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인권오름] [인권으로 읽는 세상] 탄저균 사건, 안보보다 인권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때

[인권오름] [인권으로 읽는 세상] 탄저균 사건, 안보보다 인권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때

주한미군기지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되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반미연대집회 10주년을 맞는 우리의 결의

[평화누리통일누리] 반미연대집회 10주년을 맞는 우리의 결의

1999년 10월 21일, 노근리 양민학살 및 조중필 피살사건 진상규명과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을 요구하면서 처음 시작한 미대사관 반미연대집회가 만 10년을 맞았다. 반미연대집회는 이 땅의 모든 반미 사안이 다뤄지고 확산되는 반미투쟁의 산실이었다. 한미SOFA 개정운동, 조중필피살사건 등 미군범죄관련투쟁, 매향리폭격장 폐쇄투쟁, MD 저지투쟁, F-15K 도입반대투쟁, 여중생압사사건투쟁, 덕수궁터미대사관건립반대운동, 주한미군 전략적유연성 반대투쟁, 한미상호방위조약 개폐투쟁, 굴욕적 용산미군기지이전협상 저지투쟁 및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투쟁, 무건리훈련장확장 저지투쟁, 한미연합전쟁연습 반대투쟁 등 수많은 사안들이 반미연대집회를 통해 제기되고 확산되었다. 이 사안들은 하나같이 냉전과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형성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며 주민의 생존권을 파괴하고 우리 국민의 고혈을 짜내는 문제들이다. 반미연대집회는 매향리미군폭격장 폐쇄투쟁 승리와 한미SOFA 일부 개정, MD 저지에 기여하고, 두 여중생의 부모님이 반미연대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하여 여론을 불러일으켰으며, 대추리 현장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등으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반미연대집회를 통해 한미동맹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대중의 반미자주의식 성장에도 기여한 것은 큰 성과라 할 것이다. 반미연대집회의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정권의 모진 물리적·법적 탄압과 이에 대한 처절하고도 끈질긴 저항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외교공관 100m 이내 지역 집회 금지라는 위헌적인 근거를 들어 경찰은 집회 참가자에 대한 고착과 폭행, 오지 격리조치, 연행과 구금을 일삼았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결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멀리 내던져지면 늦은 시간에 다시 돌아와서 집회를 기어코 마무리했고, 연행과 구금에는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동여매거나 비바람이 치는 가운데 밤샘 농성을 벌이는 등으로 격렬히 저항했다. 3년여에 걸친 강고한 저항과 법적 투쟁 끝에 우리는 마침내 집회의 합법성을 쟁취해 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광화문 KT 앞으로 옮겨 진행하고 있는 집회를 다시 가로 막았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의 법적투쟁으로 무력화시킴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정권은 한사코 막으려 하고, 집회 참가자들은 기어이 성사시켜왔던 반미연대집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을 영구화하느냐 아니면 민족 자주를 이루느냐하는 투쟁이 미대사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집회 개최 여부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곳은 반미자주투쟁의 최전선의 하나였으며, 그래서 반미투쟁의 성지라고 불렸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반미연대집회를 지키고, 이를 통해 대중의 반미자주의식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역사와 민족이 우리에게 근본적이고 절실한 문제를 당면 과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이루고 자주적 통일을 성취하는 일이다. 지금 정세는 지체와 곡절을 겪으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평화군축과 통일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북미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핵 포기와 미군철수, 한미동맹 폐기, 미국의 핵우산 제거 등이 논의될 것이다. 60여 년간 지속되면서 남북을 통틀어 주권 침해를 비롯하여 온 사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강요했던 분단과 정전체제를 마감할 수 있는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반미연대집회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정세 속에서 지난 10년의 성과를 계승하여 새로운 10년의 역사를 써 나갈 것이다. 늦어도 새로운 10년 안에 우리는 북미양국이 북핵 포기와 미국의 핵우산 철회를 교환하여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고,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정전체제를 빌미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내보내고 군축을 실현하여 공고한 평화체제를 이루며,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여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마침내 조국통일의 탄탄대로를 여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근본적 과제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군사주권을 빼앗기고 있는 작전통제권문제, 대북 선제공격적인 작전계획과 전쟁연습문제, 미군기지와 훈련장 확장문제, 미제무기도입과 미군주둔비용 부담문제, 미군범죄와 환경문제, 경제적 종속을 더욱 고착화하는 한미FTA문제 등에 대해서도 힘과 지혜를 모아 투쟁해 나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부진 각오와 새로운 모습으로 반미연대집회를 더 크고 대중적인 집회로 만듦으로써 우리 사회에는 더욱 큰 영향력을 끼치고 우리에게 부당한 지배와 간섭을 일삼고 있는 미국에는 더욱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회로 만들어 나아갈 것이다. - 우리의 결의 - - 우리는 늦어도 향후 10년 안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한반도 비핵화, 조국통일을 모두 이뤄낼 것을 결의한다! -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며 주민 피해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모든 미군과 미국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 투쟁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 우리는 반미연대집회를 더욱 대중적인 집회로 키워 우리나라를 자국 패권의 도구로 삼는 미국을 강력히 압박하는 집회로 만들어 나아갈 것을 결의한다! 2009. 10. 13.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10주년 기념 121차 집회 참가자 일동

[평화누리통일누리] 대중적 반미투쟁의 산실, 반미연대집회 10년의 기록

[평화누리통일누리] 대중적 반미투쟁의 산실, 반미연대집회 10년의 기록

노근리 양민학살 진상규명과 피해배상, 조중필 피살사건 진상규명, 불평등한 한미SOFA 전면개정 등을 요구하면서 처음 시작한 미대사관 반미연대집회가 만 10년을 맞았다. 반미연대집회는 이 땅의 모든 반미 사안이 다뤄지고 확산되는 반미투쟁의 산실이었다. 반미연대집회는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 투쟁 승리와 한미 SOFA 부분 개정, MD저지에 기여하고, 조중필 피살사건과 여중생압사사건을 널리 알려내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힘을 보태는 등 많은 성과를 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성과는 국민들의 반미자주의식 성장에 기여한 것이라 하겠다. 반미연대집회는 정권의 물리적·법적 탄압으로 폭행과 연행, 구금, 밤샘농성 등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이제 반미연대집회 참가자들은 지난 10년의 성과를 기념하고 계승하여 새로운 10년의 역사를 써 나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10년 안에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한반도 비핵화, 조국 통일을 모두 이루기 위한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반미연대집회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던 사안을 정리해 보았다. 불평등한 한미소파(SOFA) 전면개정운동 한미SOFA 1차 개정(1991년) 직후 윤금이 씨 피살사건(1992년)이 일어나 개정 요구가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회피로 개정협상은 지체되었다. 2000년 이태원 한국인 여종업원 피살사건 등을 계기로 다시 국민적인 SOFA 개정 요구가 분출하였다. 당시 반미연대집회는 147개 단체가 참여한 ‘SOFA개정 국민행동’이 주최했는데 이 집회를 계기로 ‘범국민 행동의 날’을 여는 등으로 한미SOFA 개정에 앞장섰다. 김판태 SOFA개정국민행동 사무처장(군산평통사 사무국장)은 SOFA 개정안에 대한 심의가 이뤄지는 국회 상임위 회의실에서 할복을 하기도 했다. 결국, 2001년 12개 중대범죄에 대해 기소와 동시에 미군 범죄자의 신병을 인도받도록 한 것을 비롯하여 노무, 공동검역, 공여지 합동 실사, 민사소송 절차 등 일부 전향적인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기소 후 심문 금지, 공여지 침해 방지 등 일부 개악 규정마저 신설되는 등 그 불평등성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투쟁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군 폭격장은 아시아 유일의 국제 폭격장으로, 전쟁 중인 1952년에 주한미군이 주민들의 땅과 어장을 빼앗아 만들었다. 그 후 반세기동안 주민들은 끊임없이 소음피해의 고통을 받아왔고 심지어 오폭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동안 주민들의 격렬한 투쟁이 있었지만 고립된 투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0년 5월 8일, A-10기 폭탄 투하 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가 대책위를 결성하여 사격이 진행되는 농섬에 최종수 신부가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등 주민들과 함께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반미연대집회에서도 전만규 위원장 등 주민들이 참여하여 폭격장 폐쇄를 요구하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면담했다. 투쟁 과정에서 전만규 주민대책위원장, 김종일 매향리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평통사 사무처장) 등이 구속되기도 했다. 그 결과 2000년 8월 육상사격장이 폐쇄됐고, 2005년 8월 해상사격장까지 완전 폐쇄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불발탄과 녹슨 폭탄들이 아직까지 농섬 곳곳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국방부는 예산 부족 등을 핑계로 농섬을 방치하고 있다. F-15K 도입 반대투쟁 2000년대 들어 국방부가 ‘차세대전투기도입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이 미국의 압력에 따라 가격이 비싼 반면 성능도 떨어지고 기술이전도 인색한 보잉사의 F-15K를 선정하도록 당시 시험평가단장인 조주형 공군대령(평통사 지도위원) 등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 이에 평통사는 국방부 앞 농성과 국방부 진입투쟁, ‘신문고 두드리기’ 등의 완강한 반대투쟁으로 국민적 비난 여론을 불러 일으켜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진입투쟁을 주도한 이형수 국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반미연대집회에서도 F-15K 도입의 부당성과 양심선언으로 구속된 조 대령의 재판 소식 등을 다뤄 반대 여론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미사일방어(MD)체제 도입 반대투쟁 2000년 부시 정부 들어서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MD 참여 요구가 노골화되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MD저지공대위를 구성하여 미국의 MD 참여 강요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최병수 화백이 반미연대집회 장소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 세워져 있는 기둥을 이용하여 MD 반대 상징물을 설치하는 등 집회를 통하여 MD의 위험성을 알려냈다. 여중생압살사건 진상규명투쟁 2002년 6월 13일, 두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이 미군 궤도차량에 처참하게 깔려 죽었다. 온 나라가 2002년 월드컵 열기에 빠져있었지만 반미연대집회는 이 사건 직후부터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다뤄 가장 대중적인 반미투쟁이 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반미면 어떠냐’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범국민적 반미투쟁의 열기에 힘입은 바 크다. 두 여중생의 부모님은 여러 차례 반미연대집회에 참여하여 발언했으며, 집회 후 사회단체 대표들과 함께 주한미국대사를 면담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해마다 두 여중생이 죽은 6월 반미연대집회 때는 추모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위한 물리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즉, 대북 선제공격과 중국 포위, 전 세계 전력 투사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주민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우리 국민은 기지이전비용을 대부분 부담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는 더욱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 초기에는 주민들이 미대사관 앞 열린시민마당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했고, 후기에는 집회 장소를 여러 차례 평택 대추리 현지로 옮겨 주민들과 연대하는 등 투쟁이 전개되는 내내 이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뤄 투쟁에 힘을 보탰다. 무건리한미공용훈련장 확장저지투쟁 한미 군당국이 무기체계 발달로 인한 사정거리 확대 등을 이유로 무건리 한미공용훈련장 확장을 강행하고 있다. 훈련장이 확장되면 평택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쫓겨나 생존권을 잃고 휴전선에 인접한 접경지역의 특성상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주민들이 거의 매번 집회에 참가하고 있고, 여러 차례 발언을 통해 훈련장 확장의 문제점을 알리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들의 투쟁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으며 연대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반미연대집회 10년 개근, 변연식 공동대표를 만나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반미연대집회 10년 개근, 변연식 공동대표를 만나다

처음 시작... 문정현 신부님이 군산미군기지 민항공기 활주로 사용료 문제 등으로 소파(SOFA)개정운동을 시작하면서 ‘미 대사관 앞에서 집회 한번 해 보자’고 각 단체에 제안할 때였어요. 1999년 10월에 오두희 선생, 박순희 대표, 천주교 성심회 수녀님들과 자통협(평통사)과 미대사관 뒤편에서 집회를 했죠. 당시에는 시내에서, 더구나 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한다는 게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라, 경찰들의 탄압이 엄청 났죠. 집회를 시작하자마다 모두 연행됐지요. 한번은 무척이나 추운 겨울이었는데, 길바닥이 얼음으로 덮혀 있었어요. 집회를 하려다가 모두 연행되어서 신설동 사거리에 내버려졌는데, 얼음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문정현 신부님은 안경도 깨지고요. 정신을 추스리고 또 대사관 앞으로 와서 정리집회를 한다고 했지요. 그러다가 또 광화문 사거리까지 끌려서 밀려나고요. 집회 시작전부터 광화문 열린공원 입구를 경찰들이 가로막고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조금 늦게 온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미리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경찰들에게 빙 둘러싸여 고착을 당하고요. 그러던 중 2002년 봄에는 사람들이 모두 연행이 되었고, 문정현 신부님과 늦게 온 몇 몇만 남았어요. 신부님이 “잡혀간 사람들이 풀려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하시고, 결국 밤을 새워 새벽을 지나 다음날 오후까지 있었지요. 미대사관 근처라고 집회를 못하게 하니, (집회보다 더 강력한) 밤샘 농성을 해버린 것이죠. 그 뒤로도 몇 달을 더 고생했어요. 사람들이 잡혀가면 밤새워서 기다리고, 쇠사슬로 서로를 엮어서 연행에 저항하기도 했지요. 이런 저런 고생 끝에 집회 장소를 합법화할 수 있었어요. 투쟁하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일이지요. 반미연대집회 10년, 돌아보니 내가 바뀌었구나 문정현 신부님이 <불평등한소파개정운동본부>를 꾸리고 활동을 하시다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되었어요. 그때 처음 자통협-평통사와 인연을 맺은 것이죠. 사실 그때가 개인적으로는 큰 수술을 받아서 집에서 누워있을 때였어요. 무기력하게 정체된 느낌으로 누워서, 오한이 오면 진통제로 버티고 있는데 이미 내 나이 중년을 넘고 있었죠. 이제 뭔가를 해야한다면, 평화를 위한 일, 분단 극복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 때가 맞아 떨어진 거죠. 집회 경험이 많지 않아서 반미연대집회 하면서 ‘원봉(원천봉쇄)’이라는 말도 처음으로 들어봤어요. 그러니, 경찰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어벙하게 집회 참가 하러 갔다가 경찰들로 꽉 둘러싸이니까 어디 숨을 데도 없고, 너무 무서워서 천주교 후배들에게 ‘나 좀 사람들 가운데에 넣어줘’ 그랬다니까..(웃음) 반미연대집회 10년이 지났다고 하는데, 가장 변화된 점이 무엇이냐면 글쎄 난 잘 실감이 안나요. (잠시 생각) 그러고보니 나 자신이 제일 많이 변했네요. 10년동안.... 반미투쟁의 산실.. 제일 감동적이었던 것은 2002년 효순 미선이 투쟁때 시청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소파개정”을 외쳤을 때였어요. 그해 여름 우리 엄청 싸웠잖아. 초겨울에 미군들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동두천 미군부대 앞에서 경찰에 깔리면서 싸웠구요. 그날 우리 장도정 동지가 분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게 인상적이었죠. TV에도 나오고요. 그렇게 싸워서 온 국민이 촛불을 드는 것을 보니 3년간 광화문 공원에서 싸워온 게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거야. 그때 ‘한 3년 열심히 싸우니까 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화문 공원에서 소파개정을 요구하며 신부님들이 천막농성을 하는데, 대통령 후보들이 찾아오곤 했죠. 미국 관련 모든 사안들이 적어도 한번씩은 반미연대집회를 거쳐 갔어요. 집회가 하나의 통로가 된거야. 매향리 투쟁 같은 경우도 천주교 평화지기들하고 최종수 신부님, 김용한 선생, 자통협 사람들하고 집회에서 다달이 보면서 정붙이던 사람들이 매향리 현장에서도 엄청 큰 시너지를 발휘해서 투쟁했어요. 서로베르토 신부님도 그렇고.. 농로를 따라 경찰들과 싸워가면서 옷도 다 찢어지고 그러면서 매향리도 들어갔던거, 기총 사격 연습 현장을 목격하고, 농섬이 내려보이는 언덕까지 올라가니 해가 지더라구... 그때 거기서 자장면 시켜먹던 거, 주민들이 밥을 솥단지째 해 갖고 오던 게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제가 마티즈 차를 1999년 1월에 샀는데, 그것도 인연이었나 봐요. 사건 현장이 매향리, 평택, 동두천, 용산, 의정부 등 집에서 한두시간 거리니까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장으로 찾아가자’ 생각하고 막 찾아 다닌 거죠. 미대사관 반미연대집회는 정보를 얻고 공부하는 자리이고, 박순희 대표(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가 표현대로 황금마차(마티즈) 타고 현장을 돌아다녔어요. 누가 얘기하던데, 제 차에 캠코더를 달아놨으면, 그대로 10년동안 투쟁의 역사를 기록했겠다고요. 매향리에선 앞뒤유리도 왕창 깨졌고, 용산에서 맥팔랜드 수사하라고 농성할 때는 이틀 연속으로 견인되기도 하고, 외교통상부 앞에서 차량 채로 경찰에 고착되어 피켓을 들었더니 신문 1면에도 나고 했죠. 쉽지 않은 10년, “영혼이 맑은 사람들” 10년이라니, 정말 쉽지 않아요. 매월 둘째주 화요일마다 집회를 연다는 것이... 물론 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나 민가협 엄마들의 목요집회도 있지만요. 아무튼, 정기적으로 열리는 게 중요해요. 매향리, 무건리, 대추리, 군산 등 미군의 피해 당사자들과 함께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 연대라고 생각해요. 집회가 아니면, 이 사람들을 어디가서 만나겠어요? 천주교 신부님들, 수사님들, 성심회 수녀님들, 양비안네 수녀님, 임기란 어머님와 민가협 어머님들 너무너무 감사해요. 항상 열성적으로 참여해주시는 통일광장 선생님들도요. 집회 얘기를 하다보니, 평통사 사람들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10년을 이끌어 온 사람들(실무자)들의 진정성이 느껴져요.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저도 자연스레 평통사 일을 하고 있지만, 평통사 사람들을 만난 게 삶의 큰 기쁨이에요. 자랑스럽고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에 붙어있고 함께 하죠(웃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지금은 경찰들과 막 옥신각신 안하고 평화롭게 집회를 하다보니까 그림을 더 잘 만들어야 하는 거죠. 용어도 쉽게 써서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게 하고, 피켓도, 상징의식도, 참여하는 사람들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집회, 내용있는 집회를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거에요.

[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화와 노동] 이라크판 미군 지위협정(SOFA)의 음모

[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화와 노동] 이라크판 미군 지위협정(SOFA)의 음모

여러 조사와 분석을 통해 살펴보면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 이래 지금까지 학살당한 이라크인의 숫자가 1백2십만 명이 넘는다(http://www.justforeignpolicy.org 참고). 이는 1994년 르완다 학살 당시 사망한 숫자를 훨씬 넘는다. 또한 사망한 미군의 숫자는 4천2백여 명이고 이라크 전쟁에 쏟아 부은 돈은 6천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다 4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전쟁난민, 50%가 넘는다는 실업률, 파괴당한 이후 복구되지 않은 사회기반시설, 해체된 교육, 의료, 복지 시스템 등을 고려하면, 6년이 다 되어 가는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사회를 말 그대로 ‘황폐화’시켰다. 더욱이 미군의 전쟁과 점령이 부추긴 분열정책으로 인해 이라크 국민들은 종족과 종파 간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평화와인권] 일방적 점령군 지위협정 개정 요구안 발표

[평화와인권] 일방적 점령군 지위협정 개정 요구안 발표

범국민적 소파개정 목소리 반영

[인권하루소식] 한미당국 소파개정, 말장난 그만!

[인권하루소식] 한미당국 소파개정, 말장난 그만!

"한미소파 전면 개정은 국민적 요구"

여중생문제, “정치권은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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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14일 10만 주권회복의 날 범국민 평화대행진 시민사회단체 시국회의 진행돼 12월 31일, '100만명 범국민 추모행사' 진행할 것

[인권하루소식] 소파개정 촉구, 종교계 기도회 줄이어

[인권하루소식] 소파개정 촉구, 종교계 기도회 줄이어

"이 나라의 자주를 바라고 이 땅의 생명·평화를 사랑한다면, 이제 촛불을 밝힙시 다!"

[인권하루소식] 소파 전면 개정 않는 정부 ‘개선안’은 미봉책

[인권하루소식] 소파 전면 개정 않는 정부 ‘개선안’은 미봉책

여중생 사망사건 무죄평결 규탄 행동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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