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단체협약을 멋대로 파기하고 노동부 시정명령도 아랑곳하지 않는 일본기업 한국오므론(대표이사 타무라히로시)의 행태는 한일투자협정이 체결된 뒤 한국노동자들의 미래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오므론은 공장자동화 제어기기 생산업체로 서울 강남 뿐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이다. 이 회사는 몇 해 전 동해라는 회사를 인수하며 노조간부 9명을 모조리 정리해고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회사쪽이 단체협약을 파기하면서 지난 5월26일 시작된 노조파업은 현재 1백40일을 넘기고 있다. 회사는 계약직·임시직을 채용할 때 노조와 합의하게 돼있는 현행 단협이 ‘경영권 침해’라며 일방적으로 계약직 노동자를 채용했다. 노동부가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 여러 차례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한국노조는 회사를 망친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타무라사장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 유덕상 부위원장 등은 지난 8월말 일본노총을 공식 방문해 오므론 문제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유부위원장은 특히 “한일투자협정이 체결될 경우 이같은 문제가 잦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일투자협정 반대투쟁과 연계해 오므론노조 투쟁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일본노총은 “한일투자협정은 정치적인 문제라서 오므론 사태와 결부시키는 건 적절치 않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꺼린 탓인지 일본오므론노조가 소속한 전기연합쪽에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전기연합은 이에 따라 지난 10월5일 한국을 방문해 “회사는 단협을 어겼으니 사과하고, 노조는 회사 제안대로 단협을 바꾸는 게 어떠냐”는 ‘중재안’을 내밀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협을 깨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말도 안 되는 이 중재안을 노조는 바로 거절했다. 다음 날 사무금융노련(위원장 김형탁)과 전기연합쪽은 껄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회사쪽이 먼저 단협을 이행토록 노력해 달라”는 사무금융노련의 요청에 전기연합쪽은 난색을 표하며 ‘대화 우선’만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과연 노동3권을 지키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게 했다.

현재 한일 양국이 추진 중인 투자협정에는 일본자본의 우려와 희망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기업내에서 노조의 투쟁을 겪어보지 못해 극히 보수적인 시작을 갖고 있다. 일본정부는 얼마전 방일한 김대통령에게 “한국정부가 노동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할 것”을 거듭 요구하면서 “(사무금융노련 소속) 후지쯔노조와 오므론노조의 투쟁이 투자협정체결에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공중파 방송을 통해 밝히기까지 했다.

단 10%만 투자해도 일본자본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한일투자협정은 노동법마저 무시하는 타무라 같은 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게 뻔하다. 투자자에게 방해되는 노동, 환경 등 모든 걸림돌을 걷어낸다는 게 요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또한 일본기업을 위해 노동부 관리까지 파견하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한번 체결되면 20년이나 지속된다니 후대에까지 경제식민지의 사슬에 얽어맬 것이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은 ‘한일투자협정 연내체결’을 공언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에게 한국노동자들을 제물로 거대자본을 살찌울 권리를 주었는지 묻고 싶다. 한국노동자들에게 아직 낯설다는 이유로 한일투자협정을 ‘후순위 과제’로 남겨 놓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정경은 joungke@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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