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공현 부장판사)는 안티포스코 홈페이지에 대한 가처분 결정을 취소하였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저작권보다 앞서는 것으로 인정된 것이다. 특히 자본과 권력을 쥐고 있는 쪽에서 안티·패러디 사이트들에 대해 명예훼손 등 법적 수단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요즘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받을 만하다.
안티포스코 홈페이지 어떻게 생겼나
지난96년 12월 16일, 포항제철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합병하면서 이를 ‘자산인수’라고 억지를 부려 고용승계를 거부한채 수많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여기에 맞서 삼미 해고노동자들은 4년 넘게 싸워야만 했다.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고등법원에서 복직 승소판결을 받아놓고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삼미특수강에서 일해온 노동자 182명은 5년 가깝게 전국의 거리에서 눈물과 땀으로 싸워 왔다. 김수환 추기경, 여야 국회의원, 국제자유노련 등 국내외 각계의 탄원이 줄을 이었지만 포항제철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 판결을 즈음해서 삼미 노동자들은 총력을 기울여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했고, 그 한 방법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한 국제연대였다.
2000년 3월초순경 인터넷에 개설한 안티포스코 홈페이지 (http://antiposco.nodong.net)는 회사 홈페이지(http://www.posco.co.kr)를 패러디했다. 회사의 멋있고 좋은 면만을 부각하면서 홍보로 일관하는 회사 홈페이지의 폼을 따되, 그 내용은 노동자를 무시하는 전근대적인 노사관행을 폭로하는 것으로 채워넣는 식이다. 특히 안티포스코 홈페이지는 삼미 노동자들이 전국 순회 ‘고용승계 대장정’을 전개했던 작년 3월과 ‘자전거 천리 대행진’을 벌인 작년 10월에는 매일 속보자료와 사진, 동영상 자료를 올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또한 삼미 노동자들이 전국 순회투쟁을 마치고 서울에 진격한 날을 ‘안티포스코의 날’로 정하여 외국의 연대 시위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티포스코 홈페이지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국제연대로 확산되자 포항제철은 안티포스코 홈페이지에 대해 ‘무모한’ 공격을 가해왔다. 작년 4월 3일 포항제철은 안티포스코 홈페이지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패러디한 것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내세워 법원에 ‘도안사용금지 가처분 신청'(injunction)을 한 것이다. 가처분 신청이 있자 법원은 심리 한번 거치지 않은채 포항제철의 신청대로 패러디 도안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이것이 장작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이 있자 한국노동네트워크는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함께 국내 여론과 네티즌들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는 한편, 국제적인 연대를 요청하였다. 그 결과 전세계 26개의 회원 네트워크와 38개 협력 네트워크로 구성된 국제 진보통신연합(APC)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APC는 “Parody of Korean Multinational Site Threatened by Court Injunction: Creators protesting jobs lost three years ago”라는 긴급 공지를 발표하는 한편, 안티포스코 사이트를 대신 올려줄 미러링 사이트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여 자발적으로 안티포스코 사이트를 미러링해 주는 사이트가 일본(JCA-Net), 영국(LabourNet/GreenNet), 미국(IGC), 호주(C2O), 스페인(Nodo50), 캐나다(Web Networks), 독일(LabourNet), 우크라이나(GLUK) 등 계속 이어졌다. 이는 이미 스페인 정부의 폐쇄조치에 맞서 미러링 사이트를 몇 군데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나중에는 리눅스의 성자로 불리우는 리처드 스톨만까지 미러링 사이트를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개설된 미러링 사이트는 현재 8개국에 11개에 이른다.
한편, 한국의 네티즌들도 발끈하고 나섰다. 법원의 가처분 판결이 회사 홈페이지에서 그대로 따온 도안만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 합성 처리나 회사 로고에 빨간 색으로 X 표시한 것까지 문제삼기 때문에 수십 수백개나 만들어져 있는 인터넷 안티사이트나 패러디사이트들 역시 거대기업들로부터 비슷한 소송에 직면할 위험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안티사이트와 패러디사이트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지지·연대를 표명해 오기도 하였다.
‘저작권법’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인터넷
사실 포항제철이 홈페이지 도안을 문제삼고 나온 것은 정작 ‘저작권’을 보호하자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다. 안티포스코 사이트가 포항제철 사이트로 오해될 가능성은 없으며, 삼미 노동자들이 안티포스코 사이트를 통해 사업상 이득을 취할 가능성 또한 전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포항제철이 ‘저작권’을 들고 나온 이유는 명백하다. 안티포스코 사이트의 운영을 막겠다는 것이 그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이는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려는 시도임에 다름 아니며, 한국에서 과거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인 항의의 수단이었던 ‘노래가사 바꿔부르기(노가바)’에 대해 저작권법으로 탄압한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한편,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따라 안티포스코 홈페이지 운영진에서는 일단 금지된 도안을 모두 바꾸어 새 홈페이지를 올렸다. 그런데 새로이 바꾼 홈페이지는 포항제철의 행태를 더욱 신랄하게 비난하는 내용으로 패러디하였다. 즉, 포항제철(POSCO)의 군화발에 밟혀 유리창이 깨진 모양을 표현하는가 하면, 포항제철의 마크는 히틀러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예라는 뜻에서 나찌 상징 마크(철십자가)로 바꾸었으며,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의 장례식(Funeral of Free Speech)에 포항제철(POSCO)과 법원(COURT) 이름으로 ■謹弔■ 리본을 단 [블랙리본 캠페인] 로고를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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