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가 만난 사람]”백년 동안의 권언유착이 지금 깨지고 있다”
최문순 언론노조 위원장
정면에는 그림처럼 깔려있는 청와대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조선일보 건물이 우뚝 버티고 있다. 그 사이로는 포탄이 쉭쉭 날아다니고 있다. 무슨 전쟁인가.
광화문 태평로에 있는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조에서 그를 만났다.
“100년간의 권언 유착이 지금 깨지고 있습니다.”
84년 MBC에 입사한 후 ‘카메라 출동’에서 잔뼈가 굵은, 후배들의 ‘눈깔이 빤짝빤짝’하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회부 기자 출신 최문순(45)이 풀어내는 언론 전쟁에 대한 해석과 판단과 신념은 그의 ‘출신 성분’을 잊게 만들었다.
“이번 수구언론과의 싸움은 냉전체제 붕괴와 관련이 있습니다. 과거 냉전 시기 수구언론들은 안보상업주의로 먹고살았습니다. 이제 냉전 체제가 해체되고 한반도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이같은 세계사적 흐름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수구언론의 즐겨 팔아먹던 주식은 이제 메뉴판에서 지워져야 할 때가 왔다는 얘기. 근데도 남들이 다 싫어하는 그 (빨간쌀로 지은)주식을 강매하려 하니 문제가 터질 수밖에.
“다음으로는 국내정치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극우 보수정당과 이를 이념적으로 지탱하고 선전해주던 신문사 이데올로그들의 노력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 파열음이 지금 나고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그가 규정한 싸움의 성격. “신문대 신문, 방송대 신문, 방송대 방송 사이의 경쟁이 IMF 이후 격렬해지면서 빈부 차이가 극심해졌습니다. 지난 정권 때는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담합 구조’가 존재했는데 이 부분이 깨져나가고 피터지는 언론사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초점이 분명하고 9시 뉴스 기사쓰듯 이어지는 그의 답변은 취재 수첩을 영양가 없는 말로 채워넣는 ‘짜증’을 덜어줬다.
“정권 차원의 정치적 배경도 있는 것 아닙니까. 특히 내년 대선을 둘러싼 전초전이 격렬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고…”
“정치적 의도 분명히 있죠. 여론은 50대 50이라고 하는데 저는 100%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입증해 낼 수는 없죠. 노무현 고문의 말이 정답예요.”
노무현 민주당 상임 고문이 했다는 말. “이번 세무조사 결과가 다 말해 줄 겁니다. 언론이 권력 뜻대로 움직이느냐 아니냐 문젠데 현 정권과 언론은 이미 건너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언론 다루기 과정에서 ‘타협’보다는 ‘전투’를 통해 궁극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야합’을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벌써부터 청와대 일각에서는 불구속 처리 운운하며 정치적 타협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개혁 문제를 정치문제로부터 분리해서 대응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그동안 언론 개혁을 위한 국가의 공식적 개입을 ‘공식적’으로 요청해왔습니다. 현직 언론인, 시민단체 힘만으로는 족벌 언론 자본을 깨기 어렵습니다.”
국가 개입의 공식 요청.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국가의 개입을 현직 언론인들이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다수가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정거래위 조사에 대한 지지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또다른 국가 개입은 국회를 통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입니다.”
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족벌과 재벌의 언론사 소유지분 제한, 편집권 독립, 신문 강매 금지, 과다 광고 세금감면 철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을 98년과 지난해 국회에 청원했으나 법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정권이 아닙니다. 김대중 정권을 뜻하는 말이 아니란 거죠. IMF 이후 시장실패 현상이 극심해졌습니다. 무질서 무한경쟁이 판을 쳤죠. 언론의 경우 시장실패는 여론 독점으로 나타나고 이는 다시 민주주의의 실패로 연결됩니다. 정부가 이를 보고만 있다면 그건 직무유깁니다.”
언론개혁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공정한 시장 경쟁? 이렇게 물어보자. “개혁된 언론의 모습은 어떤 겁니까.”
“궁극적으로 언론자유는 언론인의 자유로 귀결됩니다. 사주의 독점체제와 기자들의 사병화그리고 사주 이해를 우선시 하는 위한 지면 제작 현상을 깨야 됩니다.”
그런데 싸우는 두 주체. 정권과 수구언론. 그들은 한편으로 싸우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확실한 동맹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예컨대, 최근 항공사 노조나 민주노총 파업 관련 보도를 보면 그들의 이해관계는 분명히 동일한 토대 위에 서있다.
민주노총은 지금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뿐 아니라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을 함께 하고 있다. 개혁이 된다고 약자의 투쟁을 죄악시하고 노동자 파업을 범죄시하는 그들의 시각은 변하지 않을 텐데.
“개혁의 귀결점 중에 또다른 하나는 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놈들을 쫓아내지 않고 같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국론분열’이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반대자들을 격리하고 분리시키는 수구언론들의 개혁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언론노조는 6월을 신문개혁 총력투쟁의 달로 잡고 조직력을 집중시켰다. 6월 29일에는 ‘신문개혁 국민행동’이 주최한 각계 인사 5천5백여명이 동참한 ‘신문개혁 6월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투쟁 주체의 외연을 넓히는 게 중요합니다. 6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현재의 투쟁은 지역대결도 정쟁도 아닙니다. 색깔 문제는 더욱 아니죠. 부패와 반부패, 구체제와 신체제, 20세기 가치와 21세기 가치 사이의 싸움입니다.” 힘을 주며 말한 이 대목에서 그는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까지 말했다.
칼같이 나누는 전선의 성격 규정과 다원주의와의 관계는 이 자리에서 논쟁의 대상이 아닐 것 같다. 다만, 치열한 문제의식과 결연한 의지의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족한 것 아닌가.
언론노조는 다는 산업의 산별노조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그건 조합원의 주요 ‘대오’로 불릴 수 있는 기자, PD들과의 미묘한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언론연맹은 88년 출범 당시 ‘비리로부터의 해방’을 연맹의 주요 노선으로 결정한 바 있다. 기자 등의 촌지 문화 척결로 대표되는 이 해방 투쟁이 내부의 갈등을 불러온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이번 싸움은 조합원 개인의 비리 차원은 아니더라도 이러저러한 긴장이 조합원과 산별노조 집행부 사이에 형성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섭섭해 하는 조합원들도 있을텐데요.”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된 이후 많이 좋아졌어요. 회사 종업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신문사의 경우 그래요. 저도 좀 놀라고 스스로도 놀라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덧붙인 재미있는 표현.
“한겨레 돈벌어주는 모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신문사간의 논조 또는 이념적 지향의 차이를 회사간 경쟁 구도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볼 때 생겨나는 ‘종업원 의식’이 깨져가고 있음을 언론 동네서 종종 쓰는 표현으로 설명한 것.
“그래도 조중동 노조나 조합원 입장에서는…” “지나가는 말삼아 섭섭함을 전해오는 경우는 있죠. 그래도 조선일보 기자 선언이 ‘노조 명의’로 나오지 않은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건곤일척의 투쟁에서 “피해자들이 들고 나서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대표적 피해자가 민주노총이라는 말과 함께. “DJ 정권은 상대적 개혁성과 함께 경제정책의 극우적 지향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상한 성격’의 정권입니다.” 현정권의 이중성에 맞서(?) 대응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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