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선생의 평균 근속년수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9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조합원이 늘어가자 근속년수가 평균 24개월로 늘었습니다. 처우가 좋아진 것도 있지만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어 살맛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의 일입니다. 학습지 회원을 늘이라는 회사의 강요에 시달리다 1천5백만 원의 빚을 남기고 숨진 이정연 씨. 이정연 씨는 국어, 영어, 수학 등 7개 과목을 맡아 204개의 수업을 진행하여 한 달에 250만 원을 벌었습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위탁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학습지 선생들. 이들은 날마다 회사에 출근을 했고, 관리자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으며 일을 했습니다.
변호사 법상 변호사가 아니면 변호를 할 수 없다. 다만 피고인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다. 강종숙 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학습지 노조 노동자들은 돈이 없어 스스로 변호인이 됐다. 국선 변호인 제도도 있지만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도 성의껏 해주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김진찬 씨는 이 6개월 동안 성실히 일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에듀베이스와 한솔교육에서 모두 좋은 업무 평가를 받았지만 복직하지 못했다.
문화제 제목도 “우리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한다”다. 무대를 대신한 차량에 붙은 현수막엔 “모두에게 봄이 왔으나 비정규직-투쟁사업장에는 아직 겨울인 시점. 종로에서”라고 적혀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지하철역에 구세군 냄비가 세워졌다. 12월이다. 바람이 매서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늘은 학습지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러 상암동으로 간다.
11월 28일 금요일이었고, 재능교육지부가 천막 농성을 시작한지 344일째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저 앞에 있는 천막 농성장이 보였다. 깃발도 사람도 없이 휑뎅그렁했다.
그러나 단사의 투쟁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탄압을 뚫어 낼 물줄기가 될 수 있다. 3800명이었던 조합원들 중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남아 있는 소수는 끝까지 농성장을 사수하고 투쟁하고 있다. 조합원만의 투쟁이 아니다. ‘학생이면 공부나 해라’는 구사대의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헌신적인 연대를 지속하고 있는 노동해방학생연대, 전국학생행진,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동지들이 있고 장기투쟁사업장을 비롯한 연대대오가 있다. 소산별 학습지 노조에 유일하게 임단협을 체결할 수 있는 재능지부의 투쟁은 단사의 투쟁이 아니다. 언제든 모순의 결절점이 되어 후퇴한 정세를 반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 위탁관리와 수수료제 그리고 신수수료제를 통한 2중3중 착취의 사슬을 끊어내고 노동자성을 쟁취하는 투쟁은 노동해방의 깃발을 다시 올리는 발걸음이 되리라.
재능교육 교사노조는 사측의 일방적인 임금수수료제도와 임금삭감에 반대하며 지난 6월부터 투쟁을 시작했다. 사측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공청회도 한번 하지 않은 새로운 임금수수료제도와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측의 이러한 태도에 맞서 12월 21일 본사 앞에서 농성 시작하려 했으나 사측에서 동원된 직원들이 농성장을 침탈, 천막을 부수고 농성장을 점거했다. 현재까지도 재능교육 교사노조는 천막도 없이 재능교육(혜화동)본사 앞에서 깔개와 비닐만으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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