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하룻밤 자는데 7000원 쪽방살이도 힘겹다

폐품모아 근근이 살지만

방세 계속밀려 쫓겨날판

거리마다 금세기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밤늦게까지 흥청거렸던 지난 24일, 김광남씨(62·가명)는 평소와 다름없이 밤 12시에 종로구 돈의동 103 쪽방을 나섰다. 김씨는 동네를 한바퀴 돌며 사무실이나 상가 등에서 나온 파지나 빈 박스, 폐품 등을 모아 묶은 다음 쪽방 입구 골목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눈이 내려 파지가 대부분 젖는 바람에 김씨는 잠깐 실망했으나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2시까지 파지를 모아 묶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1평이 채 안되는 쪽방에서 잠깐 눈을 붙인 김씨가 다시 일어난 것은 새벽4시. 김씨는 이번에는 모아놓은 파지와 박스를 손수레에 싣고 인사동 재활용 수집소로 갔다. 박스는 1kg에 50원을 받는데 젖은 박스는 40%를 감해서 받기 때문에 오늘 수입은 평소보다 적었다. 이렇게 해서 김씨가 버는 돈은 하루에 9000원에서 1만2000원 정도. 가끔 고철같은 것을 줍는 날은 1만7000∼1만8000원을 벌기도 하지만 한달 평균 25만원이 김씨의 수입이다.

김씨가 파지 수집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전남 광주가 고향인 김씨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가 모아 놓은 돈을 다 날리고 지난 95년 서울로 상경, 주로 건축공사장에서 날품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나 IMF 이후 건축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그나마 일거리를 찾지 못해 2년 가까이 살던 여관에서 쫓겨난 후 거처를 정한 곳이 이곳 돈의동 쪽방이었다.

쪽방 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새벽 창신동 인력시장에 나가봐도 한달이면 겨우 4∼5일 일거리가 있을 뿐 노는 날이 많아지자 7000원인 방값이 하루 이틀 자꾸만 밀려 김씨는 길거리로 나앉을 지경에 이르렀다.

고향에 두고온 아내와 딸들을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고 마음먹은 김씨는 주인아주머니의 권유로 파지 수집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해서 낮에는 못나가고 밤늦은 시간에만 골목을 뒤지며 파지 수집에 나선 지 1년여. 김씨의 통장에는 20여만원의 피땀어린 돈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김씨는 2~3달에 한번씩 아내와 딸들을 보러 고향에 내려갈 때가 가장 행복하면서도 곤혹스럽다. 아내는 물론 딸들도 김씨가 건축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 일세 7000원의 쪽방에서 파지수집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줄은 꿈에도 모른다. 김씨는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다짐한다.

김씨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재기에 성공해서 지금 대전에서 대학다니는 딸들을 부끄럽지 않게 시집보내는 것이다. 물론 지금 수입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김씨도 잘 안다. 그래서 김씨는 과거에 부동산 중개업을 할 때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줄곧 만나며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과 함께 계획중인 사업이 잘 돼서 목돈을 만지게 되면 당장이라도 고향에 내려갈 생각이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룻밤 술값에도 못미칠 돈이지만 20여만원이 든 통장을 볼 때마다 “하루의 고생이 보람으로 느껴진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김씨.

60평생을 남을 속여본 적도, 게으름을 피우며 정당한 노동을 외면한 적도 없다는 건실한 생활인인 김씨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장석우 기자/자료제공=한국도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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