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수색지역 철거민들이 철거용역들에 의해 쫗겨난 후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용역깡패들이 막고 있는 보습이다.
수색철거민대책위원회 투쟁 경과
– 수색은 1987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고시된 이후 94년부터 본격적인 철거위협이 시작되어 수색 철거민들은 94년 6월 현재의 철거민대책위원회를 결성, 투쟁을 전개하였다. 골리앗을 건립하는 등 전투적인 철거민투쟁의 전형이 수색에서도 전개되었다. 그리고 97년 1월 조합측과 합의공증을 체결, 영구임대주택 입주 전까지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가수용단지를 쟁취하였다. 97년 6월 23가구가 가수용단지를 입주하였으나, 이후 안정적인 주거환경에 투쟁의 현장과 괴리된 철대위는 조직생활을 방기하였다. 이러던 중 조합의 회유책동으로 다수의 주민들이 99년 이주를 하였으며, 단 4세대가 남아 임대주택 입주 투쟁을 다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시공사의 하수인인 조합에서는 99.8.5 가수용에 대한 1차 강제철거를 자행한 이후 재차 철대위측과 가수용에 대한 “추후 강제철거 금지”를 각서하고 합의공증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도 기만적인 술책에 다름아니였다는 것이 2000.10.17 깡패들을 앞세운 가수용 침탈에서 드러났으며, 이후 지난 7.5 싹쓸이 강제철거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건설자본은 투쟁하는 철거민들에게 밀려 두손을 들고 어쩔수 없이 철거민들의 주거대책을 마련하기는 하나 이로 인하여 축소되는 자신들의 개발이윤에 대해서는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위하여 가수용단지에 대한 강제철거를 위협, 자행하고 있다. 이는 건설자본의 개발이윤 극대화의 일원으로 지난 97년 청량1동에서도 가수용단지에 대한 강제철거가 자행되었다.
은평구청에서는 현재 가수용단지에 거주하고 있던 3세대에 대하여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없는 미해당자라 분리하였다. 재개발사업 계획이 인가된 3개월 이후에 전입신고가 된 기간미해당, 1인으로 세대를 형성하고 있는 단독세대 미해당의 부분을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발이윤을 위한 억지에 불과하며, 실제로 청량1동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구청에서 미해당이라는 삼는 부분에 대해서 투쟁으로 돌파하여 다른 주민들과 동등하게 임대주택에 입주한 선례가 있다. 재개발지구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해서 각각의 자격을 부여하고 이에 대하여 주거대책 조차도 차이를 두는 것,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주거권마저도 박탈하려는 것일 뿐이다. 더더군다나 수색에 건립된 임대주택은 저들이 말하는 해당자들을 입주시키고도 100여세대가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개발지구 원거주민들에 대한 주거대책을 완벽히 마련하였다면 이것이 남을 리가 만무하다. 실제적으로 재개발지구에 건립되는 임대주택은 원거주민들의 비해 월등히 적은 물량만이 공급되고 있고, 정작 원거주민들이 그 곳에 입주하는 것은 전체 10%미만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현 김대중정부의 주택정책의 허구성을 엿볼 수 있다. 김대중정부는 2002년까지 주택보급율 100%를 목표하고 있으며, 실제로 주택보급율은 현재 90%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소형아파트 건립 의무비율제 폐지와 각종 개발규제 철폐는 고가의 이윤을 발생시키는 대형아파트만이 건립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하여 미분양되고, 재고로 남아있는 주택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다.
주택은 인간이 오늘의 지친 노동력을 쉬고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착취에 이은 제2의 착취의 기제로 전락된 각종 개발사업과 주택이 오로지 고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되는 이상 철거민들의 주거권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될 수 밖에 없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은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사진보기>




수색철거지역 공사 현황
■ 개발형태: 합동재개발
■ 시공사: (주)대림건설
■ 관할구청 : 은평구청(長. 노재동)
■ 용역업체: 다원환경(구:적준용역)
■ 현 세대수 : 3세대
◆ 수색 철거민대책위원회 자치역사 ◆
【94년】
4월경: 강제철거를 몇번겪은후 세입자 대책위원회 구성
조직운영의 문제로 <올바른 세입자 문제를 위한 주민모임>을 독자적으로 조직
6월18일 :철거민 대책위원회로 명칭을 바꿈, 대표와 임원진을 민주적으로 선출
7월26-30: 제1회 하계빈활 수행
8월9일: 수색동 철거민투쟁 지원대책위원회 결성
지역규찰, 공부방운영, 지역선전전 및 재정사업진행
8월5일: 공권력투입<.100여명의철거깡패들을앞세우고 최루탄난사하며 지역 침탈>
9월4일: 당시 철대위 홍보부장 장석원동지 기습적으로 강제연행⇒구속
9월10일: 수색동 철거민 대책위원회 현판식
12월3~4: 철대위 겨울나기를 위한 하루빈활 수행
19일 구청으로부터 가수용단지 설치승인서 발부
【95년】
1월경 : 서부지역 공부방 협의회 결성( 수색, 현저동 공동으로 어린이캠프 진행 )
2월3 ~6: 3차 동계빈활 수행
2월경 : 서울지역 지원 대책위 연석회의 구성
7월27~31: 4차 하계지활 수행
10월경 : 명지대와 민중연대 장터 진행(철대위 구속동지 후원과 기금마련을 위한 하루 술방)
【96년】
2월1~4일: 제5차 겨울지활 수행
이후 : 제6차 하계 지활수행
【97년】
1월17일 : 가수용단지 합의공증 체결
5월27일: 구속동지 만기출소(장석원동지)
6월경 : 가수용단지 입주 (23가구)
*주민들은 가수용입주 이후 안정적인 주거공간 마련으로 인하여 투쟁으로부터 멀어지고 조직을 방기하였다. 이러한 틈을 타 시공사와 조합에서는 당시 철대위 임원진 몇몇을 포섭, 회유하여 임원진 몇몇의 주도아래 가수용을 버리고 이주하였다. 이후 조합에서는 4세대만 남아있는 가수용단지를 강제철거 하였다.
【99년】
8월5일 : 가수용단지 1차 강제철거 → 깡패 200여명 동원되어 강제철거를 자행, 초등학생 폭행/ 은평구청 구청장실 점거투쟁 전개
*이후 4세대 잔류, 다시금 투쟁을 결의, 전철연과 함께 임대주택 입주투쟁을 전개하였다.
10월7일 : 가수용단지 강제철거 재발 금지 합의공증 체결
【2000년】
6월9일 : 당시 위원장(강삼규) 철거민 민주당 점거 폭력연행에 항의하다 연행, 구속
7월 : 조합측에서 가수용단지에 대한 건물명도 소송 제기
7월27일 : 위원장 징역8월에 집행유예1년으로 석방
8월6일 : 철대위 홍보부장이던 장석원동지 경찰의 미행 중 강제연행, 구속
10월17일 : 가수용단지 2차 침탈 → 철거깡패들 100여명이 펜스를 타넘고 난입하여 집기를 때려부수고 주민들을 폭행. 주민 이봉희씨(여, 60세)를 집단구타
12월4일 : 철대위 총무 차명우동지 월곡동 사수 투쟁 벌이다 연행, 구속
12월26일 : 장석원동지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석방
【2001년】
1월19일 : 당시 위원장 봉천3동 연대투쟁 중 수배
4월6일 : 차명우동지 징역1년6월의 집행유예3년으로 석방
6월13일 : 가수용단지 명도소송 선고 → 조합 승소, 철대위 항소제기
6월30일 : 전위원장(강삼규) 세대 자진 이주
7월6일 : 가수용 싹쓸이 철거 → 현재 현장으로 진입하여 비닐천막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
<수색 철대위 구체적 요구안>
-. 임대주택 입주 보장
-. 강제철거로 인한 살림살이 피해배상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