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몸만 망치고 가네요”

어느 이주노동자의 삶

96년 여름, 방글라데시의 국제공항. 라나(32)는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웅 나온 부모와 여자친구의 걱정스런 눈빛을 뒤로 한 채 꿈에 그리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라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돈 많이 벌어서 5년 안에 꼭 돌아가리라 맘먹었죠. 우리 6남매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님도 모셔야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10년째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도 해야 했으니까요”

명문 대학의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서 라나가 받았던 첫 월급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만원 정도. 큰형과 둘이서 여덟 명의 식구들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회사를 옮기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었던 라나에게 한국은 그대로 ‘꿈’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모아 놓은 3천불을 들고 브로커를 찾아간 그는 결국 웃돈을 더 주고 3개월 짜리 관광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불법체류를 걱정할 틈도 없이 이미 들어와 있던 친구들을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은 그는 안산시에 있는 영도금속에서 니켈링(도금)을 시작했다. 그렇게 라나는 한국 땅에 둥지를 틀었다.

“많이 힘들었어요. 보통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정도 일을 하거든요. 5~6킬로짜리 금속을 들고 계속 약품에다 닦는 일인데 진짜로 무겁고 쉽게 피곤해져요. 더욱 서글픈 것은 불법취업이라는 약점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대우받고 혹사당하는 거죠.”

96년 여름부터 99년 초겨울까지 영도금속에서 일했던 라나의 월급은 기본 72만원에 야간수당까지 포함하면 한 달 100만원 정도. 집으로 60만원을 부치고 나머지 40만원으로 생활했다는 라나는 그 회사가 좋았던 딱 한가지 이유로 제때에 월급이 나온다는 것을 꼽는다.

“왜 월급 떼먹고 안 주는 회사들도 많잖아요. 거기 비하면 나는 운이 꽤 좋았던 편이죠”

그러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한 것. 며칠 쉬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쉬이 낫지 않았다. 손에 힘을 쓸 수도 없었다. 엑스레이 검진을 받고 나서야 손목뼈 하나에 이상이 생겨 피가 안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99년 여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둔 라나는 그 해 가을 안산 고대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했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해 수술 비용 5백만원을 회사와 그의 친구들이 반반씩 부담할 수밖에 없었는데, 1년을 넘기고서도 결과가 좋지 않아 갈비뼈의 일부를 떼어다가 손목에 옮겨 넣는 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딱한 상황에 처해있다.

라나가 펼친 진단서에는 무려 7백32만6천원에 달하는 재수술 비용이 적혀있었다.

“민사소송을 하려고 2000년 7월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문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회사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수술비용의 반을 부담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나는 별로 기대 안해요. 재수술을 해도 아예 힘 못 쓰기는 마찬가지인데요 뭐. 앞으로는 일 하는 것도 힘들어지겠죠. 한국에 나와서 몸만 망치고 가네요”

라나는 거의 1년을 손목치료로만 보내다가 지난 해 5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후원을 받아 방글라데시노동자센터를 발족하며 대표(chief)를 맡았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우리를 멸시했지만 외국인노동자센터는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인간임을 알려주었다. 만약 이 공간들이 없었더라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너무나 불안하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하는 라나는 “내 동료들이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글라데시노동자센터를 꾸려나간다”고 밝힌다.

그의 세심한 손길로 보듬어온 이 센터는 임금체불과 사고관련 상담을 받으며 1만5천명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의 구심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제 그는 이 센터를 다른 동료에게 맡기고 96년 떠나온 후로 한 번도 가지 못한 고향 땅으로 향한다. 악화된 건강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할 때마다 어서 빨리 집에 오라는 얘기만 되풀이한다”는 그의 어머니는 라나를 만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라고.

그러나 그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일단 집에 가긴 가는데, 거기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한국에 다시 들어오는 것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 자진출국신고기간이 끝나는 7월말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라나’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짐을 한 보따리 싣고 공항으로 가는 외국인노동자들. 이들은 출입국 관리소에 들러 적게는 수십 만원에서 많게는 5백 만원까지의 벌금을 내야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차별과 편견의 시간을 온몸으로 관통했던 이주노동자 라나,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번엔 또 어떤 다짐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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