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후 내 삶은 달라질 수 있을까? 8년 전 박근혜 탄핵 이후 단죄되지 못한 역사는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했다. ‘일터의 민주주의’도 회사 정문 앞에서 멈춰 서있고, 특히 1,100만 비정규 노동자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이젠 8년 전과 달라야 한다.
윤석열퇴진 대구시국대회가 16회차를 맞는다. 이 광장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던 다양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유발언으로 저마다 윤석열 파면 이후 세상을 그려가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며, 뭉뚱그리지 않고 이해하려는 에너지가 있다. 여기에 우리가 이뤄가야 할 민주주의의 단초가 담겼다.
지난 18일, 계엄 이후 17번째 대회가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낭독으로 시작됐다. 처음 선보인 《평등으로》 신문은 ‘누가 만들고,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은 신문 꼭지를 잡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흔들어 댔다.
무지개‘깃발’에서 광장 무지개존의 ‘기반’이 된 ‘개빡친 퀴어’는 코로나19 이후 성소수자 지역 커뮤니티와 대학 동아리들이 거의 소멸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지역 퀴어들이 광장을 통해 다시 연결되고 있고, 이 연결로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동덕여대를 졸업했다고 밝힌 발언자는 반민주적인 대학본부에 맞서 72일간의 학내 민주화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상황을 알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평등과 혐오, 차별로 인해 생기는 불안을 이기는 것은 연대임을 투쟁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드디어 윤석열이 구속되었다.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짓밟은 자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 과정은 당연하지 못했다. 그는 시종일관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체포에 저항했다. 문제는 윤석열의 이러한 ‘저항’과 함께 극우정치가 대중적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행위를 용납해 선 안된다. 저항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권력자들의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것이지, 부패하고 오만한 권력자를 살리겠다고 벌이는 난동에 붙일 이름이 아니다. 박탈당한 삶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장애인과 노동자들이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을 ‘폭력’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한국전쟁 이후 정권은 약자들이 행동에 나설 때마다 “발본색원 일소척결” 운운하며 국민을 겁박했다. 가장 중한 죄인 내란죄조차 “엄단처리”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지배자들에게만 ‘용서’를 반복해 온 결과 내란도 사회적 참사도 반복되고 있다. 전두환 사면의 대가를 후세대가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가운데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오후 12시 30분부터 국회 앞 여의도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윤석열 탄핵! 즉각 체포”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 집회를 마친 집회 대오는 오후 3시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릴 범국민촛불대행진에 함께할 예정이다.
윤석열은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단지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알코올중독으로 합리적 판단이 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에 그치는 지도자가 아니다. 윤석열은 독재적 수단에 쉽게 이끌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를 거부할 민주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엄을 활용해 총선에 불복할 수 있다는 구상이 가능한 것이며, 절차를 전혀 존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행태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를 우리는 독재자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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