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낯익은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손으로 휘갈겨 쓰인 붉은 글씨는 마치 80년대 혹은 90년대 초 철거투쟁 지역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의 집처럼 멀쩡한 집들이 비어 있거나 헐리기 직전의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그 스산한 느낌이 마치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거대한 영화 촬영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동대문 운동장 주변부에는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넘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운동장과 함께 이들은 오랜 시기 삶에 터전을 일구어 왔던 사람들입니다. 주변상가와 지하도에도 많은 상인들이 생계 방편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참사를 뒤로 한 채 지금은 침묵에 빠져 있는 용산입니다. 부동산 경제가 침체되고 주택가격이 떨어지자 너도나도 슬그머니 발뺌을 하고 나섰습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데군데 철골자재들이 남아 있고, 커다란 웅덩이에는 빗물이 가득 고여 작은 연못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무도 남지 않고 떠나버린 공터는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날 강호동이 진행하는 ‘1박2일’이라는 프로에 방송이 나가자 조용했던 마을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답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동네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곧 ‘천사의 날개’는 접히고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말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선동을 한국의 산토리니라 합니다. 사진으로 보면 그만큼 아름다워 보이는 곳입니다. 하지만 조망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부산역이나 근처 자갈치시장 같은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터전을 가꾼 곳이라 합니다.
“서울시가 임대주택에 주민들을 재정착하게 해준다지만 사실상 임대주택 보증금을 낼 여력이 없는 주민들에게는 현실성 없는 계획\" 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겉만 번지르르할 뿐 과거 내놓은 정책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시 방침마저 사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철거민은 마을입구 ‘환희슈퍼’ 앞에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입니다. 이미 막걸리 몇 잔에 취기가 오른 마을 어르신은 잠시 후 있을 마을잔치를 앞두고 분주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하십니다.
이날 부산의 보수동헌책방을 어슬렁거리며 책 속에 흠뻑 빠져 봤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오래된 책들과 향기를 맡으며 추억에 젖어보기도 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어도 모두들 자연스럽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멋진 골목길 계단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런 곳에서 책속에 푹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동네마다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으로 입점하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은 점포를 가진 이들도 생존의 벼랑길에 내몰리는 게 현실입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시장은 사라지고 남는 건 경쟁뿐입니다. 너도나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이 세상이 노점상과 상인간의 충돌로 몰아넣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진 속의 노점상은 지난 1월 19일 강제철거 금지법 피켓을 들고 장사현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작은 연대가 큰 길이 되고 강이 되리라는 기대가 현실이 되길 기원하는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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