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공격

출처: Alfred Quartey, Unsplash

지식인으로서의 입장은 단지 옳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옳은 이유로 옳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격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행위를 거의 모든 이들이 비판하는 것은 옳지만, 그 이유는 틀렸다. 이러한 비판의 저변에는 ‘무역의 자유화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트럼프가 이 원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례하고 어리석다고 간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트럼프의 전략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데이비드 리카도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는 자유무역 논리를 수용한 데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이 논리는 자본주의 경제가 결코 수요 부족을 겪지 않는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터무니없다. 마르크스가 “진부한 세이 씨(trite M. Say)”라고 불렀던 이 법칙을 벗어나면, 무역정책, 즉 자유무역을 추구할 것인지 관세를 부과할 것인지는, 한 국가의 생산자들이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며 더 큰 시장을 확보하려는 목적에 따라 설계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자유무역은 반드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며, 트럼프가 자유무역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그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이유로 비판하는 셈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처럼 중심부 국가가 관세를 부과하고,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수입을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실업을 미국에서 글로벌 사우스로 수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주장은 현재의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적절하지만, 제국주의의 보편적인 특징은 아니다. 예컨대 식민지 시대 후반기에는 글로벌 사우스에 자유무역이 강요되었을 뿐 아니라, 중심부 국가인 영국도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수출한 값싼 공산품이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의 경제를 침투했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 이전 생산자들이 몰락하면서 탈산업화가 일어났다.

글로벌 사우스에 자유무역을 강요한 상황은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까지 지속되었다. 대공황 당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정치적 물결이 일어나 보호무역 정책과 관세장벽 뒤의 산업화를 도입한 새로운 정권들이 등장했다. 인도에서도 식민 정부가 마지못해 ‘유아산업 보호론’에 근거해 소규모 산업을 대상으로 차별적 보호 정책을 도입했고, 이로 인해 국내 부르주아 계층이 일부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얻었다. 요컨대 제국주의는 항상 중심부 국가의 보호무역과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자유무역 강요를 수반하지 않는다. 제국주의의 무역정책은 구체적인 정세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시기에는 중심부 자본이 낮은 임금을 활용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에 공장을 이전하면서, 실업을 수출한 것이 아니라 고용을 수출했다. 특히 미국에서 그러했다. 자유무역 조건하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정책은 글로벌 노스에서의 활동이 인도와 같은 나라로 이전되면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약속 아래에서 강요되었다. 이제 트럼프는 이 모든 것을 끝내려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단순히 글로벌 사우스, 특히 중국에서 고용을 빼앗으려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강력한 동기는 미국의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 되었고, 트럼프는 보호무역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에 간과하기 쉬운 모순이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리더 국가가 경쟁자들을 포용하고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유지하는 것은 특징적인 현상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자본주의 세계의 리더였던 영국은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대륙 유럽과 미국을 수용하기 위해 그들과의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했다.

그러나 영국은 채무국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요 채권국으로 부상했고, 막대한 자본을 수출했다. 이는 영국이 열대 및 아열대 식민지에서 순수출 수익을 무상으로 착취하고, 이들에게 탈산업화 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사학자 S.B. 솔(SB Saul)의 표현대로 이들 식민지는 ‘항상 대기 중인 시장(markets on tap)’이었다. 영국과 현재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순수출 수익을 착취하거나 탈산업화를 강요할 수 있는 여건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설령 식민지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시스템은 지속될 수 있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자본주의 이전 생산자들이 대체될수록 탈산업화의 여지는 줄어들고, 정체된 식민 경제에서 더 많은 잉여를 짜내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러한 한계를 지적했다. 그녀의 제국주의 원인 분석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중심부에서 위기를 겪는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있다.

사람들은 흔히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벌이는 것을 ‘광기’ 혹은 ‘세계에 대한 경멸’ 같은 이유로 설명하지만, 사실 그 근본 원인은 성숙기에 접어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이를 단순히 트럼프의 ‘광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극히 피상적인 해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맞서 관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미국의 고용을 늘리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의 정책은 자국에조차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 세계적으로 관세가 인상되면, 물가가 상승하면서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에서 이윤으로 소득이 이동하게 된다. 임금의 소비 비율이 이윤보다 높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총수요를 감소시키고, 결국 생산과 고용이 줄어든다. 물론 국가 지출을 늘리면 이를 막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재정 적자를 확대하는 방법은 글로벌 금융 자본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관세가 상승하면 세계 자본주의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트럼프의 ‘광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발현일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트럼프의 관세 인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트럼프의 공세는 미국에서 글로벌 사우스로 활동이 확산되던 시대의 종식을 의미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할 명분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제 인도와 같은 나라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 변화는 경제를 보호하고 내수 시장을 확장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보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유세로 재원을 조달해 국가 지출을 늘리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며, 농업과 소규모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내수 시장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국가 주도의 개입은 금융 자본의 유출을 초래할 수 있고, 이를 막기 위해 자본 통제가 필요하다. 요컨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인도와 같은 나라들이 평등하고, 복지 지향적이며, 내수 기반의 국가 주도 개발 전략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출처] Trump’s Tariff Aggression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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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우스 자유 무역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 내수 시장 자본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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