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최후의 주거지’ 쪽방에서의 하룻밤

‘최후의 주거지’ 쪽방에서의 하룻밤

'최후의 주거지'라 불리는 쪽방은 어찌 보면, '적절한 주거를 향유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국가를 대신해 순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쪽방을 지켜주세요

쪽방을 지켜주세요

‘열악하다’는 표현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쪽방. 하지만 그 곳에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극빈층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거리로 나가기 전, 혹은 거리에서 돌아온 후 그들 스스로 ‘지불가능한’ 유일한 주거 형태인 쪽방은, 이토록 열악할지언정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나의 권리, 소중한 자기만의 방인 것이다. ‘최후의 주거지’라 불리는 쪽방은 어찌 보면, ‘적절한 주거를 향유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국가를 대신해 순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쪽방을 ‘녹지 조성’을 명목으로, 적절한 대책 없이 철거해 버린다는 것은, 고령이거나 병약한 사람들이 상당수인 쪽방 거주민들을 거리로 내몰아 하루빨리 죽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자국민의 인권을 이렇게 유린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빈곤층 스스로 지불 가능한 영구임대주택의 재고가 전체 주택 재고 대비 1.5%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주택 정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건설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4인 가구 최저 면적 11.2평, 전용 부엌 및 화장실 확보, 적절한 환기, 채광 및 냉난방 설비’

“쪽방은 최빈곤층 최후의 주거공간”

“쪽방은 최빈곤층 최후의 주거공간”

7일 2시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서 ‘2004년 빈민 현장 활동'(빈활)을 진행 중인 5개 사회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작년 10월 27일 영등포구청은 녹지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영등포1동 쪽방지역의 180여 개(거주인 160여 명) 쪽방들을 철거하였고, 최근 언론을 통해 인근 영등포2동 철거 계획이 보도되고 있다. 현재 영등포역 인근에는 550여 개의 쪽방에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03년 기준으로 3년 전에 비해 1,271개가 증가한 4,247개의 쪽방이 형성되었고, 전국적으로는 9,030개에 이르고 있다. 작년 영등포1동 지역 쪽방들을 철거할 때 영등포구는 “1년 이상 거주한 자 중 주민등록을 등재한 사람에 한하여 1인 가구 기준 ‘420만 원의 이주비 또는 임대아파트 입주권’ 선택”을 이주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최빈곤 생활자인 쪽방 거주자들 중 상당수는 주민등록을 등재하지 않았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이며,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이주 비용을 보상받은 이들은 대략 60%에 불과하다. 또한 임대아파트의 입주권을 받는다 해도 이들에겐 최하 700여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결국 한 달 수입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쪽방 거주자들은 보상을 받는다 해도 쪽방 이외의 주거지를 확보하고,

[르포]쪽방, 1평 안의 사람들

[르포]쪽방, 1평 안의 사람들

가출, 쪽방, 빽차 방황하는 유년기의 소년들이 한번씩 겪는 흔한 경험처럼 나 역시 어린 시절 가출의 경험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쯤이었을까?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며, 맨발로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집을 나서니 갈 데가 없더라.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집을 뛰쳐나오기 직전 그동안 꼬불쳐 놓았던 비상금 이만 원 정도를 챙겨 나왔다는 것. 그때 나에겐 큰 돈이었던 이만 원만 믿고 난 내 생애 처음으로 가출을 전격적으로 단행하였다. 첫날 밤이 찾아왔다. 밤 동안 지낼 곳을 찾아야만 했다. 14살 짜리 중삐리를 받아주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또한 숙박요금은 가출자금을 한번에 투자해야 할 정도로 내겐 큰 액수였다. 고민을 하던 중 나 보다 일찍 가출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녀석의 경험담이 생각났다. 당시 녀석은 가출기간 동안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쪽방’이라는 곳에서 잠을 잤는데, 방값이 하루에 천 원 정도라 했다. 그거였다. 하루 천원이면 최대 20일. “앗싸!” 난 그 ‘쪽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현재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월곡동에 있는 쪽방촌에 도착했다. 천 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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