작용하는가?
성원이 작업환경의 위험요소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고 문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몸이 실제로 아프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원은 일한 지 20년이 넘은 시점인 2020년 3월 부신암 4기를 진단받았다.
유선은 아픈 와중에도 계속 일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아프다고 집에서 쉬기만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다만 선택의 폭은 좁았다. 경력 단절 후 재취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더군다나 아파서 뛰쳐나오게 된 반도체 회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병가와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곳이었다면 유선이 병원 진료 때문에 정직원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아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적 퇴사는 회사로부터의 해고와 모호한 경계에 있다.
반도체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는 해당 법안이 “재벌특혜, 반노동, 반환경 악법”이라며 줄곧 우려를 제기해왔으나 여야는 이를 무시한 채 “산업계 민원 해결”을 위해 손을 잡고 특별법 강행 처리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 한국은 ‘첨단산업이 미래를 연다’는 믿음 아래, 반도체와 AI를 거의 성역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 되는지에 대한 성찰은 사라졌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산업정책, 노동정책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기술·자본·국가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되어 있다.
반도체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 요구가 진짜 사장 삼성전자의 패권 행사에 의해 위협받고 있지만 재벌특혜와 퍼주기에 다름 아닌 반도체특별법은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더욱이 반도체특별법 안에 ‘반도체 특구 입주 기업체의 사용주와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반도체 산업의 확장에 대해 국가는 “미래”를 말하지만,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건강을 앗아가는 정책은 미래가 아니다. 기업의 이윤 뒤에 숨은 위험을 청소년에게,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반도체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당장 반도체산업을 멈추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을 테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적인 반도체 산업을 무한정 확장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특별법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도 없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며 물·전력·토지라는 기본 자원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현실 앞에서, 산업의 확장만을 추진하는 것 또한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제한도 없이 필수 공공재들을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무한정 빨아들이도록 허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재벌 특혜이자 기후 부정의이다. 이런 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인근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삶까지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앞당기게 될 것임이 너무도 분명하다.
반도체특별법이 이달 중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동시민사회는 해당 법안이 “반노동, 반기후, 재벌특혜” 법안이라며 정치권에 “특별법 강행처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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