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학생 시위는 권위주의 정부와 공공 자산을 다국적 기업에 매각하는 행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단순히 자유주의적이거나 친유럽적인 운동이 아니라, 세르비아 자본과 국제 자본 사이의 결탁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지난 토요일(3월 15일) 대규모 베오그라드 시위를 앞둔 일주일 동안,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세르비아 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산다르 부치치(Aleksandar Vučić) 대통령은 유고슬라비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의 이름을 딴 안드리체프 베나츠(Andrićev Venac)에 위치한 관저에서 그를 접견했다. 문학적 재능은 훨씬 떨어지지만 정치적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만큼은 놀라운 부치치는, 부패의 상징이자 사바 강변에 조성된 고급 주거단지인 ‘베오그라드 워터프론트’를 가리키며 그것을 ‘진보’의 상징이라 소개했고, 시위대를 가리키며 그 진보를 방해하는 존재라고 묘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팟캐스트에 출연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출처 : 팟캐스트 화면 갈무리
하지만 트럼프 주니어는 알았을 것이다 — 혹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겠지만 — 그를 접대한 주인이 수개월 동안 이 나라의 가장 똑똑한 젊은 세대와 사려 깊은 시민들로부터 반대에 직면해 왔다는 사실을. 선거가 거의 15년째 조작 되어온 나라에서는 더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제도권 밖에서 활동 중인 세르비아 학생들은 현대적 방식의 ‘도어 투 도어’ 캠페인을 벌이며 마을과 도시를 하나하나 걸어서 다녔다.
이 캠페인은 토요일에 정점을 찍었다. 추산에 따르면 약 50만 명의 시위대가 베오그라드에 집결했다. 분위기는 장엄했다. 다만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주변만은 예외였다. 그곳엔 부치치가 고용한 범죄자들과 훌리건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계획된 15분간의 침묵 가운데 12분째까지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이 침묵은 지난해 11월 세르비아 제2의 도시 노비사드(Novi Sad) 기차역 지붕 붕괴 사고로 사망한 15명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침묵이 끝나기 전, 정체불명의 공격이 가해졌고 많은 이들이 그것이 소닉 캐넌(음향 대포)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생운동은 노비사드의 비극적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베오그라드 연극예술대학(FDU)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부 앞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검은 옷과 모자, 후드를 뒤집어쓴 훌리건들에게 공격당하고 구타당하면서 사태는 격화되었다. 이 폭력 사태는 전국적으로 항의 물결을 촉발했고, 세르비아의 네 개 대학 모두에서 순차적으로 학부 건물들이 점거되고 봉쇄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평화 시위가 확산되었고, 주로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시위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네 가지 학생 요구를 중심으로 연대에 나섰다. 그 중에는 FDU 앞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노비사드 기차역 붕괴 및 15명의 사망에 관한 투명한 조사와 책임 규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에도 훌리건들은 매일 전국 도시와 마을의 시위 현장에서 평화로운 시민들을 계속 공격했다. 이들의 정체가 정부와 연계된 범죄 조직이라는 점은 학생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에게 점점 더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노비사드 기차역 붕괴 역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부패와 직무유기로 얽힌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 기차역은 사고 발생 직전 중국 기업이 재건했고, 헝가리와 프랑스의 기업이 감리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은 시공의 질과 총체적 관리 구조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세르비아의 정치 생태계에서 책임은 거의 항상 ‘정점’에 닿아 있다. 국가 예산이든 외국 자본이든, 모든 대형 프로젝트는 기득권 재벌층이 이득을 취하는 구조다. 오늘날의 학생운동은 단순히 한 사건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바로 이 구조 그 자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권위주의에 맞서
하지만 세르비아의 학생운동은 단순히 독재적이고 부패하며 범죄적 성격의 정권에 저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운동은 훨씬 더 넓은 흐름에 맞서고 있다. 이 흐름은 세르비아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며, 새로운 것도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국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조차 과두제와 권위주의로 (더욱) 미끄러지는 불길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학생운동 중 하나인 세르비아 학생운동은 지금까지 대부분 고립된 채로 남아 있다.
이 운동은 젊은 에너지로 가득한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의 정교한 전략과 규율은 전 세계의 어떤 정치운동에도 뒤지지 않는 조직 수준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국내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부치치와 그가 이끄는 과두 정치 네트워크에 거의 완전히 유리하게 작동하는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방향을 잡는 일이다.
부치치는 2012년 집권했다. 그 시기는 세계 경제의 혼란기였지만 동시에 희망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풀뿌리 운동에서부터, 그리스와 스페인을 포함한 지중해 유럽의 진보적 움직임, 아랍의 봄, 터키의 게지 공원 시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보적 흐름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이 진보의 물결을 놓쳤다. 이는 1990년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 하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다. 세르비아는 그 대신 반동적인 경로를 택했다.
오늘날 세계는 오히려 퇴행적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이를 “트럼프화”라고 부르지만, 이 현상은 훨씬 더 넓고 복잡하다. 미국에서 러시아, 헝가리에서 이스라엘, 중국에서 터키에 이르기까지, 권위주의와 정치 불안정은 오늘날 세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험난한 환경 속에서 세르비아 학생들은 직접 민주주의 집회, 비폭력 저항, 그리고 놀라운 인내심을 바탕으로 조직해왔다. 이들은 세르비아 사회 내부에서 치유의 힘이 되었으며, 다른 시민들이 스스로 시민 집회를 구성하고 조직하게끔 영감을 주었다. 역설적으로, 2012년에 비해 희망의 불빛이 훨씬 더 희미해진 지금, 세르비아 학생들은 오히려 “펌프 잇 업(Pump it up)”이라는 구호 아래 어두워지는 세계에 빛을 만들어내려는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 저항의 빛은 세르비아 국경 밖에서는 거의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비로소 지난 토요일 50만 명이 베오그라드 거리로 나선 뒤에야 국제 언론이 뒤늦게 보도를 시작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주요 당국자들—러시아나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은 여전히 부치치 정권을 외면하거나 아예 지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제 전 세계적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역할을 떠안게 되었다.
서구와 동구 모두에서 침묵하거나 심지어 공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 있다. 워싱턴에서 모스크바까지, 베를린에서 베이징까지, 발칸—특히 세르비아—에서 경제적·전략적 우선순위는 서로 겹친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종류의 체제적 변화는 이러한 계획들을 위협하게 된다. 세계 경제의 주변부에서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국민을 희생시키는 ‘콤프라도르(comprador) 엘리트’—외세의 하청권력을 수행할 지역 권력자—를 원한다. 이들은 그 대가로 이익의 일부와 국내에서 민주적 봉기가 발생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외부의 보호를 제공받는다.
부치치는 이 복잡한 지정학적 균형의 중심에 편안히 앉아 있다. 그는 세르비아의 석유 산업을 러시아에 넘겼고, ‘베오그라드 워터프론트’를 아랍 투자자들에게, 공항을 프랑스에, 인프라 프로젝트는 중국과 헝가리 기업들에게 넘겼다. 그는 또한 독일의 ‘녹색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리튬 채굴권을 넘겨주려 하며, 이는 잠재적으로 엄청난 환경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 미국, 특히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서는, 베오그라드 도심에 이미 약속된 고급 호텔 그 이상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가자지구에서 추진 중인 ‘리비에라’ 프로젝트가 무산된다면, 부치치는 대신 세르비아를 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바다는 없지만, 만들 수는 있어요.”
3월 15일 베오그라드 거리를 가득 채운 50만 명의 시민들. 출처 : 현지 생중계 화면 갈무리
유럽에 대한 의심
하지만 세르비아 학생들은 이러한 지정학적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이들의 운동은 친러냐 친미냐는 이분법 자체를 거부한다. 조지아나 우크라이나의 시위와는 달리, 세르비아의 시위 현장에는 유럽연합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을 움직이는 민주주의, 정의, 자유의 가치는 더 이상 EU 안에도, 세계 여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한 시위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누가 침묵했는지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이 말은 주로 세르비아 국내의 엘리트들을 향한 것이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 전체에도 울림을 준다. 전략적인 계산이든 공모에서 비롯된 것이든, 세계 강대국들의 침묵은 반드시 기억될 것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부치치에게 부친의 인사를 전하며, 그와 함께 지지 의사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여름, 서세르비아의 리튬 광산 개발을 둘러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는 직접적으로 부치치에게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만약 세르비아 학생들이 성공한다면 — 뿌리 깊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더 정의로운 체제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면 —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운동은 부치치 정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외부에서 조종하거나 자금을 대는 ‘색깔 혁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이들이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쁜 소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누구의 도구도 아닌 진정성 있는 주체이며, 바로 그 점이 이 운동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물론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2000년 밀로셰비치 정권 붕괴 이후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는 세르비아가 약탈적 자유시장 정책과 무자비한 경쟁이 아닌, 연대와 협력이라는 토대 위에 사회를 재건할 기회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하나의 독재자와 그의 콤프라도르(외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재벌 권력이 무너지는 일이, 또 다른 독재자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가난한 이들을 ‘구하겠다’는 명분 아래, 그들을 세계 금융 자본과 자국의 독재·재벌 체제 모두의 이중 노예로 만드는—으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이들은 1968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운동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최근 칠레의 헌법 개정 운동처럼, 세계적 의의를 지닌 운동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보 안드리치가 말했다.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지성이 지배하는지 사람들이 안다면, 공포로 죽어버릴 것이다.” 이 학생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 그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아무 두려움도 없는 것처럼,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출처] Serbia’s Student Movement Offers Hope in Dark Time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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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발루노비치(Filip Balunović)는 베오그라드대학교 철학사회이론연구소 연구원이자, 싱기두눔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다. 그는 ⟪발칸에서의 좌파의 부활: 반헤게모니적 행동과 그 사상을 가능케 한 힘⟫(Revival of the Left in the Balkans: Counter-Hegemonic Activism and Ideas that Fueled it)의 저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