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먼저 떠났다!
미군은 당일, 주민은 다음날 대피 기사 읽고 기분이 어땠습니까?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주한미군 영내에 폭발물이 설치돼 5일 폭발한다는 첩보가 미군쪽에 입수되면서 한차례 대소동이 벌어졌는데…문제는 첩보 통보 시각, 철수 시각의 차이입니다.
어제 저녁 <한겨레> 정치부의 김현수 국방부 출입기자에게 전화했더니 4일 오후 2시부터 미군쪽은 장비를 철수하기 시작했고, 미군들은 4일 밤 9시30분부터 철수를 시작했다고 하고…경기도 파주시에 취재나갔던 <한겨레> 사회부 김규원 기자는 4일 밤 8시10분부터 9시까지 200여명의 미군들이 철수를 완료했고, 10시25분부터 11시50분까지 장비를 철수했다는군요. 미군쪽이 밝히는 미군 철수 시각은 4일 밤 9시30분.
어쨌든 이 시각은 모두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진 5일 새벽 1시10분 보다 훨씬 빨랐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물론 미2사단이 한국 9사단과 파주경찰서에 통보한 것이 4일 오후 5시10분이었으니까 그 다음부터 지연된 시간에 대해서는 파주경찰서와 파주시가 책임져야겠지만, 애초 미군이 한국9사단과 파추경찰서에 상황을 통보한 시각도 첩보 입수 후 7시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갑자기 “우리집에 불이 난다면 무엇을 먼저 챙길까?” 라는 상상을 해봤던 몇달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집에 불이 난다면? 초등학교때부터 모아둔 일기장, 몇 장뿐인 사진들…뭐 그런 것들일 것 같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물론 0순위로 어린 딸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상상을 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정말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던 느낌이었습니다.
왜 이 생각이 갑자기 들었냐 하면 어제 그 상황의 전개과정을 보면 미군의 뇌리속에 지역주민들이,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0순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달용 파주시장은 4일 저녁 미2사단에 찾아가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밤 11시50분에야 미군쪽으로부터 ‘미군은 모두 대피했다’는 통보를 받고 서둘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대목 정말 압권이지 않습니까?
미군이 우리나라에 있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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